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소현세자 연재가 100회를 넘겼다. 장장 7개월의 대장정이다. 청나라 쪽 중요인물 홍타이지가 사망하였고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도 곧 죽게 되었으니 이제 분수령을 지난 것 같다.

국가도 흥하는 시기가 있고 쇠하는 시기가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전성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소현세자도 정점을 넘겼다. 헌데 작품 소현세자는 후반부가 더 재미있을 수 있다.

귀국한 소현세자가 허망하게 죽고 홀로 남은 세자빈의 처절한 혈투. 남편 잃은 여자의 몸으로 국가권력과 싸워야 하고, 임금과 싸워야 하고, 임금이 총애하는 후궁과 싸워야 하는 싸움. 아마 이보다 더한 불평등한 게임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본의 아니게 장비 즉, 효장황후를 예쁘게 묘사하지 못했다. 남편이었던 홍타이지가 죽자 시동생의 여자가 된 황후. 당시 시대상이나 여진족의 풍습으로 보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왠지 곱게 보아주고 싶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효장황후의 유령이 나에게 붙었나보다.

갈수록 재밌어지는 소현세자의 싸움

 심양 북릉에 있는 홍타이지 동상
▲ 홍타이지. 심양 북릉에 있는 홍타이지 동상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 고민하고 있는데 일거리가 터졌다, 독자들의 메일 문의가 쇄도하고 심지어 미팅 신청까지 밀려있다. 13일까지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학생은 빨리 만나주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얼마 전 편집부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국립OO기관에서 선생님을 특강 연사로 모시고 싶다고 하는데 전화번호 알려줘도 괞찮을까요?"

알려주어도 괜찮다고 답을 한 후 5분도 안돼 OO기관에서 전화가 왔다. 직원들과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특강을 준비중인데 모시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특강이 단발성이냐?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프로그램이냐? 누구누구를 연사로 모셨느냐?"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계속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며 서울대 교수와 <조선일보> 논설위원 등 쟁쟁한 멤버들이 다녀갔거나 앞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참석에 동의하고 '역사의 사실과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원고를 보내주었다. '진실과 사실'이라 하니 내부적으로도 관심이 집중돼있나 보다.

진실은 하나다. 사실은 하나 이상일 수 있다. 우리 역사에는 사실이 진실을 은폐한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1974년 당시 서슬 퍼런 중앙정보부에서 대공 사건을 터트렸다. 민청학련 배후에 인민혁명당을 재건하려는 배후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팩트'를 생명처럼 여기는 기자들 역시 팩트에 접근하기는커녕 엄두를 내지 못하고 보도자료에 의한 받아쓰기에 바빴다. 학생세력은 위축되었고 혐의자들은 송치되어 일사천리로 재판이 진행되었다.

대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피의자들은 확정판결 8시간 만에 전격 처형되었다. 처형자들은 북괴의 지령을 받는 반국가단체 성원이라는 것이 진실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앞가림을 하고 있었을 뿐 진실은 아니었다.

"어, 추워. 내복 좀 찾아주오"

지난달 27일 토요일. 결혼식 참석과 공연관람 등 2건의 일정이 예정돼 있었다. 집을 나서려는데 으슬으슬 춥다. 딱 느낌이 온다. 감기 몸살이다. 난 감기몸살엔 쌍화탕 두어병에 땀 쭉 빼면 거뜬하다. 체질이다.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내복 좀 찾아주."

"아니 이 냥반이 지금이 어느 때라고 내복 타령이우. 난 더워서 에어컨 켜야겠구만."
"몸 컨디션이 영 안 좋아. 입어야 겠어."

겨우 내복을 얻어입고 집을 나섰다. 강변북로에 들어서니 강바람이 콧속을 파고든다. 상쾌하다. 평소엔 겨울에도 강바람이 좋아 창문을 열어놓고 다닌다. 하지만 오늘은 찬 바람이 싫다. 창문을 올렸다. 웨딩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식장으로 발을 옮기는데 발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아내가 저만치 멀어졌다.

"같이 가요. 먼저 가면 누가 금반지라도 준답디까?"

앞서가던 아내가 기다려준다. 평소엔 이러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내가 앞서가면 뒤따라오면서 숨차하던 사람이 아내였는데 이상하다. 힘들게 접수대에 도착하여 거금 1장을 팍 질렀다.

혼주와 나는 40년지기 친구다. 총각 때 그랬다. '우리 서로 없이 사니까 혼사를 같이 치른다 생각하고 거금을 부조하자'고 이 약속이 현실화돼 줄 때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받을 때는 흐뭇했다. 결국 내 돈 맡겨뒀다 찾아오는 것인데도 공돈이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례사를 듣고 있는데 도저히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한이 왔다. 아내와 함께 살며시 자리를 떴다. 피로연은 뷔페식이었다. 산해진미가 그득히 쌓여 있는데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우선 접시를 들고 돌아다닐 힘이 없었다.

