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일 저녁부터 20일 새벽까지 KBS 본관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가진 시민들.
 19일 저녁부터 20일 새벽까지 KBS 본관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가진 시민들.
ⓒ 박형준

관련사진보기


'꾸준함'이라는 인생의 미덕

인생에 있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꾸준함'이다. 최근 촛불문화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바로 그 '꾸준함'을 실천하는 시민들에 대한 놀라움이다. 주말마다, 휴일마다 참석할 수는 있어도 그렇듯 평일에도 꾸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들 중 태반은 아침에 직장으로 곧장 출근하는 이들이다. 그나마 대학생들은 이제 곧 방학이 시작되거나, 혹은 이미 시작됐기에 부담이 덜하지만 직장인은 그야말로 피곤과 부담을 여러모로 감수하면서 시청 앞 광장과 코엑스, 그리고 여의도 KBS 본관 앞 등으로 나뉘어 촛불문화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경찰의 과잉폭력진압이나 그에 굴하지 않던 시위참가자들 간의 첨예한 대치를 떠올린다면, 최근의 촛불문화제는 확실히 평온하다. 하지만, 그 평온함 속에는 "될 때까지 모이자"는 각오들이 보인다.

경적을 울려가며 시위참가자들에 호응해주는 자동차들, 그리고 평일이라 직접 거리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이명박 정부를 '감시'하고 있을 시민들, '장마'라고 해도 쉽게 촛불이 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뿐일까? '방학'을 벼르고 있는 학생들도 꽤 많다지 않던가.

이명박 정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무슨 말을 해도 쉽게 신뢰를 얻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방송 장악 의혹'은 물론이고 '신뢰할 수 없는 인터넷'을 직접 운운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등은 다시금 누리꾼들을 자극했다.

인터넷담당 비서관을 신설한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인터넷 여론 수렴'이라는 신설 명분을 믿지 못한다. "인터넷 여론 감시나 제압을 하는 벼슬자리 아니겠느냐"며 피식 웃는다. 이명박 정부가 시민들에게 주는 신뢰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마이크는커녕, 소리가 답답하다는 이유로 곁에 있는 확성기로 제쳐놓은 채 '라이브'로 자유발언을 이어가는 시민들의 모습, 먼저 발언한 사람이 다음 발언자를 지명하는 형식으로 자유발언이 끊기는 일을 막으면서 나름의 지혜도 보여주고 있다. 목소리는 한결같다. "단 1명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KBS 현상윤 PD와의 인터뷰

KBS 현상윤 PD, 요즘 그는 촛불문화제에 매일 참석한다고 한다.
 KBS 현상윤 PD, 요즘 그는 촛불문화제에 매일 참석한다고 한다.
ⓒ 박형준

관련사진보기


지난 13일 밤에 열린 KBS 본관 앞 촛불문화제에서 갑자기 뛰어나와 '발언'에 나섰다가 큰 호응을 얻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은 현상윤 PD. 그는 18일 저녁에도 본관 앞 계단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매일 나오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그와 한 짤막한 인터뷰다.

- 13일 밤 당시, 촛불문화제 도중에 뛰쳐나와 발언을 하신 것이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반향이 컸다. KBS의 구성원으로서 어쨌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럴만한 이유나 각오가 있으셨는가?
"현재 언론은 '최대의 전투지형'이다. MB(이명박 대통령)는 매번 말로만 반성하고 있다. 그뿐인가? '촛불'에 맞선 '극우 봉기'가 일어나고 있으며 MBC에 대한 장악 시도도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 YTN 사장으로 내정된 구본홍씨도, 원래는 MBC 사장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KBS는 (지분 구조 등의) 고리가 가장 취약해 이명박 정부의 장악 공작이 무척이나 심하다.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의 수사 등, 그 여파가 외주제작사와 같은 영세업체에까지 미치고 있다. 싸워야 겠다는 각오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KBS 노조 측이 본관 근처 길목에 내건 플랜카드
 KBS 노조 측이 본관 근처 길목에 내건 플랜카드
ⓒ 박형준

