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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S에서 훈련 중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엘리스 밀스 선수(AIS제공)
 AIS에서 훈련 중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엘리스 밀스 선수(AIS제공)
ⓒ 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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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폐막을 이틀 앞둔 22일 현재, 호주 국민들은 부진한(?) 메달 획득으로 시큰둥하다. 금메달 12개, 은메달 14개, 동메달 16개밖에 따지 못한 것. 205개 참가국 중에서 메달순위 6위다.

그러나 호주 인구가 2100만 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구 대비 메달 순위는 1~2위를 다툰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불만일까? 그 이유는 아무래도 직전 올림픽인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종합 4위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거둔 탓으로 분석된다.

아테네올림픽뿐만 아니라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도 종합 4위였으니, 베이징올림픽 종합 6위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막판 피치를 올리고 있는 한국에 6위 자리를 내줄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런저런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참에 호주 스포츠가 직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제자리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발표된 '뚱보 세계 1위 국가'라는 충격까지 겹쳐서 반성의 목소리가 더욱 높다. 엘리트 스포츠에 크게 의존한다는 측면에서, 호주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한국은 어떤가?

금메달에 목매달고, 올림픽 정신은 흔적도 없어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이 E. 탤보트 주교의 말을 인용하여 채택한 올림픽 강령이다. 이 강령은 올림픽 개막식 때마다 엄숙하게 공표되어, 모든 참가 선수단이 올림픽의 진정한 의의를 가슴에 새기게 만든다.

그러나 그 순간뿐이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오직 승리! 오직 금메달!"이라는 금메달 지상주의에 빠지고 만다. 특히 메달 순위 상위에 랭크된 한국과 호주 등의 국가에서는 경기 결과에 따라 온 국민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거나,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져든다.

'승리보다는 참가, 성공보다는 노력'을 더 중시하자는 올림픽 강령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특히 올림픽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한 1984년 LA올림픽 이후, 그 증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나친 메달 경쟁 때문에 스포츠를 통한 인류의 보편적 가치(universal values of human beings)는 위기를 맞고 있는가?"라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더욱이 갈 데까지 간 엘리트 스포츠를 궤도수정 하자는 주장이 큰 힘을 얻고 있다.

'금메달 제조 공장' 호주스포츠학교(AIS)

호주스포츠학교(AIS) 풍경(AIS제공)
 호주스포츠학교(AIS) 풍경(AIS제공)
ⓒ 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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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 현재 호주가 획득한 메달은 12개의 금메달을 포함하여 42개에 이른다. 그런데 금메달 7개를 포함하여 그 절반에 해당하는 메달을 호주스포츠학교(The Australian Institute of Sport, 약칭 AIS) 출신들이 따냈다.

문자 그대로 '금메달 제조 공장'이라고 부를 만한 결과다. 호주의 행정수도 캔버라에 위치한 AIS는 호주 유일의 엘리트 스포츠 학교다. 26개 종목의 선수들이 학업과 훈련을 겸하는 AIS는 스포츠 과학과 스포츠 의학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AIS 개교 이전에는 각 지역의 스포츠클럽에서 파트타임으로 훈련을 받던 선수들이 초특급 시설의 스포츠 기숙학교에서 풀타임으로 훈련 받은 결과는 놀라웠다. 게다가 외국인 지도자를 초청하여 엘리트 선수들을 전담하게 만든 것도 큰 효과를 나타냈다. 그중엔 양궁과 태권도 등을 지도한 한국인 코치들도 있다.

AIS는 개교 직후 올림픽인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은메달 3개와 동메달 2개를 얻는 데 그쳤다. 그러나 직전 올림픽인 아테네올림픽에서는 금메달 10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2개를 획득하여 AIS의 메달 순위만으로도 한국과 영국, 그리스, 브라질을 앞섰다.

이렇듯 눈부신 성과를 얻고 있는 AIS는 놀랍게도 1981년에 개교한 젊은 학교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단 한 개도 따지 못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서 추진한 국가적 프로젝트의 결과였다. 메달 순위를 마치 국가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처럼 생각했던 그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한 측면도 컸다.

헷갈리는 호주, 비만 1위 국가에 장수 2위 국가?