전복죽과 호박죽을 아내에게 부탁했다. 평소엔 맛있었는데 오늘은 맛이 없다. 밥하고 된장국을 부탁했다. 그것 역시 맛이 없어 들다 말았다. 몸 컨디션이 안 좋으니까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이 땡기지 않았다. 열심히 식사 중인 아내와 대화를 시작했다.

결혼식장에서 우리 부부는 생이별

"나 상암에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봐."
"그렇게 심해요?"

"좋아하는 육회를 눈 앞에 두고 소주 한 잔 못한 것은 처음이야."
"당신 많이 먹으라고 육회를 많이 가지고 왔는데…."
"난 집으로 돌아갈 테니까 당신 혼자 다녀와."

그렇게 부부는 이별하고 나는 집으로 아내는 상암으로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 딸아이로부터 문자가 왔다. '아빠 미워.' 답장을 보냈다. '아빠도 꼭 가보고 싶었는데 미안해.'

문자를 보내놓고 나니 추석 하루 전날이 생각났다. 막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흩어져있던 가족들도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명절이죠? 크쵸?"
"뻔한 걸 뭐라 묻냐?"
"사실 아빠, 저 내일 영국에 가게 됐어요~"
"영국 어디?"
"런던이요."
"무슨 일이기에 추석에 가냐?"
"태지가 입 맞추러가요."
"뭐? 누가 입 맞춰?"

막내가 입을 막고 키득거린다.

"서태지가 상암에서 공연이 있는데 런던필과 연습하러 가요."
"넌 거기 왜?"
"동행 취재예요."

7일만에 돌아온 아이로부터 초대받은 서태지 상암공연인데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서태지 열팬이나 광팬이 아니다. 다만 한국 공연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최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패티김의 '칸타빌라50', 잠실 주경기장에서 있었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등의 대형 공연은 하나도 놓치지 않았는데 아쉬웠다. 더욱이 RPO냐 RPCO냐를 두고 말이 많았던 공연이니 만큼 공연의 질과 루머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쉬웠다.

쌍화탕이 안 통하다니... 앗, 범인은?!

집에 돌아와 약국을 찾았다. 2층에 병원이 있고 1층에 약국이 있었는데 감기몸살 정도 가지고 병원을 찾는다는 것은 좀 거시기한 것 같아 약국으로 직행했다.

"몸살인 것 같아요. 콧물 기침은 없구요. 평소 이런 증상에는 쌍화탕 마시고 땀 흘리면 괜찮턴데…."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야리한 약사가 쌍화탕과 알약 10알을 내 놓는다.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땀뺄 준비를 했다. 헌데, 이게 웬걸. 나오라는 땀은 흐르지 않고 머리만 욱씬거린다. 2회분 약을 조금 당겨서 복용했다. 이건 또 무슨 일. 욱신거리던 머리가 빠개질 것 같으며 잠이 오지 않는다.

"야, 이게 무슨 탈이 붙었구나. 이건 분명 부작용이야."

생각하고 복용하던 약을 중단했다. 그래도 잠 한 숨 자지 못하고 하얗게 밤을 새웠다.

별 희한한 약도 있다 싶어서 계속 물을 먹었다. 나는 우리 몸의 신진대사에 물의 역할을 믿는다. 1.8L 물 한 병을 다 마시고 나니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부작용에서 정상으로 돌아왔을 뿐 몸살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30일 저녁 몸이 으스스 춥다. 병원에 가볼까 했지만 이까짓 감기 몸살 가지고 병원에 간다는 것은 내 인생에 없었던 일이기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밤은 점점 깊어 가는데 오한이 심해진다. 주위를 살펴보니 먹다 남은 쌍화탕이 있다. 1병을 마셨다. 1시간 이상 시간이 흘렀는데 아무런 기별이 없다. 1병을 더 마셨다. 땀이 나오기는커녕 머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이제야 범인을 잡은 느낌이었다.

며칠 전 '알밤까기'에서는 쌍화탕과 알약이 공동 출전하여 장본인을 알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쌍화탕 한 선수만 투입했으니 바로 이 놈이 범인이다 싶었다. 즉시 더 이상 복용을 중단하고 물을 마셨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머리가 아파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도 그렇게 생수병을 끌어안고 하얗게 지새고야 말았다.

전투기에 돌멩이 던져주고 싶은 아침

오전 9시가 지나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청각을 찢는 항공기의 굉음에 잠이 깼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국군의날 행사에 참여하는 비행기의 서울공항 비행로가 우리 집을 통과하고 있었다. 밤새 잠 한 숨 자지 못하고 겨우 한숨 붙이려는데 전투기들의 폭발음. 왕 짜증났다. 돌멩이라도 던져주고 싶었다.

비행기와 돌멩이 얘기를 하다 보니 58년 전 일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북한군에 점령당한 역사(驛舍)는 북한군 수중에 있었다. 탱크·야포 등 군수물자가 도착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유엔군 전투폭격기가 편대를 이루어 폭격했다.