관련사진보기


- KBS 노조 문제는 이제 국민적으로 크게 알려진 상황이다. 하지만 본관 앞 촛불문화제 현장에 와보면 촛불을 응원하는 PD·아나운서·일부 기자들·경영협회·방송기술인협회의 플래랜카드가 눈에 띈다. 이 플래카드, KBS 내 2개 노조와 의견을 달리 하는 구성원이 많다는 의미로 봐도 되나?
"그렇다. 일단 '노-노갈등'은 안 된다는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대화와 견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KBS PD협회에서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촛불 집회 참가자들이 KBS를 지켜달라'는 내용의 의견광고를 낸 것에 대해서도, KBS 노조가 자꾸만 '촛불을 유도했다'느니 '정연주가 사주했다'느니 하는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은 안통한다."

- 무엇보다 '신문·방송 겸업'이나 'MBC·KBS2 민영화 조짐'을 심상치 않게 여기는 분들이 많다. 방송인으로서도 남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실 것 같다.
"한마디로 자본과 권력의 방송 장악 기도 아니겠나? 몇 개의 방송은 권력이 통제하면서 자본이 방송 장악을 기도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이다. 특히, 족벌언론은 '범죄집단'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 이렇게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시민들께서 직접 나와 싸우고 계신데, 나는 직접 당사자인 방송인이다. MB의 방송 장악 움직임을 죽기 살기로 막을 생각이다."

양승동 KBS PD협회장
 양승동 KBS PD협회장
ⓒ 박형준

관련사진보기


19일 저녁에도 현장을 찾아온 유명인사들이 많았다. 다음은 양승동 KBS PD협회장의 발언이다.

"여러분들께는 그저 고맙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방송의 독립을 저희가 지켜야 하는데 시민들이 직접 나서주셔서 고맙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KBS 내부에서도 치열한 투쟁이 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여러분과 동참할 직원들이 많을 것이다. 여러분들께서 KBS의 내부 구성원들을 각성시키고 동참시키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KBS 장악이나 MBC 민영화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 어느 시민이 질문을 던졌다.

- 방송과 뉴스를 통해서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조만간 뉴스와 방송을 통해 드러날 것이라고 약속드릴 수 있다."

인상적인 발언도 있었다.

"이 나라에서 국민 노릇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대운하 저지나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등, 지켜야 할 다른 것들이 너무 많다. KBS가 빨리 정상화돼 우리가 다른 곳에서 싸울 수 있도록 해달라."

이 자리에는 "요즘 매일 나온다"는 통합민주당 최문순 의원과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도 눈에 띄었다. 그들도 '발언'을 했고 촛불을 함께 들며 늦은 시간까지 시민들과 함께 했다.

▲ 자유발언에 나선 김민웅 교수
ⓒ 박형준

관련영상보기


특히, 최문순 의원과는 임순혜 미디어기독연대 집행위원장 등과 더불어 20분 가량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언론인 지망생들에게 혹시 '조언'을 하신다면 무엇을 이야기하시겠느냐"는 내 질문에, "그저 열심히"라는 간단한 답변을 제시했다. 그저 열심히, 어쩌면 저 끊이지 않는 움직임에 대한 화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자유발언에 나선 최문순 의원
ⓒ 박형준

관련영상보기


대책회의 측 '전면 재협상 시한' 20일을 하루 앞두고...

KBS 직원들이 내건 플랜카드
 KBS 직원들이 내건 플랜카드
ⓒ 박형준

관련사진보기


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숨고르기'에 들어간 사람들이 많다. '20일'과 '21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2차 대국민 담화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움직임, 그리고 그나마 이뤄지는 인적 쇄신을 주시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신뢰할 수 없는 인터넷' 발언에 다시금 격앙된 사람들이 많다. '20일'과 '21일'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 단편적인 예가 바로 '대운하'가 아닐까. "안한다"더니, '비밀TF조직'을 운용하다가 발각된 경우만 2번이다. 민심을 가라앉히고자 한다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그나마 이뤄진다는 그 인적 쇄신, '박형준'과 '정종복', '홍진표'라는 이름이 오가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 이 이름들이 현실이 될 경우, 국민들은 "우롱당했다"는 생각을 분명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100여 명 가량이 모여 평온했지만, 결코 평온해보이지만은 않았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KBS지키기, #촛불문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