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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불이 이는 뫼, 나라 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너른 융단 억새평원이 있고, 이 산 정상에 화왕산성이 있는 곳, 이 곳 화왕산은 예부터 '불 뫼'라고 불렸다. 이곳에는 불이 나야만 풍년이 깃들고, 나라가 평안하다 하여 1995년부터 창녕군과 '배바우산악회'가 주관하여 3년마다 한 번씩 정월 대보름 억새 태우기를 하고 있다. 이것만이 화왕산의 이력일까.

 

오늘은 학교 개교기념일이라서 휴업이었다. 그래서 반 아이들 열여섯이 동행해서 화왕산에 올랐다. 화왕산 산행은 크게 창녕읍에서 오르는 길과 옥천계곡 관룡사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필자는 목마산성 길을 택했다. 창녕시외버스터미널을 빠져나와 송현리 고분까지 발품을 팔았다. 조금만 더 가면 '신라진흥왕척경비'가 있는 만옥정 공원, 그곳엔 흥선대원군이 건립한 '척화비',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인 '퇴천리 삼층석탑', '창녕객사'와 선정비들이 오밀조밀 자리하는데도 찾지 않았다.

 

읍내를 벗어나 화왕산 기슭을 접어들 즈음, 한 무리의 고분군을 만났다. 목마산 아래에 위치한 송현리 고분군이다. 경주에나 있을 법한 커다란 고분들이 창녕읍내에도 한 무더기 버티고 있다. 이로 보아 예사 동네는 아닌 것 같다고 아이들과 생각해 보았다.

 

오늘 산행은 목마산성을 훑어보고 가는 코스다. 꽤 긴 산행거리다. 화왕산을 처음 오르는 아이들도, 이미 올라가 보았던 아이들도 목마산성 코스는 처음이란다. 4호 고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조금 산을 오르다 도성암 코스를 벗어나 급경사 길을 올랐다. 목마산성 길은 인적이 드물다. 그래서 그런지 간간이 산을 헤매는 짐승들만 애용하는 한적한 오솔길이다.

 

길은 처음부터 팍팍했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얼굴이 발그레했다. 초가을 늦더위 탓이었을까. 그렇지만 호기심은 가득했다. 한참을 오르니 앞이 탁 트여 창녕 읍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널찍한 바위에 다다랐다. 먼저 오른 초로의 등산객 한 분이 반기셨다. 연방 가픈 숨을 할딱이는 아이들을 안정시켜놓고 서둘러 사과를 깎아 목을 축였다. 평소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치던 아이도 덩달아 한 조각을 먹는다. 모든 게 산에 가면 꿀맛이다.

 

엄청나게 가파른 길을 서둘러 올라 마침내 목마산성에 도착했다. 그 탓에 아이들은 혼비백산한 얼굴로 가쁜 숨만 헐떡인다. 잠시 안정을 시키고 나서 목마산성을 알현했다. 산성에서의 멋진 풍광은 여태껏 고생한 것들을 잊게 해 준다. 목마산성은 화왕산 북봉으로부터 뻗은 지맥에 축조한 산성이다. 성벽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창녕 읍내가 한눈에 훤히 다 보인다. 아이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목마산성에서 내려보는 창녕은 올망졸망한 고분과 함께 어우러져 평온하다.

 

잠시 땀을 식힌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어디 가나 사진 찍는 게 필자의 취미다). 몇 번 올랐던 경험으로 '이제부터는 제법 평탄한 길이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먼저 화왕산성 주등산로를 향해 내달아간다. 처음 올랐을 때와는 달리 맨 뒤 아이들을 따랐다. 가는 곳곳마다 산 두더지가 파헤쳐 놓은 흙무더기가 부풀러 올라 있었다. 아이들은 그것이 신기한지 팔로 꾹꾹 다져보곤 했다. 이즈음 화왕산은 억새가 장관이다. 등산로 곳곳마다 드문드문 팬 억새가 마중을 하고 있었다.

 

혼자 같으면 벌써 정상에 다다랐을 시간, 하지만 산행 초보자가 많은 아이들과의 산행이라 더뎠다. 그래서 정상을 코앞에 두고 점심자리를 마련했다. 사는 일 중에서 먹는 것이 최고라고 아이들은 서둘러 가방을 풀었다. 갖은 먹을거리들이 줄줄이 나왔다. 대중을 이루는 것은 김밥이었으나, 개중에는 김치볶음밥도 있었고, 자신이 직접 만든 기발한 음식도 내놓았다. 아이들에게는 제 것이 따로 없다. 허겁지겁 나다니며 여러 음식을 나눠먹는 모양새가 나의 어린시절 한 삽화를 보는 듯했다(필자는 맨밥에다 열무김치, 배추겉절이, 멸치무침, 된장에다 양파고추를 준비해 갔다. 그 중에 열무김치는 단연 인기였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동이 났으니).

