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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다. 난해성으로 일대를 풍미한 그의 철학의 진수야 과문한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 문구 정도는 대충이나마 짐작이 간다.

미네르바는 지혜와 전쟁의 그리이스 여신 아테나에 해당하는 로마신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문구의 의미는 어떤 시대나 사건의 본질, 참모습은 그 시대의 말미에 가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일 게다.

요즘 미네르바가 인터넷 검색 순위 상위에 랭크되고 신문 지상에도 자주 오르내린다. 말하자면 스타덤에 오른 셈이다. 이 미네르바는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서 경제 관련 토론글로 인기를 끈 어떤 논객의 필명이다. 그는 경제 현안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혜안으로 네티즌들로 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견했고 리만브라더스의 파산과 이것이 국내 경제에 끼치는 파장을 예측했다고 한다.

그런데 국가정보원에서 그의 신원을 파악했고 그가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13일, 미네르바가 절필을 선언했다.

그는 절필을 선언한 글에서 자기 마음 속에서 한국을 지운다고 했다. 경제 예측을 하는 것도 불법이라니 입 닥치고 있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국과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애국심을 가지고 공동체 의식 속에 살아온 것이 얼마나 가증스런 기만행위인지 깨달았다고도 했다.

그의 말 속에는 부당한 권력을 상대로 당당하게 싸워 나가겠다는 것보다도 더욱 깊이 정부와 국가에 대한 불신감과 절망감이 짙게 배어 있다. 물론 그런 국가정보원의 행태에 대해 네티즌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제 막걸리 보안법 시대라도 다시 열겠다는 것인가라고 성토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그런 국가정보원을 위해 국가정보원법,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고, 테러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의 정보수집활동 및 직무영역을 넓혀 과거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법원이 기각한 오세철 교수등 사노련 관련자 5명에 대한 구속 영장을 재청구 했고, 법원은 시위진압을 거부한 전경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13일, 종부세의 핵심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선고가 있었고 남북관계는 대북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고 이명박 정권은 불과 10개월도 채 못 되었지만 정권의 본질을 알리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벌써 날기 시작한 모양이다. 아니 이미 훨훨 날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또 하나의 미네르바를 토론 무대에서 강제로 끌어내렸다. 아마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화살로 떨어뜨린다면 본질도 숨겨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강만수 장관과 헌법재판소 둘 모두가 서로 만났다고 말한데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다고 하면서도 정작 만난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결국 몰래 만났어야 된다는 말 밖에 안 된다. 그들은 정말 진실을 은폐한다고 해서 본질이 영원히 숨겨지리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태그:#미네르바, #국가정보원, #막걸리보안법, #다음아고라,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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