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교회의 장로님이신 아버님은 휴대폰으로 이 모습을 촬영하시며 "의식이 깨어나 회복된다는 강한믿음으로 촬영하시고 나중에 내게 보여주시리라 마음 먹으셨단다"
▲ 사고직후 의식이 없는 모습 교회의 장로님이신 아버님은 휴대폰으로 이 모습을 촬영하시며 "의식이 깨어나 회복된다는 강한믿음으로 촬영하시고 나중에 내게 보여주시리라 마음 먹으셨단다"
ⓒ 서치식

관련사진보기


2005년 5월 19일.

필자에겐 운명의 갈림길에 선 날이었다. 대학졸업 후 지역 일간지에서 10여년 동안 근무하다 도저히 생활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대리운전업체를 직접 꾸려 운영한지 불과 3개월 만에 다가온 얄궂은 운명의 순간이었다.

대리기사가 부족해 대신 대리운전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교차로 점멸등 안에서 영업용 택시와 추돌사고가 난 시간은 새벽 1시경. 주변엔 아무런 목격자도 없었다. 사고 수습이 더욱 어려웠던 대목이다. 심한 교통사고로 뇌출혈과 경추 2,6,7번 손상을 입은 필자는 전북대 병원 응급실에서 2개월 반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 후 만 2년의 입원생활과 1년의 통원치료를 통해 겨우 활동이 가능해 졌다. 아직도 남아있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거의 매일 2시간 이상 병원과 헬스에서 재활운동을 하며 재활에 재활을 다지고 있는 상태다. 아직까지 장애는 단지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그 긴 시간 포기하지 않고 재활하면서 몸으로 체험한 재활을 같은 처지에 있는 전국의 140만 재활 환우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됐다. 실의와 절망에 빠진 재활 환우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재활기를 시작한다.

응급실에서 퇴원한 후 의식을 회복하긴 했지만 예전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는 처참해진 모습에 아파트 베란다를 자꾸만 바라보곤 했는데, 그 땐 정말 생을 마감하고 싶은 지독한 절망감을 참을 수 없었다. 거기서 시작된 내 외롭고 고독한 재활투쟁은 먼저 어릴적 신앙을 되찾는 영혼의 재활부터 시작됐다.

하나님을 재활의 주치의로 삼고 오로지 홀로 재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온 느낌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우선 140만 재활 환우들에게,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고군분투하고 계실 가족분들의 노고에 심심한 경의를 표하면서 서툰 필자의 글을 부디 너그러운 혜량으로 보아주기 바란다.

두 번의 교통사고... 차라리 생을 포기할까?

그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루 하루 목적의식 없이 생활하던 내가 '재활'이란 힘들고 외롭고 무서운 길에 접어든 것은 2005년 5월 19일. 의식이 막 회복되었을 때 난 내 몸 어딘가가 잘못된 상태에서 무섭고 두려운 기운을 의식하면서 상당히 오래 잠을 잔 후 일어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통 사고 후 2개월 반만에 희미하게 나마 의식을 회복했다는 가족들의 얘기를 듣는 순간 내가 마치 싸구려 3류 영화 속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울컥 치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어버리지 않고 왜 살아났지?'하는  원망과 함께 조금만 내 몸을 자유로이 놀릴 수 있으면 3층인 병실에서 투신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1989년에도 난 보행 중에 차에 치여 약 10여 미터를 끌려가는 부상을 당해 간에 출혈이 생겨 위험한 사고를 겪은 경험이 있었다. 도대체 어디가 얼마나 잘못된 인생이기에 두 번씩 끔찍한 사고를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은 금세 삶에 대한 비관과 회의를 불어왔다.

의식을 회복한 후 옆을 지키고 계셨던 큰 형님께 "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 신은 내게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주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무의식 상태에서 조금씩 의식을 회복하면서 주변의 소리부터 점차 인지하기 시작하는 신비한 경험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의식을 되찾았다고 그날부터 맑고 명료한 의식이 되돌아오는 게 아니었다.

