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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볼 수 없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바람 끝이 차갑구먼”

“가을은 이미 떠나버렸어, 저 서릿발 좀 봐? 겨울이 벌써 똬리를 틀고 있잖아?”

 

대둔산에 가을은 없었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입니다. 기암괴석과 천야만야한 절벽, 그리고 기기묘묘하게 솟아오른 바위봉우리들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던 일행들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지요.

 

11월 18일 전국 100대 명산 중 42번째로 찾은 대둔산은 겨울바람이 차가와 손가락이 시렸습니다.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인삼의 고장 충남 금산땅으로 접어들어 달리다가 대둔산이 저만큼 바라보이는 고갯길에서 잠깐 멈춰 섰습니다.

 

이치(梨峙), 배재라고 불리는 충남 금산과 전북 완주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였지요. 화장실에 들렀다 나온 사람들이 가깝게 바라보이는 대둔산의 바위봉우리를 바라보며 산을 어림해보고 있었지만 만만치 않아 보이는 표정들입니다.

 

임진왜란 때 육상전투 최초로 대승을 거둔 전적지

 

고갯마루 한쪽에는 대둔산 바위봉우리를 배경으로 이치대첩비와 황진장군전적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 고개가 바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육상전투에서 최초로 왜군을 격파하여 대승을 거둔 전적지였던 것입니다.

 

1592년 (임진년) 7월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군이 군량미의 현지보급을 목적으로 고바야가와가 약 2만 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치고개를 넘어 호남지역으로 진출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전라도 도절제사였던 권율 장군은 동북현감 황진과 함께 관군과 의병 1500여명을 이끌고 왜적과 맞서 이들을 섬멸했습니다.

 

이치대첩은 당시 승승장구하던 왜군에게 치명타가 되어 이후의 전쟁양상에 막중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왜군이 곡창지대인 호남지역 진출에 실패함으로서 군량미의 보급에 막대한 차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대둔산 자락의 ‘배고개’는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조선군에게 승리를 안겨준 전승지였던 것이지요.

 

대둔산 산행의 다른 기점이기도 한 이치를 출발한 버스는 골짜기 도로를 달렸습니다. 창문 밖으로 바라보이는 대둔산은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뾰족뾰족 치솟은 바위봉우리들이 병풍을 두른 듯 둘러쳐진 모습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지요.

 

이윽고 버스가 멈춰선 곳은 옥계동, 등산로는 오른편 가파른 산자락을 타고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날씨는 차가웠지만 맑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갓 헹궈낸 옥양목 빨래처럼 곱고 산뜻한 모습입니다. 이날의 일기예보는 호남 서해안지역에 첫눈이 내릴 것이라고 해서 아이젠까지 준비한 산행이었습니다. 내륙지역이긴 했지만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두 시간 정도만 고생하시면 그 다음부터는 능선길이니 괜찮을 겁니다. 능선과 봉우리에 올라 바라보는 경치도 좋고 시간도 충분하니 느긋하게 산행하셔도 될 겁니다.”

 

산행대장이 미리 안내했던 것처럼 바윗돌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가파른 산길은 매우 힘든 길이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금방 땀을 뻘뻘 흘리며 헉헉거리던  몇 사람이 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6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나이든 사람들이었지요.

 

뒤쳐지는 사람들을 배려하기도 할 겸 처음부터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 우리 일행들도 속도를 늦췄습니다. 30분쯤 올라 뒤돌아보니 맞은편에 불쑥 솟아있던 산봉우리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펼쳐진 옥계동 마을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돌계단길을 지나니 이번에는 나무계단과 밧줄이 걸린 길이 나타났습니다. 길은 여전히 급경사에 군대군데 바위들이 솟아있는 풍경입니다. 나무들은 거의 대부분 잎이 져버려 앙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자락 어느 곳에서도 고운 단풍은 찾아볼 수 없었지요.

 

한 시간여 만에 첫 번째 능선길에 올라섰습니다. 산마루에는 옥계동 1,2km, 마천대 4,3km라고 적힌 이정표가 홀로 서있었습니다. 대둔산의 정상 마천대까지는 아직도 멀고 힘든 길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정표 옆 좁은 공터에 불룩하게 솟아 있는 누군가의 무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무덤 앞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일망무제로 툭 트여 있고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골짜기의 풍경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명당(?)자리인가 봅니다.

