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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예쁜 바닷가 팬션에서 '1박2일'
 아담하고 예쁜 바닷가 팬션에서 '1박2일'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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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주인공인 엄마 김혜자(한자)가 휴가를 받아 집을 나갔습니다. 마치 제정신이 아닌 듯 무작정 고집을 피우며 일 년씩이나 집을 나가 혼자 살아보겠다는 그녀의 이유는 단 한 가지.

"나도 이제 내 자신을 찾고, 무엇보다도 좀 쉬어야겠어."

일부에서는 한자의 휴가를 가지고 고집이니 심술이니 말들이 많지만 드라마 특성상 약간의 과장이 있을 뿐 대한민국 엄마 중 한자와 같은 자유를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싶습니다.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말이죠.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가족들에게 전쟁이라도 하듯 선전포고를 하고 집을 나오는 충격적 방식에는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수십 년을 억지로 참다 어느날 갑자기 쓰나미처럼 욕구를 분출시키기보다는 차라리 일년에 단 하루라도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모든 상황을 떠나 자유를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래서 모든 아줌마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아줌마들이여 뿔나기 전에 '일박~이일.'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알게 된 전국 10명의 아줌마들이 모였습니다. 해마다 살고 있는 각 지역의 가볼만한 곳을 찾아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밤새도록 수다를 떨어보자고 만들어진 열 아줌마들의 모임이랍니다.
울산 간절곶에 있는 세계최대크기의 우체통
 울산 간절곶에 있는 세계최대크기의 우체통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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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임은 지난 6년 동안 경주·대전·평창·부산·서울·대구를 돌아 올해는 해돋이로 유명한 울산의 간절곶을 찾았습니다.

"일년 만에 만났지만 어제 본 것 같아."

간절곶 인근 예쁘장한 팬션에 짐을 푼 아줌마. 수다는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좋은 친구들과 둘러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다를 떠니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또 있을까요.

"여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남편보다는 친구가 가까워진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아. 애들 생각, 남편 생각, 시어머니 생각에서 하루만 벗어나도 이렇게 좋은 것을…."

"하하하, 아침, 점심, 저녁, 밥 안 하는 건 어떻고. 방학이라 애들이 집에 있으니 세끼 밥해내기도 죽겠더라. 날도 더워 죽겠는데 말이야."

"맞아, 맞아. 밥순이가 밥걱정 안 하니 정말 좋다." 

고소하기가 최고라는 울산 앞바다의 자연산 회로 점심을 먹은 아줌마들은 저녁밥 걱정할 필요 없이 날이 저물어 오도록 지난 일년 동안 묵혀 두었던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조금이라도 자 두어야 해. 이따 낮에 바나나보트 탈거거든."

해마다 한번씩 나가는 여행에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 한 가지씩을 해보자는 것이 우리 모임의 목표입니다.

좋아하는 지역문인의 발자취 찾기, 평소에 가고 싶었던 지역 맛 집 찾아가기,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 카페를 찾아 노래 듣기, 지역 명소 둘러보기,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와인마시기…. 어찌 보면 유치할 수도 있는 일들이지만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동동거리며 살아왔던 아줌마들에게는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경험이 아닐 수 없답니다.

동남아 어느 해변 못지 않은 풍광을 자랑하는 울산 간절곶의 진하 해수욕장
 동남아 어느 해변 못지 않은 풍광을 자랑하는 울산 간절곶의 진하 해수욕장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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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줌마들의 올해 여행 목표는 바나나 보트 타기였습니다. 더 나이 들어서 할머니가 되기 전에 용감하게 도전해보자는 것이 일행들의 바람이었던 것이지요.

"그래 해보는 거야. 남들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하겠냐구."
"그럼 난 타 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완전 신나는 거 있지."
"우와, 정말? 신난다. 울 신랑하고 애들한테 꼭 이야기 해줘야지. 아마 다들 놀랄걸."

우리는 바나나보트를 타기 위해 간절곶에서 멀지 않은 진하해수욕장으로 향했습니다.

"바나나 보트 타실랍니까?"
"예."
"바나나 보트 타 보셨습니까?”
"타봐야 되나요?"
"아입니다. 우선 거기 구명복부터 입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이때까지도 우리는 너무 즐거웠습니다. 수영을 하든 못하든 몸매가 좋든 나쁘든 나이가 많건 적건이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영화 <친구>의 카피처럼 함께 있어 두려울 것이 없었던 것이지요. 

