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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6월 2일 오후, 필자는 드디어 '자발적 시청료 납부'(관련기사 참고)에 동참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감사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시청료가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오연호 대표 인사말 내용을 또 들으려면 아마도 ARS를 한 번 더 이용해야 할 듯하다. 외우려면 몇 번은 더 이용해야 할 듯(잘 들어둘 걸). 필자는 오연호 대표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정적에 쌓인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잠시 숨을 고르고서 하늘을 응시했다. 부끄러움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자발적 시청료, 이럴 때 쓰는 거였구나

 

적십자같은 구호단체에서 하는 모금운동에 동참하려고 ARS를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는 정도여서 지금은 그다지 그때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2일, <오마이뉴스> '자발적 시청료'에 동참할 때는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펴보며 기억하려 노력했다. 시청료를 주기 전에 마음을 주고 받는 과정이었다.

 

통화료 외에 한 통화에 2000원이 부과된다고 하였다. <오마이뉴스> ARS 번호를 일일이 확인하며 꾹꾹 누른 후 들은 안내방송이었다. 안내방송을 듣는 중에 마음이 바뀌면 얼른 끊으라는 '별 희한한 소리'도 들려왔다. '뚜우~' 소리가 나기 전에 말이다. 그 '뚜우~' 소리가 얼른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라면 고역이었다.

 

전화 통화를 마친 후, 필자는 두 가지 느낌에 빠졌다. 그간 '자발적 시청료'에 동참하지 못했던 상황을 되돌아보며 이제서야 '자발적 시청료'에 담긴 의미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단순히 본 것에 대해 값을 치르는 수준이 아니었다.

 

일종의 동료애마저 섞인 감정이 '자발적 시청료'에 담겨있었다. 우리 사회를 함께 살피고 함께 돌보는 과정에서, 당장 서로 말하기 어려운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화 한 통에서 느낀 첫 감정이었다.

 

부끄러움이 앞섰던 감정은 이내 뿌듯함으로 바뀌었다. 그간 '자발적 시청료'에 동참하지 못한 사정은 다 제쳐두고 이제라도 '동참'하여 '그때 그 현장'을 내 삶에 기록할 수 있어서 기뻤다. 이제 나는 적어도 '구경꾼'은 아니었다. 좀 더 적극적인 동참 수준은 아니어도 '구경꾼' 수준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솔직한 느낌이다.

 

첫 '자발적 시청료' 낸 후, 또 다른 동참 방법을 살펴보다

 

지난 주말 내내 전국을 강타한 촛불문화제의 열기는 2일 오후 세상을 적신 빗줄기에도 주춤하지 않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며 현장 모습 모두 빗줄기는 잊은 듯했다. 필자는 지금 그곳을 마음으로만 보고 있다.

 

이제 어렵사리 첫 발을 내디딘 만큼, 필자는 지금부터 또 다른 동참 방법을 찾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필자는 현재 돈 천원이 아쉽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필자는 '자발적 시청료'에 그간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일단 첫 발을 내디뎠으니 다음 발을 내디딜 곳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다시 실감한다.

 

부상자가 속출하는 촛불문화제 현장 소식(참고. 물대포 맞은 30대 시민 관련 기사1, 기사2(인터뷰), 군홧발에 밟힌 여대생 관련 기사)을 들으며 '2008국민모금'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필자는 곧 '자발적 시청료'에 동참했다. '2008국민모금' 제안은 사실 '자발적 시청료' 다음으로 생각한 방법이다. 필자 혼자 그 일을 추진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큰 그림을 먼저 그려놓고 작은 일을 실천해나가고 싶었다.

 

'2008국민모금'에서 제안한 방법을 필자부터 실천하려고 한다. 국민 한 명 한 명이 동참하는 십시일반 정신을 살리고자 동전모금을 제안했기에, 필자가 먼저 동전을 모으려고 한다. 동전이 많이 모이는 대로 <오마이뉴스>든 어디든 보내고 싶다. 솔직히 말해,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이를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같이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상황에 따라선, 좀 거창해서 탈이지만, 구호물자 보내듯 현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직접 사서 동참하는 방법도 생각해봐야겠다. 서울까지 가긴 어렵고, 인천에서 열리는 촛불문화제라면 가능할 듯하다. 하다못해, 화장지나 수건과 같은 것이라도 가져다 줄 수 있을 게다. 뭘 얼마나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음도 자세도 바뀐 게 사실이다. 간이 좀 붓기 시작하나보다.

 

여하튼, 필자는 현장 시민들을 돕는 방법들을 살펴보는 데에 힘을 기울이려고 한다. 지금까지 그랬듯, 아무래도 현장에 있기 보다는 멀리서 지켜보게 될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솔직한 처지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어 말씀드린다.

 

앞으로 필자는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민주시민 중 한 사람으로서 우리사회가 아파하고 고민하는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사방팔방으로 돕는 방법이 될 게다.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이 바로, 부끄러움과 뿌듯함을 동시에 맛본 '자발적 시청료' 납부 과정에서 필자가 겪은 변화이다.


태그:#자발적 시청료,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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