 

가을이 머물다 간 자리엔 겨울이 똬리를 튼 서릿발

 

이곳에서부터 마천대까지는 구불구불 오르내리는 능선길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능선길이라고 해서 그리 만만한 길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른편은 그야말로 천야만야한 바위 낭떠러지고 그 뒤쪽인 왼편은 바윗길과 흙길이 번갈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여기 서릿발 좀 봐? 춥긴 추운 날씨구먼, 가을은 벌써 가버리고 겨울이 찾아 들었어”

일행들이 가리키지 않아도 곳곳에 하얀 모습으로 얼어있는 서릿발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할퀴며 숨어든 겨울이 어느새 산마루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둔산도 역시 앞모습과 뒷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구먼. 저 앞쪽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길이 나있을 줄이야?”

 

난생처음 대둔산에 오른다는 일행 한 사람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입니다. 그렇게 험해보이던 바위봉우리 뒤편에 이렇게 좋은 길이 나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게 산이나 사람이나 겉모양이나 번지르르한 말만으로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법이라니까?”

“그건 그려. 그 착하고 예쁜 문근영이를 씹는 못된 사람들 좀 봐? 그게 어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 지아무개라는 사람 있잖아? 그따위가 논객은 무슨 논객이라고? 그 따위 인간 같지 않은 논리에 덩달아 놀아나는 사람들 하고는 쯧쯧!”

 

대둔산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다른 것을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배우 문근영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에 8억 5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놓은 문근영을 좌빨이니 빨치산의 후손이니 씹어대는 댓글들과 함께 말도 안 되는 교묘한 이론으로 포장한 극우논객 지00씨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착한 일을 한 국민 여동생 문근영을 비난한 논객과 댓글에 분노하다

 

“그러고 보면 이 대둔산은 그런 사람들 하고는 정반대야? 앞모습은 험하고 무섭게 생겼지만 뒤에 이렇게 순한 길이 나있으니 말이야, 허허허”

 

일행들은 험한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순탄한 능선길을 걷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 되었던가 봅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으로 문근영을 비난한 사람들과는 달리 험해 보이는 봉우리 뒷길의 순탄함이 더욱 정다웠겠지요.

 

이 산의 옛 이름은 한듬산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논산지역의 일부에서는 한듬산이라 부릅니다. 대둔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두 가지나 됩니다. 오랜 옛날 계룡산과 겨루다가 패한 한이 깊어 한듬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도 있고, 우리말 한은 크다는 뜻을 가진 대(大)로, 듬은 마땅한 한자가 없어 듬에 가까운 소리인 진칠둔(屯)자를 써서 한자화 하다 보니 대둔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그러나 산세를 굳이 비교하자면 결코 계룡산에 뒤떨어지는 산이 아닙니다. 능선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봉우리들은 설악산이나 금강산을 방불케 하는 기묘하고 웅장한 바위산이니까요. 다만 산의 규모가 조금 작을 뿐이었습니다.

 

“우와! 저기 마천대다. 저 아래쪽으로 뻗어 내려간 바위봉우리들 좀 봐? 대단하구먼, 그런데 이름이 왜 마천대지?”

 

능선길을 걸어 마천대가 저만큼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일행들이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까마득한 바위봉우리 마천대 위에는 반짝이는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천대라는 이름이 참 특이합니다. 해발 878m로 대둔산의 정상인 마천대(摩天臺)라는 이름은 옛날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 봉우리를 보고 하늘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하여 붙여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장엄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아름답고 멋진 호남의 금강산에 홀딱 반하다

 

