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성을 담아 제물을 차리고 있습니다.
 정성을 담아 제물을 차리고 있습니다.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으면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종교에 의지하겠지만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마음을 잡아줄 의지처를 찾아나선다.

나 역시 그렇다. 큰 일을 앞두고 있을때면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생각하게 된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친정 엄마를 큰 일을 앞두고서는 찾곤 한다. 돌아가신 지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나서 내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엄마를 힘들고 어려울 때는 찾게 되니 자식에게 엄마의 존재는 영원한가 보다.

큰 일 앞두고 찾게 되는 조상님

큰 애를 대학 보낼 때도 그랬다. 그 때 사실 불안했다. 시험을 앞두고 부터 합격자 발표가 나는 그 날까지 불안함과 초조함 속에서 날을 보냈다. 그 때 친정 작은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김실아, 많이 불안하제. 마음이 안정이 안 되거등 마음 속으로 빌어라. 조상님들께 도와달라고 빌어라. 그라마 도와주실꺼다.”

작은 엄마는 돌아가신 할머니께 빌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란다. 작은 엄마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나 역시 딸애가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자 저절로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렸다. 

이제 얼마 후면 대학입학 수능시험일이다. 우리 아들도 이번에 시험을 본다. 아들이 전심전력을 다해서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겠지만 그래도 뭔가 힘을 보태고 싶다. 하늘이 도와주셔서 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잘 봤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조상을 섬기는 아름다운 마음.
 조상을 섬기는 아름다운 마음.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에 아는 이가 전화를 했다. 종친회에서 조상님들을 찾아가는 가을여행을 할 계획인데 같이 가자고 그랬다. 대개의 경우 종친회는 남자들의 무대이지 여자들의 세계는 아니다. 더구나 다른 가문으로 시집을 간 딸네 입장에선 친정 쪽 종친회 일은 별 관심이 없게 마련이다.

수능 시험 앞둔 아들에게 좋은 기운이 갔으면...

내가 태어나고 자란 안태(安胎) 고향은 경북 청도군이다. 청도군에는 고성 이씨들이 많이 사는데 우리 동네도 역시 고성 이씨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집성촌이다. 타성받이들은 본성받이들에게 눌려서 기를 못 펴고 살았을 정도로 고성 이씨들의 입김이 강한 동네이다.

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서당이 있다. 그 서당은 작은 서원만큼 규모가 크다. 지금은 그 기능을 상실하고 향사나 지내는 곳으로 변했지만 과거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학동들이 모여서 천자문을 비롯해서 명심보감 등을 배웠다 한다. 서당이 우리 동네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큰 자랑거리로 여긴다.

고풍을 찾는 분들이 우리 동네에 오면 서당을 보고 경외감을 갖게 된다.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역사를 말해주고 서당 지붕의 기와가 세월을 보여주므로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것이다. 작은 시골 동네에서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 시설이 있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 가문의 융성함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또 학문에 대한 숭상이 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리라. 때문에 예법을 아는 이들은 서당 앞에서 한참 동안 서성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 문중 사람들이 학문을 좋아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 식구들도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할아버지 부터 어린 우리들까지 모두 다 책을 즐겨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형제간들은 학교 다닐 때 남들에게 안 빠질 정도로는 공부를 했다. 특히 역사나 문학, 지리 같은 문과 쪽 과목들은 특별하게 더 잘 했다.

아들은 엄마를 닮는다더니 우리 아들도 문과 쪽 성향이 강한 거 같다. 사회 탐구영역과 언어영역 쪽은 저절로 공부가 되는데 수리 영역은 아무리 해도 점수가 안 나온다며 고민을 한다.

아들이 나를 닮은 거 같다는 생각을 하자 뭐든 자꾸 그 쪽으로 끌어다 붙이게 된다. 별 거 아닌 것에도 의미를 붙이게 된다. 그리 생각해서 그런걸까 올해는 이상하게 친정 쪽과 관련된 일들이 자꾸 생기는 거 같다. 그냥 내 속 짐작으로 우리 아들은 외가집 쪽과 관계가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그래서 고성 이씨 종친회의 조상님 찾기 여행에 따라나서기로 했다. 왠지 모를 기대감을 안고서 경남 고성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보는 눈맛이 시원한 고성 이씨 7대조 '문희공 이존비' 의 묘소
 보는 눈맛이 시원한 고성 이씨 7대조 '문희공 이존비' 의 묘소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외손이 잘 되는 자리라는데...

1박2일 일정으로 경남 고성군에 있는 조상님 흔적들을 찾아뵈었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충북 청원군에 있는 ‘문희공’ 묘소에도 들렀다.

‘문희공 ’은 고성이씨의  7대조이신데 고려 충렬왕 때 사람이다. '문희공'께서는 원나라에 간 충렬왕을 대신해서 3년간 정사를 대신 봤다고 한다. 신하가 섭정을 한 것으로는 우리 역사에서 문희공이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한다.

종친회 일을 보는 분이 조상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내게 그랬다.

“문희공 할아버지를 모신 자리는 특히 외손들이 잘 되는 자리라고 해요.”

외손이 잘 된다면, 우리 아들도 외손에 들어갈 테고, 그러면 무조건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산중에 있는 산소를 찾아서 길을 나섰다. 차에 남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발끈을 조여매고 길을 나섰다.

조상님들을 찾아뵙는 일은 그러니까 나와 내 자식들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의 발현이라고 생각된다. 종교활동들이 대부분 기복신앙으로 나타나듯이 조상님 섬기는 마음 역시 그와 비슷하다고 본다. 나도 솔직히 내 자식이 잘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조상님들의 산소에 참배를 했다.

이제 열흘 뒤면 수능 시험일이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렵겠지만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히길 빌어본다. 그 동안 쌓은 실력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시험을 다 미치고 나왔을 때 더 이상 원도 한도 없었으면 좋겠다.

문희공 할아버지 산소 자리는 특별히 외손이 잘 되는 자리라고 했는데, 확 트인 산소 자리 만큼이나 그 날 하루가 잘 풀리기를 빌어본다.


태그:#수능 시험, #고성 이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