"야야, 물에 잘 뜬다."
"박태환이가 따로 없네. 우리도 이 구명복만 입으면 끄떡없는기라."
"요거 입고 파도타니까 증말 재미나네. 바닷물에 들어와 본 게 언젠지도 몰라."
"그러게 중학생 가스나가 된 기분이다 아이가."

수다를 떨고 있다 보니 어느새 노란 바나나 보트가 우리 앞에 와서 유연하게 멈춥니다. 보트를 운전하는 아저씨의 구리빛는 피부를 슬쩍슬쩍 훔쳐보며 한사람씩 바나나 보트에 오르니 어느새 보트가 굉음을 울리며 출발 신호를 보냅니다.

아줌마들을 태우고 돌아오는 바나나 보트.
 아줌마들을 태우고 돌아오는 바나나 보트.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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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은 하늘로 보게 합니다. 보트가 한쪽으로 기울면 물에 빠지니까 방향에 따라 이래 이래 좌우로 몸을 트소. 알겠지요? 자 그럼 출발 합니다."
"네에~"

우리들의 대답과 함께 아니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시원하게 출발 하는 바나나 보트. 여기 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오겠지요.

"끼야아아아아~ 신난다."
"와아아아~ 바로 이거야 이거."
"옴마야~ 와 이래 빠르노? 아저씨 예 속도 좀 줄여주소~"
"고개 들고 눈 떠라. 그래 고새를 팍 쳐 넣고 있으면 뭐가 보이겠노?"

바나나 보트가 파도를 가르며 시원하게 바다를 질주함과 동시에 가슴 속에 맺혀있던 스트레스들도 산산이 부서져 사라집니다. 죽어도 바나나 보트는 못 타겠다며 해변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는 친구들을 향해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와아~ 정말 시원하고 상쾌해에에엡!! 꼬로로로록…. 어프, 어프!!"

이게 어찌된 일인지요. 미쳐 환호를 다 끝내지도 못했는데 우리는 모두 바다에 빠져 생쥐처럼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 아줌마들 이제 한 사람씩 보트를 잡고 올라오소. 먼저 올라온 사람이 다름 사람을 잡아주며 됩니다."
"어프, 어프…. 아저씨 여길 어떻게 올라가요. 아저씨가 잡아 줘야지요."
"다들 혼자 올라옵니다. 얼른 잡고 올라오소."
"아저씨, 우리 수영 못 한단 말이에요."
"아줌마 수영하지 말고 잡고 올라오라카니까요. 그 줄을 잡고 올라오믄 된다 안캅니까."

바나나 보트 한번에 진이 다 빠져버린 아줌마들
 바나나 보트 한번에 진이 다 빠져버린 아줌마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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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한명도 제 힘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보트 운전을 하는 아저씨의 힘을 빌어야 했습니다.

"끙끙…. 아이고 죽겠네. 아줌마!! 살 쫌 빼소. 우쩨 이리 무겁는교?"
"죄송해요. 하지만 얼른 끌어 올려주세요."
"아줌마도 힘 좀 쓰소. 내도 죽겠다 아입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아저씨의 인상은 욕이라도 할 것처럼 점점 무서워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다섯 명의 아줌마들을 건져 올리느라 여간 고생을 한 게 아니었거든요.

다섯명의 아줌마들은 바나나 보트에 실은 아저씨는 꽁지가 빠지게 뭍으로 달려 우리는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

"아줌마들 다시는 바나나 보트 타지마소. 누구 죽일 일 있나."
"큭큭큭, 호호호, 히히히…."

아줌마들 건져올리느라 생고생을 했다며 붉으락 푸르락하는 아저씨의 얼굴을 보니 좀 전의 공포는 사라지고 왜 그리 웃음이 나던지요. 

열명 아줌마들의 '1박2일'을 올해도 대성공입니다. ‘1박2일’동안 충분하게 충전된 '기'로 아줌마들은 일년을 생생하게 버텨낼 것입니다.

혹시 지금도 결정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아줌마들 계신가요? <엄마가 뿔났다>의 '한자
'처럼 한번에 곪아 터지지 말고 용감히 떠나세요.

'1박2일!!'


태그:#간절곶, #울산, #바나나보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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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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