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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참 예쁘게 느껴진다. 또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단풍도 그렇다. 시간이 흐름에 어김없이 다가오는 자연의 축복이 너무나 고맙다.

봄은 뭔가 희망이 솟고 들뜨기 쉬운 계절이라면, 가을은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삶에 대해 무언가 생각하는 그런 계절이다. 해서, 가을은 독서하기에 좋은 시기다.

책과 평생 친구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 만큼 좋은 친구가 있을까?

헌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한다. 나 또한 그 대중 속에 끼어 역시나 독서와 그리 친한 편은 아니다. 왜일까? 내 경우,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책을 읽으면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선입관이 저 밑바탕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해서, 약간은 어렵고 지루한 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책 몇 장을 넘기면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책은 어느새 수면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잠깐 자다 일어나면, '역시 책은 나하고 안 맞아, 지루해'하며 책과 친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책을 통한 '지식' 획득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강요받다보면 책읽기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문이 된다. 그냥 편안히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야, 만화책 그만보고 공부되는 책 좀 봐라."
"책 다 봤어? 내용이 뭐여, 줄거리 한 번 적어봐."
이러면 책 읽는 즐거움이 반감된다.

예전엔 이외수라는 이름 석 자를 떠올리면 '괴짜' '광인' '천재' 이런 단어가 그냥 연상되었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그를 '유별난' 사람이라 생각했다. 헌데, 마흔을 코앞에 두니, 그의 삶에 대해 그의 철학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을,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한다. 바로 이외수의 생존법 <하악하악>이다. 이 책은 짧은 우화들을 통해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물론, 재밌는 비유들이 있어 중간 중간 웃음을 주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또 책 중간 중간엔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정태련의 민물고기 그림들이 실려있어 눈길을 끈다.

책을 접하자 마자 든 생각은 '책제목이 <하악하악>? 이게 뭐야?'였다. 목차도 그렇다. '털썩, 쩐다. 대략난감. 즐!'등등. 들어는 봤으나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인터넷신조어들을 예순을 훌쩍 넘긴 작가가 쓰다니! 아직 그의 마음 나이는 젊은 사람 못지 않은 것 같다.

오랫동안 글을 써온 작가에게도 글쓰기는 녹록치 않은 일인 것 같다.

때로는 글 한 줄이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기도 한다. 나중에 잘못된 내 글을 발견하면, 바지의 남대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인파가 들끓는 거리를 활보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런데 글쓰기가 내 직업이다. 후덜덜. 오늘도 남대문을 조심하면서 새벽부터 자판질. (본문 140쪽)

인터넷에 별 생각 없이 쓴 악플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듯이 글도 말처럼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 작가 역시 악플에 상처를 받았는지 신랄하게 악플을 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지대공감 자작속담 '악플 끝에 살인나고 친플 끝에 정분난다.' (본문 133쪽)

악플에 대해 말이 많다. 도덕적으로 정화해야 할 부분을, 법적으로 간다면 이 또한 바람직하지는 않다. 네티즌들 스스로가 선플을 달도록, 정당한 비판 속에서 소통하는 그런 문화가 아쉽다.

그대 신분이 낮음을 한탄치 말라. 이 세상 모든 실개천들이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았다면 어찌 저토록 넓고 깊은 바다가 되어 만 생명을 품안에 거둘 수가 있으랴. (본문 43쪽)

그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고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는 처지라면, 그대의 인생길은 당연히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많은 장애물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의 장애물은 하나의 경험이며 하나의 경험은 하나의 지혜다. 명심하라. 모든 성공은 언제나 장애물 뒤에서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본문 126쪽)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에서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아 가는 것. 그 과정 자체가 행복이 아닐지. 현대인들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불행한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다면 요즘처럼 웬만큼 먹고 살면 예전 정승이 부러울까?

평범한 일상에서 깊이 있는 생각을 요하는 그의 책 <하악하악>. 그는 거친 숨소리로 삶을 활기차게, 욕심 부리지 말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 같다.


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 해냄(2008)


태그:#하악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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