쒜이익 하고 비행기 소리가 지나가면 우리는 귀를 막고 엎드렸다. 저만치 멀어졌을 때 고개를 들고 "야, 쌕쌕이다" "아냐,호죽기야" 라고 입씨름을 하고 있는 사이 역전에서는 화염이 치솟았다. 그리고 다시 우리 머리 위로 날아와 재공습을 감행했다. 이럴 때면 우리들은 바둑알만한 돌을 집어들어 비행기를 향하여 던지곤 했다. 고막이 터질 것 같으니까.

일을 하기 위해 PC를 열었다. 모니터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키보드를 눌렀다. 글씨가 써지는 것이 아니라 손 마디마디가 통증으로 다가왔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클 났다.

나는 연재를 하면서 먼저 써서 쌓아두고 차근차근 송고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그날그날 당일에 쓴다. 몇 회분 써두고 싶어 작업하면 집중이 안 된다. 소현세자를 연재하면서 "2~3일에 한번, 3일은 넘기지 말자"하고 나 자신과 약속하고 출발했다. 오늘이 그 3일이다. 소현세자 105회분을 송고해야 하는데 써놓은 것이라곤 한 장도 없다.

하늘에서 왕왕거리는 비행기를 원망하다가 눈에 띄는 것이 쌍화탕 병이었다. 바로 저것이 내 머리를 더 아프게 했고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하게 했던 주범이다 생각하니 괘씸했다. 분석하고 싶었다.

내가 산 쌍화탕은 쌍화탕이 아니었네

내용물이야 전문가도 아니고 시약도 없으니 넘볼 수 없고 외부를 샅샅이 흩었다. 수색에 들어감과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약명이다.

내가 약국에 들어가서 "쌍화탕 주세요"라고 했는데 '탕'은 어디론가 실종되고 그냥 '쌍화'다. 상표권 문제 때문에 그랬겠지 라고 넘어갔다. 채 1분도 안돼 시야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혼합음료'다. '매출신장을 꾀하는 제약회사의 영업 전략이겠지'라고 이해하면서도 점점 의아스러웠다.

편의점에서는 약을 팔지 못한다. 그런데 제약회사에서 봤을 때 편의점은 황금시장이다. 이것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 뭔가 성분을 털어내고 합법적으로 진입한 상품들이 편의점에서 팔리고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약국과 시장의 환경이 다르고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업주에게 마진 폭을 많이 주는 인센티브로 점주를 잡아야 한다. 이러다 보면 값싼 재료로 생산된 혼합음료가 공급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지 않을까.

이것을 증명해주는 재료가 딱 걸렸다. 원재료명을 살펴보니 쌍화농축엑스 1% 고형분. 그 1%마저 중국산이 60%라고 쓰여 있다. 내가 약으로 알고 마셨던 약이 이와 같은 원재료로 만들어진 음료란다.

약을 먹었든 음료를 마셨든, 먹고 병이 나았으면 그만이겠지만 오히려 더 아팠으니까 문제가 있다. 더욱이 중국산이라 하니 멜라민과 겹쳐 불길한 생각마저 밀려온다.

한 줄도 못 쓰겠다, 내가 졌다

원고를 보낼 마감시간도 닥쳐온다. 딱히 정해진 마감시간은 없지만 내 마음속에 그어놓은 선이다. 헌데 한 줄도 쓸 수가 없다. "내가 졌다"고 두 손을 들었다.

일평생 안하던 짓인데 감기 몸살 때문에 병원에 간다는 것이 남세스러웠지만 빨리 회복하여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먹으면 더 아픈 이 약의 '정체를 알아야 겠다' 싶었다. '쌍화' 빈 병도 주머니에 넣었다. 진료실에서 의사와 마주앉았다.

"몸살 같은데요. 평소에는 쌍화탕 몇 병에 땀 빼면 거뜬했는데 이번에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 같애요."
"그 밖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요?"

"몸살 초기에 담배가 싫어지드라구요. 그래서 40년 이상 피운 담배, 그 날부터 끊었지요. 닷새째입니다. 금단 현상이 몸살에 무슨 영향을 주나요?"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영향을 줄 수는 있지요."
"쌍화탕만 먹으면 잠을 못 자고 꼬박 밤을 세우는데 왜 그래요?"
"체질에 따라 그러실 수도 있습니다."

"원재료 명을 보니까 중국산 60%라는데 요즘 멜라민 파동도 있고 기분이 안 좋습니다."
"언짢으시면 먹지 마세요."

주사 한 방을 맞고 처방전을 받아 약을 복용했다. 1시간 정도 지나니까 마비 비슷하게 시큰거리던 팔과 손가락 통증이 사라졌다. 2시간 정도 지나니까 글을 쓸 수 있었다.

정신없이 몰아붙였다. 몰입이다. 다 끝내고 나니 몸살 기운이 남아서일까, 온 몸이 후줄근하다. 편집부에 송고하고 나니 긴장이 풀린다. 눕고 싶다.


태그:#사형대, #쌍화탕, #서태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