 

점심을 먹은 뒤 이내 화왕산 정상(756m)에 다다랐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대단했다. 지난번 학교 뒷산(덕암산)에 올랐을 때보다 더 감동이 컸나 보다. 사위가 뻥 뚫린 듯 죄다 한눈으로 내려다 볼 수 있으니 그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적어도 산에서만큼은) 그뿐이랴. 화왕산 억새군락이 아이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정상에서의 감흥을 뒤로 한 채 아이들은 제 키보다 한 팔이나 웃자란 억새터널 속으로 곧장 걸어 나갔다.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듯한 뿌듯한 얼굴이었다. 아이들과의 산행은 이래서 즐겁다.

 

산성을 한 바퀴 돌면서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교실에서 사전수업을 했기에 긴 얘기는 덧붙이지 않았다. 아이들 눈으로, 아이들 스스로의 마음에 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화왕산성은 화왕산 경상부의 험준한 암벽을 이용해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산성'이다. 동쪽 성벽은 대부분 돌로 쌓았으며, 서쪽의 성벽을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현재 남아 있는 성은 1.8㎞로, 성벽의 높이는 4m 정도이며, 폭은 3-4m이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이미 조선 전기에 폐성이 되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인 1595년에 다시 쌓았고, 그 이듬해에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이 성을 근거로 의병활동을 하면서 내성을 쌓았다고 한다. 성 안에는 군량미를 저장하는 군창, 9개의 샘과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3개의 연못은 현재에도 확인되며, 산성 중앙의 연못 주위에는 많은 건물터가 남아 있다.

 

또한 창녕 조씨가 이곳에서 이름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새긴 '창녕조씨득성비'도 있다. 뿐만 아니라 성 안 곳곳에서는 고려와 조선시대 파편들과 신라, 가야의 토기들이 출토되어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화왕산성이 군사적으로 이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오늘 만난 화왕산성은 예전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전에는 동문과 남문이 허물어져 있었는데, 이참에 말끔하게 새로 단장되어 있었다. 성벽은 튼튼하게 잘 복원되었다. 하지만 왠지 성을 새로 축조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옛 것이란 흔적을 너무나 깡그리 지워버려 일말 서운했다.

 

문화재란 이렇게 보존하고 관리하는 게 아니데….(지난 5월 아내와 개성관광을 갔을 때 그곳에서 보았던 문화재는 다소 허접한 느낌은 있을망정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산성 전체가 아예 새롭게 만들어져 있었다. 복원된 한 자락을 보면 그건 마치 중국의 만리장성과 같은 느낌이었다고는 할까. 너무나 생소했다.

 

실망감이 컸지만 성벽을 타고 한참을 걷다가 산성에 걸터앉아 주변을 휘돌아봤다. 사위가 모두 화왕산성을 에워싸고 도는 듯했다. 켜켜이 묻은 세월의 흔적들이 빛바래지 않았으면 주위 연봉들이 받들어 모시는 화왕산성의 감흥이 더 컸을 텐데….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도 오만 육천 평 남짓하다는 억새평원은 하얀 손을 내밀며 장엄하게 물결쳤다. 아이들은 좋아서 연방 팡팡 내달았다. 덤으로 전속 사진사(?)는 무지하게 바빴다.

 

동문 앞의 큰 바윗돌은 창녕 조씨 이름 유래를 설명한 '창녕조씨득성비'다. 조금 더 내려가니 새로 복원한 남문 앞발치에 산성에서 움푹 팬 '연자’가 보인다. 연지에서 출토된 수골은 발굴 결과 호랑이, 멧돼지의 두개골과 하악골로서 머리 부분만 잘라 연지 안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을 제의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서문에 서서, 1597년 정유재란 정황을 떠올려 보았다. 화왕산성에서 기세를 떨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호령이 들리는 듯했다. 붉은 옷의 의인(義人), 홍의장군 곽재우, 비단 그만 추앙받아서도 안 되겠지만 왜 유독 서슬퍼런 그의 기상이 새롭게 느껴졌을까? 아이들 마음에도 나와 같은 열망이 담겼을까? 불 뫼의 불이 이 화왕산을 온통 휩쌌던 그때의 처절함을 다시 보는 듯 하얗게 핀 억새들이 나직이 화답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미디어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화왕산, #목마산성, #억새, #갈대, #곽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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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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