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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3월 25일 곽태영 민족정기선양회 회장이 남산 '안중근기념관' 앞에서 박정희 친필 기념비 철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2005년 3월 25일 곽태영 민족정기선양회 회장이 남산 '안중근기념관' 앞에서 박정희 친필 기념비 철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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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암살범 안두희를 응징한 첫 번째 분

곽태영 선생님!

선생께서 승천하셨다는 소식을 간밤(12월 2일) 늦은 시간에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방 국장은 선생의 비보와 함께 저에게 고인을 추모하는 글 한 편을 부탁하였습니다. 저는 방 국장에게 생전에 고인과 깊은 만남이 없었다고 정중히 사양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요즘 집필하고 있는 만주벌판에서 백마를 타고 대륙을 누빈 한 독립전사의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자꾸만 선생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미처 생전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과 또 하나는 선생의 공적을 끝내 기리지 못한 아쉬움이 앞을 가려 방 국장과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과 전화로 상의한 뒤 이 글을 올립니다.

미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은 백범 암살범 안두희를 응징한 첫 번째 분이 곽태영 선생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선생의 전화번호를 방 국장에게 전해 받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선생께서 쾌히 승낙하셨다가 약속일을 며칠 앞두고 선생께서 몸이 편찮다고 연기요청을  하신 뒤 다시 이루어지지 않은 점입니다.

끝내 실천치 못한 고인과의 약속

그 뒤 2006년 6월 26일 백범기념관 현관에서 백범추모제에 참석한 선생을 처음 뵙고 인사를 드리자, 사실은 내가 박도라는 사람을 잘 몰라서 인터뷰를 거절했는데, 주위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인터뷰를 해도 괜찮은 분이라 하여, 큰 결례를 했다고 하시면서 선생이 정중히 사과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무 때나 좋다고 하여 다시 인터뷰 날짜를 잡는다는 게 제가 차일피일 미루다가 선생님의 승천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내일을 알 수 없는 게 세상사로, 일은 미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실은 백범 선생 시해 당시를 가장 잘 아시는 당시 선우진 비서, 그리고 아드님 김신 장군과의 면담도 이미 승낙을 받아두고서는 기왕이면 백범 선생 서거 60주년이 되는 내년 6월 무렵에 세 분을 한꺼번에 시리즈로 인터뷰할 예정이었습니다.

또 하나 죄송스러운 점은, 권중희 선생의 인터뷰 과정에서 한 누리꾼의 제안과 여러 누리꾼의 동의로, 백범 암살진상 규명을 위한 모금운동이 시작될 때의 일입니다. 제가 쓴 기사에 그런 제안의 댓글을 보고서(저는 그때 이대부고 교사였음) 퇴근길에 적선동에서 버스에 내린 뒤, 가까운 오마이뉴스 편집실에 들러 당시 정운현 편집국장을 비롯해 편집부 기자들과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였습니다. 결론은 편집부에서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한번 해보자는 결론이었습니다.

미국에까지 가서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 4~5명이 한 달여 드나들려면 최소한 3천만 원 정도의 경비가 들 것으로 예상, 목표를 3천만 원으로 정하였는데 모금액이 예상보다 훨씬 적게 모금될 때와 초과 모금될 경우를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골똘히 고민을 하자, 제 아내가 첫 고민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 참에 당신 학교 그만 두면 퇴직금이 나올 테니 만일 모금액이 부족하면 그 돈으로 다녀오라고. 그래서 곧 학교에 퇴직신청을 했습니다.

다음 초과 모금이 될 경우는 정운현 편집국장이 방안을 알려주었습니다. 만일 쓰고 남은 돈이 있으면 백범 암살범 안두희를 응징한 곽태영· 권중희· 박기서 세 분을 <오마이뉴스> 사무실에 모셔다가 남은 돈을 3등분하여 겨레의 이름으로 전해 드리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듣고 보니 매우 좋은 착상이라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하기로 정하고, 정말 열심히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하여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겠다고 맹세를 거듭하면서 모금하였습니다.