호주인의 비만을 보도한 시드니모닝헤럴드
 호주인의 비만을 보도한 시드니모닝헤럴드
ⓒ 시드니모닝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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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0일, 호주통신(aap)은 "호주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뚱보 나라가 됐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전했다. 대다수 국민이 자연친화적인 환경에서 각종 스포츠를 즐기는 나라, 그래서 비만 따위의 걱정은 아예 없을 것 같은 호주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허구로 만드는 뉴스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뉴스가 나온 지 채 1주일도 되지 않아서 "호주가 일본에 이어서 세계 2위의 장수 국가가 됐다"고 알려진 것. 호주인의 평균 수명이 81.4세(남자 79세, 여자 84세)로 늘어나서, 일본인의 평균 수명 82.2세와 약 10개월의 차이가 날뿐이다.

그런데 호주인의 평균 수명에는 애버리진(Aborigine, 원주민)이라는 변수가 작용한다. 애버리진의 평균 수명이 호주인 평균 수명보다 17년 정도 적기 때문이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가정이지만, 애버리진을 제외하면 호주는 뚱보 1위 국가에다 장수 1위 국가가 된다.

"일반적으로 뚱뚱한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의학계의 오래된 주장에 크게 어긋나는 조사 결과였다. 이를 두고 호주 국영 abc라디오는 "올림픽 역도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동시에 딴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abc-TV의 'BTN 프로그램'도 "엘리트 선수들은 올림픽에 나가서 펄펄 날아다니는데, 뚱뚱해진 일반 국민들은 올림픽 TV중계를 보느라 더 뚱뚱해진다"고 보도했다. 호주 엘리트 스포츠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반대 의견 높아져

'BTN 프로그램'의 웹사이트에 올라온 시청자 댓글에도 엘리트 스포츠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클럽 스포츠를 바탕으로 사회체육의 선진국이었던 호주가 엘리트 스포츠에 집중하면서 국민 건강에 적신호가 나타났다"는 지적이 눈길을 끌었다.

베네사라는 아이디의 시청자는 "금메달 숫자가 국민 건강 증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차라리 그런 예산을 원주민과 영세민의 건강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KD라는 아이디의 시청자는 "국제사회는 더 이상 메달 숫자와 국력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상위에 랭크된 호주의 메달 순위가 엘리트 선수에게 집중 투자한 정책의 결과라는 것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8월 20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는 '돈을 더 쏟아 부어도 추가 금메달은 나오지 않을 것(More money won't buy extra gold)'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 "천문학적인 엘리트 스포츠 예산이 효력을 발휘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경제학자 마크 스튜어트의 의견을 보도했다.

스튜어트 박사는 "2012년 런던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영국 등이 이미 경쟁이 비교적 적은 종목에 집중투자 하는 호주의 메달 획득 작전을 모방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면서 "베이징올림픽에서 호주의 메달밭이었던 수영, 조정, 사이클 등의 종목에서 영국에 완패한 것도 그런 연유"라고 주장했다.

금메달 한 개에 333억 원 든다고?

호주와 영국의 메달 전쟁을 보도한 데일리텔레그래프
 호주와 영국의 메달 전쟁을 보도한 데일리텔레그래프
ⓒ 데일리텔레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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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채널7>에 출연한 케이트 엘리스 연방 스포츠 장관은 "스포츠 예산을 늘리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예산 편성에 문제가 생기면 로또 수익금을 이용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엘리스 장관의 발언을 두고 여론은 둘로 나뉘었다. "그런 예산을 더 긴요한 곳에 사용해야한다"는 의견과 "스포츠 영웅들이 국민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스포츠 과학의 발달에 기여하여 일반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맞선 것.

한편 캐빈 노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 교수는 호주가 메달을 획득하기 위해서 투자한 액수를 집계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금메달 하나에 3700만 호주달러(약 333억 원), 그 외의 메달에 800만 호주달러(약 72억 원)가 든다(It cost $37 million for a gold medal and $8 million for every medal in general)"고 주장했다.

언뜻 믿기 어려운 금액으로 보이지만, 위 금액은 AIS 설립과 유지비용, 수백 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학비와 훈련비용, 코치와 스포츠과학자 및 스포츠의료진의 보수 등을 합산하여 메달 숫자로 나눈 액수다.

근대올림픽의 이상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 평화 증진'에 있다. 국민 건강을 위한 사회 스포츠를 외면하면서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쏟아 부어 엘리트 선수를 집중 육성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다음과 같은 올림픽 표어도 스포츠 정신만큼이나 명료하다.

"더 빠르게(Citius), 더 높게(Altius), 더 강하게(Fortius)."


태그:#올림픽, #사회체육, #엘리트체육, #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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