마천대 앞방향인 전북 완주 쪽의 능선과 봉우리들은 정말 대단한 모습이었습니다. 커다랗게 솟아오른 바위봉우리와 거의 수직으로 까마득한 바위절벽에서 자란 소나무들의 모습도 놀라움을 넘어 그 끈질긴 생명력에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의 뒤쪽 방향인 논산시 쪽은 부드러운 능선과 골짜기가 전혀 다른 모습이었는데 평화롭고 아늑한 풍경으로 다가왔지요. 봉우리 두 개를 더 넘어 드디어 마천대에 올랐습니다. 정상인 바위봉우리는 그리 넓지 않았는데 중앙에 ‘개척탑’이라는 구조물이 높직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옥계동에서 곧장 올라 능선을 타고 마천대까지 오는 동안에는 등산객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는데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행락객들이었습니다. 단풍이 져버린 썰렁한 산정에 오른 등산객들과 행락객들의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단풍대신 초겨울의 산봉우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조금 아래로 내려와 정상주와 간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잠깐 쉬고 있는 사이 뒤쳐졌던 사람들 몇이 올라왔습니다. 싸늘한 날씨인데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습니다. 간식과 함께 복분자 정상주 한 모금씩을 나눠주자 함빡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아, 힘들어 죽을 뻔 했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되죠?”

맨 뒤에서 힘들게 올라온 사람들은 나이가 65세인 남녀 세 사람이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힘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급경사 계단길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가을 설악산 하산길에서 왼쪽 무릎에 조금 이상이 생겨 치료를 받았지만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내려가자 ‘동학군 최후의 항전지’ 안내판과 추모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추모비와 안내판은 ‘대일 역사왜곡 시정촉구 범국민회의’에서 세운 것입니다.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동학군을 이끌었던 전봉준과 김개남장군이 체포된 후 접주급 이상 25명의 지도자가 최후의 항전을 하다가 순국한 장소였습니다.

 

최후의 항전지 옆에는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어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쉼터가 되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자 계곡을 가로지른 구름다리가 나타났습니다. 이 구름다리는 높이가 81m, 폭이 1m로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잇는 대둔산의 명물, 바로 그 구름다리였지요.

 

고소공포증이 있는 두 친구는 구름다리 건너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다른 일행들과 함께 조심조심 구름다리를 건넜습니다. 몇 사람은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아래쪽 계곡을 내려다보지도 못했습니다.

 

구름다리를 건너 임금바위에서 바라본 삼선줄다리가 오히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슬아슬한 모습입니다. 약수정에서 왕관바위에 걸쳐 있는 삼선줄다리 위쪽 직선으로 마천대가 정말 하늘에 맞닿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인삼동동주와 인삼 안주로 몸보신하다

 

“어떻게 할까? 나는 무릎 때문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려고 하는데...”

다음 산행을 위해서 바위 너덜 계단길은 피하고 싶었지요. 그런데 멀쩡한 다른 친구들도 덩달아 케이블카를 타겠다고 합니다. 내려가는 편도 요금은 1인당 3500원씩이었습니다.

 

“우와! 진짜 멋있는 명산이야 정말,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모습이잖아?”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며 일행들이 새삼스럽게 감탄사를 터뜨렸습니다.

 

“이렇게 멋진 등산을 했는데 그냥 갈 수 없잖아? 한 잔 하고 가야지.”

 

산 아래로 내려오자 술을 즐기는 일행이 팔소매를 붙잡았습니다. 길가의 음식점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들이 와글와글 떠들어대고 있었습니다.

 

“인삼동동주에 인삼튀김, 그리고 인삼소스까지. 이거 온통 인삼판이로구먼”

 

상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며 기분 좋은 농담이 오갑니다. 정말 음식상 위에 차려진 것들은 모두 인삼으로 만들어진 음식들이었습니다.

 

“가을 등산은 인삼보다도 몸에 더 좋다고 했는데 초겨울 산행에 인삼 몸보신까지 했으니 내일부터는 힘이 넘쳤겠구먼, 허허허”

몇 잔씩 마신 인삼동동주에 거나해진 일행들의 얼굴에 발그레 기분 좋은 홍조가 가득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어느 음식점 입구에 가득 피어있는 꽃들이 화려한 모습입니다. 꽃모양이 나팔꽃 비슷하지만 훨씬 크고 오이처럼 아래쪽으로 늘어져 매달려 있는 이 꽃 이름은 ‘천사의 나팔’ 정말 나팔꽃보다 더 나팔을 닮은 꽃입니다.

 

“어, 저기 단풍 좀 봐? 이 골짜기엔 아직 단풍이 남아 있었네.”

주차장으로 가는 길가에 서있는 단풍나무 한 그루가 가버린 가을을 아쉬운 듯 붙잡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대둔산, #이치, #서릿발, #초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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