애초에는 그해 연말까지 한 달여 기간 동안 모금하기로 하였는데, 천우신조로 2주 만에 목표액 3천만 원을 초과하였습니다. 아마도 하늘에 계시는 백범 선생이 도와주셨나 봅니다. 그래서 즉시 모금 중단을 선언하였는데도 계속 답지하여 한화 4천여만 원과 미화 수백 달러가 모금되었습니다.

내 취재노트에 서명된 권중희 선생의 친필 현금 수령 영수증
 내 취재노트에 서명된 권중희 선생의 친필 현금 수령 영수증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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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으로 저와 권중희 선생은 미국에 가서 동포들과 유학생의 도움으로 40여 일간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을 드나들면서 서류를 들췄으나 끝내 암살 배후에 관한 똑 떨어진 문서는 발견치 못하고 허망하게 돌아왔습니다.

귀국 후 <오마이뉴스> 회의실에서 결산하자 잉여금이 한화 490여만 원과 미화 2,472 달러가 남았습니다.

그 자리는 정운현 편집국장, 권중희 선생, 저 세 사람이 있었는데, 갑론을박 끝에 모금은 '권중희' 이름으로 하였기에 권중희 선생의 의사를 따르는 게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결론으로, 정 국장의 제안은 접고 남은 잔액은 모두 권중희 선생에게로 인계하였습니다.

아직도 저는 그때 남은 성금으로 곽태영· 박기서 두 분을 모시고 의로운 행적을 더듬지 못한 점을 매우 안타깝고 죄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정운현 국장도 같은 심정일 겁니다.

민족정기수호에 앞장 선 생애

선생의 약력을 살펴보니까 평생을 일제식민지 청산과 민족정기수호에 앞장 서왔으며, 특히 군사독재 부활을 경계해 오셨군요. 1965년 강원도 양구에서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응징했으며, 2000년에는 서울 영등포 문래공원에 있는 박정희 소장 흉상을 제거하였고, 2001년 11월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쓴 탑골공원 삼일문 현판을 아들과 함께 철거하셨더군요.

평생을 조국과 겨레의 장래를 염려하는 우국지정으로 살아오셨으니까 당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선생 같으신 분이 계셔야 이 나라에 민족반역의 무리가 날뛰지 않을 텐데, 이제는 살판이 났다고 더욱 설칠 것 같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대통령인수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아이들을 초등학교부터 영어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민족정기에 먹칠을 하는 망발을 하더니, 마침내 일제 때 순사 아들이 이 나라 교육의 최고 책임자가 되어 지금 어린 영혼을 더럽히고 있으니 그저 말문이 막힙니다.

이런 현실을 두고 떠나는 선생의 마음이야 오죽이나 답답하고 괴롭겠습니까? 지난 우리 역사를 보면 국난 때는 반드시 의로운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앞으로 누군가 선생의 기백을 이어받은 의로운 인물이 나타나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 잡기를 기대합니다.

곽태영 선생님!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여러 선열과 더불어 이 나라 이 겨레를 살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평생 이루지 못하였던 조국 통일을 꼭 이루게 하소서.

                                                                            2008. 12. 3.
                                                                        불초 박도 재배

곽태영 선생은?
* 약력

생년월일 : 1936년 2월 20일

출생지 :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십포리

유족 : 배우자 한승자, 자 승훈, 여 소정

학력 : 1965년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주요 경력

1960년 4월 혁명 참여

1961년 국학대학 민통련 의장

1965년 강원도 양구에서 백범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응징

1985년 민통련 인권위원장

1998년 사월혁명회 공동의장(현 조국통일위원장)

2000년 문래공원 박정희 흉상 철거

2001년 박정희 친필 탑골공원 ‘삼일문’ 현판 철거

김구 선생 동상 건립위원,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 한국민족정기소생회 대표 등

2008년 12월 1일 자택에서 향년 73세로 별세

-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참조

* 빈 소 :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7호실

* 영 결 :  12월 4일(목) 오전 9시 강남성모병원 영결식장

* 장 지 :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 문 의 :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한찬욱 (016-235-5631)


태그:#곽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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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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