새벽 여명이 점차 밝아지듯 처음엔 보이는 것에 대한 지각없이 주변의 소음에 대해 인식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명료해지고 또렷해지는 경험을 했다. 가령 병실에 틀어놓은 텔레비전 뉴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뉴스 캐스터의 이야기 속에 내가 놓여 있다는 상상이 되풀이되곤 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 나는 것 중 하나는 중동 어딘가에서 테러소식을 뉴스로 보도했는데, 내가 그 상황에 처해서 테러를 당해 부상을 당한 것이라 상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안개가 점차 걷히듯 의식이 서서히 깨어나던 어느 날은 둘째 형수가 갑자기 내발을 주무르며 내게 수다스럽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걸 발견 하고는 “형수가 갑자기 성격이 많이 변했다! 이상하다 우리 형수가 원래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 내게 수다를 떤다. 형수가 갑자기 이상해졌다”는 말을 되뇌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 현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두달 반 만에 의식을 회복한 나를 위해 멀게는 수원에서, 청주에서, 대전에서, 논산에서 주말로 아니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교대로 내 곁을 가족들이 지켜 주었던 것이 얼마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특히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교회에서 장로님으로 오래 봉직하시며 많은 믿음의 형제들에게 믿음의 씨앗을 뿌려 성장시킨 탓에 목회자를 비롯한 믿음의 동지들과 교분이 남다르신 아버님 덕에 내 병실에선 늘 기도와 찬송이 끊이질 않았다.

가족들의 보호와 자극에 움트기 시작한 생에 대한 오기

그러나 이 모든 것들 조차도 이미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내겐 그저 남의 일 같았다. 결혼 후 새댁 때 불치의 병에 걸려 큰 바위 밑에 초막을 짓고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려 완쾌, 110세를 넘기신 당숙모님이 전화 기도도 처음엔 그저 남의 일 이었다.  그렇게 의식을 되찾고 힘든 뇌 수술을 앞둔 어느 날. 큰 형님이 주말을 이용해 오셔서는 내 휠체어를 밀고 병원 정원으로 가시자더니 갑자기 휠체어 바퀴에 돌이 걸리자 그저 화난 사람처럼 단호한 몸짓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 형님이 내게 무슨 심각한 소리를 하시려나보다. 내가 처한 상황이 굉장히 심각한가 보다'라고 서운한 생각도 했다. 그런데 평평한 잔디밭에 들어서자 형님은  “내 얘기 잘 들어라”하시며, "이제부터는 네가 장애자로 살텐데 장애자로 살면서 스스로 세상과 담을 쌓아 주변 사람부터 점점 자기를 멀리하게 만들어 결국은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걸 슬기롭게 극복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부턴 네가 하기 나름이다"고 하면서 어린 시절 윗집에 살던 20여년 차이 나던 형님 얘기를 해 꺼내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분은 건장하고 싹싹한 청년으로 호남형이었다. 운동도 잘해서 항상 지역 대표선수로 대회를 나갔던 그런 형님이라 동네 꼬마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형님이 월남전쟁에 파견을 마치고 귀국해서 허리디스크네 어쩌네 하더니 아마 고엽제 후유증이었던지 하반신이 마비되고 말았다. 그러자 성격이 변해 매사에 신경질을 부리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하더니 형제나 부모들도 그 형님을 멀리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큰 형님의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굉장히 심각한 상태여서 결코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예고해 주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부터 단단히 다지라는 충고였다.

그후 난 속으로 기어코 극복해 낼 것이란 각오가 새록 새록 움트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3년 안에 극복하리라 혼자 결심하고 또 결심했다. 경추수술 후 착용한 할로배스트를 한 내모습을 처음보자 어릴적 만화영화에 나오던 '깡통로봇'같은 몰골이란 우스운 생각도 처음 들기 시작했다. 재활은 나의 운명이고 나의 삶을 위한 투쟁이란 생각을 갖게 되니 긍정적으로 생각도 바뀌었다.

덧붙이는 글 | 서치식 기자는 교통사고 후 힘든 재활과정을 스스로 극복하고 현재 선샤인뉴스 편집부에 근무하고 있다.



태그:#교통사고후 2개월여만에 의식회복, #교수형경추, #2,6,7번 경추손상, #외상성뇌손상, #뇌출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