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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통령도 글이나 오디오, TV로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할 수 있는 시대다. 사진은 지난 4월 13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대국민 기자회견.
 지금은 대통령도 글이나 오디오, TV로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할 수 있는 시대다. 사진은 지난 4월 13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대국민 기자회견.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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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방송 출연에 재미를 붙였는가 보다.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정기적 라디오 출연 방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노변방송'이다.

대통령의 정기적 라디오 출연 방송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원조다. 경제공황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뉴딜 정책을 추진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매주 라디오 방송에 나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화법으로 정부의 정책 추진과 국민들의 협조와 이해를 구해 큰 성과를 보았다. 이를 본 따 레이건 대통령이 주례 방송을 다시 시작했고,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역시 매주 거르지 않고 라디오 연설을 하고 있다.

뿌리치기 힘든 유혹, 라디오 주례방송

한국 대통령들 역시 노변방송을 했던 적이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88년 국민과의 대화라는 명분으로 반론권을 요구한 야당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례 라디오방송을 강행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의 주례 라디오방송은 청취자들의 외면 속에 멋쩍게 막을 내려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주례 라디오 연설을 추진했던 적이 있다. 노태우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역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2003년 7월 KBS 1라디오가 뉴스전문으로 특화하는 것에 맞춰 라디오 주례연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 연설은 성사되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반론권 보장 요구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결국은 포기했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예외 없이 라디오 주례방송을 추진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라디오 주례방송은 대통령들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인가 보다. 지난 9월 9일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시사 TV 채널을 통해 중계된 '국민과의 대화'가 이 대통령이나 청와대로서는 무척 흡족했던 모양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할 말이 많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에게 알리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말릴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제 일방통행 시대는 아니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난번 '국민과의 대화'가 흡족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대화가 아닌, 대통령 주도의 원맨쇼에 대한 국민들의 외면과 냉소적인 반응이 많았다는 것을 이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질의와 야당 반론권도 보장해야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에 출연해 주요 국정 현안들에 대해 기탄없는 토론의 장을 펼치겠다면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정도의 문답과 대화·토론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제 등에 대해서는 당연히 협의해야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방송 제작진과 라디오 진행자의 자유롭고 기탄없는 질의가 보장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인 연설 방식으로 하자면 굳이 공중파 라디오 방송에 나올 이유가 없다.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도 얼마든지 청와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글이면 글, 오디오면 오디오, TV면 TV로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본받아도 좋을 것이다.

만약 청와대의 각본대로 진행되는, 무늬만 대담이나 방담인 방송이라면 이는 말 그대로 공영방송을 농락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런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 또한 '대통령방송'이라는 치욕적인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 주례 방송을 하기로 작정한다면 분명히 해야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하다가 반응이 시원찮다는 이유 등으로 도중에 그만 두어서는 안 된다. 만약 주례방송을 시작한다면 임기 끝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해야 한다. 대통령의 이름으로 공공 전파를 활용하겠다면, 또 국민에게 할 말을 하겠다면 그 정도 각오와 약속은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또 하나는 야당에 대한 반론권이다. 대통령의 주례 방송과 관련해 꼭 야당에 반론권을 보장해야 하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이 주례방송 할 때 당시 야당인 평민당이 요구했던 것처럼,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례 방송을 추진했을 때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그 필요조건으로 주장했던 것처럼 야당에 '반론권'을 보장하는 것이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대통령 주례방송 문화의 정착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이명박 연설, #대통령 주례방송, #대통령의 소통방식, #노변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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