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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대한민국 최대의 국민 MT가 시작된 광화문 광장에서 어린이와 어른, 남녀 노소가 하나가 되어 어깨와 어깨를 걸고 함께 부르던 <아침이슬>이 주던 감동을 잊은 이들이 있을까?

노래운동 문화운동으로 민중을 깨웠던 빅토르 하라는 군부에 의해 손가락이 파내지고 손목이 꺾인 채 총에 맞아 사망한 시체로 발견됐다.
▲ 빅토르 하라 노래운동 문화운동으로 민중을 깨웠던 빅토르 하라는 군부에 의해 손가락이 파내지고 손목이 꺾인 채 총에 맞아 사망한 시체로 발견됐다.
ⓒ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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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노래들은 가두시위 현장에서 불리었으며 그들 역시 시위에 직접 가담하기도 했다.
그리고 폭동 진압 경찰에게 물대포나 최루탄 세례를 받으면서도 노래를 불렀다. 그러한 체험에서 빅토르가 직접 작곡헤서 칼라파윤 그룹과 함께 노래를 불렀던 <모빌오일 특수부대>라는 노래가  또 하나 태어났다.

그 제목은 시위 진압 부대의 이름과 당시 칠레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다국적 기업의 이름을 동시에 풍자한 것이었다. 그것은 개혁운동권의 노래가 되었고 나중에는 학생시위대의 외치는 소리와 최루탄 터지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하여 레코드도 취입되었다-책인용-

칠레 대통령 선거일인 1970년 9월 4일 80만 명의 대군중이 이탈리아 광장에서 시작해 산타루시아 언덕을 지나 중앙역까지 가득 메운 채 <우리 승리하리라>는 노래를 힘차게 합창했다.

개혁을 주장하던 사회주의자들이 승리했고 그들이 지지하던 인민연합의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칠레가 스페인의 통치로부터의 독립만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들과 과두체제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이루려는 순간이었다.

다국적 기업과 미국의 비호를 받은 부호와 중산층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칠레 민중들의 지지를 받아 선거로 선출된 세계 최초 사회주의 정부인 아옌데 정권은 발빠른 개혁을 시작한다. 온갖 방해에 아옌데 정부가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준비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은 칠레 군부를 지원하고 군부는 피노체트 (Augusto Pinochet)를 최고사령관으로 쿠데타를 일으킨다.

아옌데가 머물던 대통령 궁은 불길에 휩싸였고 아옌데 대통령은 자살했으며 체육관에서 5천명이 학살을 당한 것을 비롯해 칠레 전역에서 10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하거나 실종됐다. 광주 5·18과 같은 무차별 학살이 진행된 것이다.

인민연합을 지지하며 노래운동과 문화운동을 했던 유명한 가수이자 연출가인 빅토르 하라는 기타를 치던 손가락이 파내지고 양 손목이 꺾이는 모진 고문을 받은 뒤, 가슴에 수많은 총탄이 박힌 채 시체로 발견된다.

그가 민중에게 미치던 영향력을 증오하던 군부의 행위였다. 빅토르 하라는 그렇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가 남긴 노래들은 여전히 삶의 현장에서 학생들의 시위 현장에서 그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끈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민중이 그의 노래를 기억하고 부르는 한 언제나 결코 끝나지 않는 노래인 것이다.

<빅토르 하라- 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 노래>는  빅토르 하라의 아내 조안 하라의 기록이다. 조안 하라는 영국출신 발레리나로  칠레국립대학의 교수로 학생이던 빅토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그의 삶과 행적에 함께 했다.

빅토르 하라가 노래운동을 하던 당시 칠레의 상황은 현재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다. 다국적 기업을 등에 업고 민중의 배고픔과 고통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배를 불리던 부호들과 미국의 손아귀로부터 독립하려는 칠레 민중의 바람은 미국의 비호를 받은 군부, 다국적 기업의 지지를 받는 부호들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혔다.

농민 일곱 명이 사살됐고, 생후 9개월 된 아기 한명이 최루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부상자가 60여 명 나왔는데 거의 대부분이 가슴과 복부에 총상을 입은 중상이었다. 경찰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살해할 목적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대부분 일자리가 없는데다 집이 없었던 농민들이 닷새 전에 이리고인 가문이 소유한 공터를 점유함으로써 일어났다.-책인용-

빈민가 출신인 빅토르 하라는  민중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배고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정체성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몇몇 부호 가문의 노예처럼 사는 대부분의 농촌 사람들, 굶주림과 강도 높은 노동에 지쳐 있는 노동자들, 도시 외곽 빈민굴에서 기아와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과 여성들 등 칠레 민중들의 상처를 노래로 어루만지고 위로하며 그들의 자긍심을 일깨워 연대감을 형성한다.

노래할 때 그가 딴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변신했으며, 날개를 단 것처럼 보였다. 따뜻하고 곱고 열정적이고 익살을 부릴 수 있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목소리는 그 모든 것을 다 표현하면서도 강렬한 힘이 있었다.

빅토르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이념에 앞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문명화,  몇몇 사람에게 편중된 부가 소박한 모든 이들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인간이 인간 자신으로 대등하게 살 수 있는 조국을 꿈꾸는 그는 몽상가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꿈꾸던 그런 자유야말로 신제국주의의 물결과 물질에 휩쓸려 인간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 아닐까.

미국의 손아귀에 쥐여져 있다는 것과 다른 몇 가지 결점을 빼고 본다면 칠레는 아직 빵은 빵이고 흙은 흙일 수 있는 나라예요. 아직은 진짜 삶, 자연스러운 삶의 나침반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찾거나 자기 자신을 찾아 낼 수 있는 나라입니다. 나는 그들이 우리를 그들 식으로 ‘문명화’시키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나는 차라리 지금 그대로의 칠레, 다듬어지지 않고 개방적이고 야성적인 칠레 쪽을 더 좋아합니다. -책인용-

그에게 노래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었다. 노래야말로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평화의 무기였으며 상처를 치유하고 열패감으로부터 인간의 자존감을 일깨우는 비밀의 병기였던 셈이다. 그것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어떤 언어건 어떤 나라건 민중들이 모여 일하고 연대하는 곳에서는 민중들을 위로하고 힘을 실어주는 민중의 노래가 함께 한다. 

노래가 지닌 강력한 마법을 알기에 지배계급들은 민중의 노래를 말살하려 하고 민중으로부터 노래를 빼앗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노래는 노래 자체로서 불멸의 생명력을 지녀 사람들을 위로하고 일깨운다. 노래의 힘을 아는 빅토르는 무기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노래로 동지들과 고단한 삶을 사는 민중들을 위로했으며 평화로운 세상과 자유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다.

민주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는 사람들을 폭력으로 억압하는 것은 혁명적인 변화를 지지하는 대다수 사람들을 지배하는 수단이 될 수 없었다. -책인용-

그대  일상의 폭력에 분노하는가? 부당한 억압에 항거하는가? 무기 대신 서로의 어깨를 의지해 인간의  심장을 뒤흔드는  평화의 노래를 부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빅토르 하라/조안 하라지음. 차미례 옮김/삼천리/ 18,000원



빅토르 하라 - 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 노래

조안 하라 지음, 차미례 옮김, 삼천리(2008)


태그:#빅토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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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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