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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토종꿀을 따러 가는 길은 자연이 동행한다. 섬진강 물길도, 쌍계사 십리벚나무 길도 따라나선다. 있을 건 다 있다는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 마음을 앗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쌍계사>와 굽이굽이 산으로 내닫는 칠불계곡도 있다. 공부할 때 종일 눕지 않고 하루 한 끼니만 공양하며 묵언 정진하는 규율로 중국 당나라에까지 유명세를 떨친 ‘아(亞)자방’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하였다는 칠불사도 만나볼 수 있다.

 

야생차밭, 푸르른 대나무, 울긋불긋 색색의 단풍들도 반긴다. 눈길을 거둘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산천이 끝없이 펼쳐진다. 고즈넉하고 순수한 시골마을 하동군 화계면 범왕리. 칠불사 3km 이정표에 맞닥뜨리자 절로 가고픈 마음을 억누르고 그대로 내달렸다.

 

마음 한 자락 내려놓아도 좋을 '목통부락 산재골'

 

 

너무 늦게 나선길이라 토종꿀 현장을 보려면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마을 어귀에는 느티나무 노란 잎이 수북이 내려앉아 푸근한 융단이 연상됐다. 산재골로 향했다. 부부가 와이어 도르래를 이용해 산에서 벌통을 내리고 있었다. 벌통 2개를 떠서 연결해 자그마치 무게가 30~40kg, 아저씨는 벌통을 힘겹게 들어올린다.

 

이곳은 하동군 화계면 범왕리 목통부락 산재골이다. 마을 사람들은 옛날 목통마을에 어름나무가 많아 어름'목'을 써서 마을이름이 ‘목통’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돌 틈사이 보리수나무아래 멍멍이는 도를 닦는 표정이다.

 

전봇대에 기댄 지게에는 산촌의 여유로움이 머문다. 까치밥만 몇 개 남은 감나무에는 하늘수박이 주렁주렁하다. 산자락의 한산한 계곡에는 평상이 한가롭게 놓여있고 빈 의자에는 단풍잎이 머물고 있다. 잠시 그곳에 마음 한 자락 내려놓아도 좋을듯하다.

 

숲을 헤치며 산길을 따라갔다. 골이 끝없이 이어진다. 산길에는 하늘거리는 억새들이 가을을 노래한다. 숲길은 마음을 편하게 어루만진다. 바위를 타고 오르는 무더기진 담쟁이덩굴의 기다란 잎은 마음을 뒤흔든다. 풀숲에는 흔히 뱁새라 부르는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날쌔게 오가며 노래를 한다. 발밑에 바스락대는 낙엽, 하늘을 뒤덮은 잡목, 숲길은 터널을 이루고 있다.

 

"꿀 농사지을 때가 정말 좋아요"

 

 

켜켜이 쌓아올린 한봉의 벌통에는 벌이 느릿느릿 드나든다. 부부는 지리산 산속에 벌통이 100여 통이 있다고 한다. 세월을 잊고 산다는 김용모(64)씨는 한봉 벌을 친지가 28년째라고 한다.

 

꿀을 따낸 벌통은 끓는 물에 소독을 한다. 소독을 하지 않으면 나무로 만든 벌통에 벌레가 생기기 때문이다. 창고에는 산에서 채취해온 벌통이 가득하다. 노란 화분가루에서는 진한 꽃향기가 난다. 1년에 한번 채취하는 한봉 꿀은 한곳에서 2~3통을 뜨는데 1통에 꿀 3리터가 나온다.

 

- 벌통마다 소독을 하나요?

"글안하면 벌레가 생겨서 안돼요."

 

- 노란 색깔은 뭐죠?

"이것이 화분가루여. 꿀과 함께 으깨서 체에 받쳐냅니다."

 

- 벌통 하나에서 꿀이 얼마나 생산되나요?

"1통에 3리터 정도 나오는데 올해가 최고 좋아요. 날씨가 가물어 갖고"

 

- 소득은 얼마나 돼요?

"그럭저럭 좋아요. 천만 원 정도 돼요. 꿀 농사지을 때가 정말 좋아요."

 

- 판매는요?

"추석 때 주로 많이 팔고, 알음알음으로 팔아요."

 

 

벌통을 탁탁 쳐서 커다란 통에다 꿀을 내린다. 통 내부는 칼로 긁어낸다. 로얄제리는 여왕벌이 먹는다고 한다. 한복자(62)씨는 꿀이 가득담긴 벌집을 건네주며 "꼭꼭 씹으면 초같이 껌같이 돼"라며 많이 먹으라고 한다.

 

여왕벌이 먹는 유백색의 크림색 물질인 로얄제리를 따로 선별하지 않고 그냥 내린 이집의 꿀은 맛이 유별나다. 목통마을 "꿀은 좋고 궂고 없이 다 똑같다"는 한씨는 설탕이 전혀 안 들어간 토종꿀은 1.8리터에 30만원에 판매한다고 말한다. 일반 꿀은 8만원이다.

 

- 로얄제리를 어떻게 구별하나요?

"우리는 재주가 없어서 그냥 내려요."

- 꿀이 많이 나오나요?

"올해는 비가 안 왔잖아요. 그래서 꿀이 너무 좋아요."

 

지리산에서 채취한 토종꿀, 그 맛이 깊고 향이 강하다

 

 

토종꿀은 진하다. 그 맛이 깊고 향이 강하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진짜 꿀, 1년 내내 지리산에서 피고 지는 꽃향기가 가득 담긴 잡화꿀 한 숟갈에 지리산이 내 몸에서 꿈틀댄다.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피는 지리산 야생화를 밀원으로 하는 목통마을의 꿀맛은 아주 특별하다. 자연이 그대로 담겨있다.

 

"하늘나라 아닙니까? 화개에서 제일 높은 곳이거든요."

 

꿀을 떠먹기 위해 컵에 숟갈을 넣으니 컵이 따라 올라온다. 토종꿀은 노랗고 진득하다. 이들 부부는 3년 전에 수확해 놓은 꿀을 도둑맞아 아픔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팠죠. 그 아픔이 오래까지 안 가시드라고요. 그 해에는 20되(36리터)밖에 못했어."

 

꿀에 홍삼을 재워 먹으면 피로회복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또한 "꿀은 물에 잘 안 녹기 때문에 꿀을 그냥 떠먹고 물 마시는 게 가장 좋아요"라며 김씨 부부는 자신들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진짜 꿀 좀 보여주세요.

“이게 진짜 꿀이여, 그런데 사람들이 안 믿어. 진짜를 보여주면 가짜라고 그래. 시중에 나온 거는 불에 녹인 거여. 진짜 꿀은 여름철에는 부글부글 올라와, 그라면 사람들이 변했다고 그래. 그게 진짜 꿀인데...”

 

진짜를 못 믿는 세상, 가짜를 진짜로 여기는 세상인심이 어쩐지 씁쓸하다. 지리산 목통부락  산재골에서 채취한 토종꿀의 진짜 꿀맛처럼 그렇게 달콤한 세상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나만의 욕심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여수미디어코리아,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토종꿀, #지리산, #목통부락 산재골, #꿀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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