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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도둑'이란 별칭을 얻으며 '명품'으로 인기를 얻어온 영광굴비.
 '밥도둑'이란 별칭을 얻으며 '명품'으로 인기를 얻어온 영광굴비.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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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영광 법성포구. 포구 앞 도로변에 줄지어 선 굴비판매점 처마에는 굴비가 20마리씩 엮여 입을 쩌-억 벌리고 있다. 과연 ‘굴비의 고장’답게 여기도 굴비, 저기도 굴비 온통 굴비천지다. 명절을 전후해서 영광굴비 전체 물량의 80∼90%가 팔려나간다니 명절장사로 1년을 먹고 산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법성포구가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중국산 조기가 영광굴비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다는 한 텔레비전의 보도가 나간 뒤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날도 판매상인들은 밀려드는 반품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상인들의 얼굴에서도 침통함이 묻어난다.

가업을 물려받아 굴비유통업을 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좋지 않은데, 중국산 굴비이야기가 방송에 나간 뒤로 매출이 뚝 떨어졌다”며 울상이다. 중국산 조기를 들여와 영광굴비로 둔갑시킨 것도 법성포가 아닌, 외지업자였다. 극히 일부인 한두 업체가 잘못한 것을 마치 영광굴비 전체 판매점이 그런 것처럼 방송돼 법성포 상인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이에 따른 지역경제 타격은 어마어마하다. 주문이 줄어든 것은 물론 이미 팔린 굴비까지도 반품이 이어질 정도다. 법성포와 상관이 없는데도 법성포 전체가 중국산 굴비의 둔갑처처럼 인식되고 있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천일염으로 섶간을 한 조기는 20마리씩 엮어져 건조과정을 거친다.
 천일염으로 섶간을 한 조기는 20마리씩 엮어져 건조과정을 거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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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포의 노하우로 만드는 영광굴비

참조기는 영광 앞바다가 아니라 서해 공해상이나 남중국해에서 잡히는 만큼 중국산과 국내산을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여기서 잡힌 조기는 영광, 목포, 여수, 제주 등지로 팔려간다. 영광으로 가면 ‘영광굴비’가 되고, 목포로 가면 ‘당일굴비’가 된다. 여수로 가면 ‘참굴비’로 다시 태어난다.

법성포에서 만들어진 굴비는 본래 인근 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참조기로 만들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해류가 변하고 제주도 연안에서의 조기잡이로 칠산 앞바다까지 올라오는 참조기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하여 요즘은 제주도 해역에서 잡은 조기로 영광굴비를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옛 명성을 굳건히 지켜온 것은 다름 아닌 영광 법성포만의 노하우 때문이다.

영광굴비는 선별-염장-엮기-세척-건조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염장과 건조 과정에서 영광법성포만의 노하우가 발휘되는 것이다. 염장은 백수와 염산지역에서 생산한 천일염을 사용해 섶간을 한다. 천일염은 1∼3년 동안 간수를 뺀 소금을 쓰기에 손으로 만져도 달라붙지 않는다. 습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 소금을 조기에 직접 뿌려 켜켜이 잰다.

 영광 법성포에서는 굴비를 노란 줄과 짚 한 가닥을 이용해 엮은 다음 매듭 제일 위에 형형색색의 끈을 묶는다.
 영광 법성포에서는 굴비를 노란 줄과 짚 한 가닥을 이용해 엮은 다음 매듭 제일 위에 형형색색의 끈을 묶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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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품사업단 강행원(55)이사는 “다른 지역에선 물에 소금을 타 조기를 담그는 ‘물간’을 하지만, 영광에서는 조기에 직접 소금을 뿌리는 ‘섶간’을 한다”면서 “물간은 손이 덜 가고 편하지만 맛이 섶간만 못하고, 살도 쉬 부서진다”고 말했다.

법성포의 지형적 여건도 한 몫 한다. 하늬바람이 불고, 낮에는 습도가 45%, 밤에는 95%이상이 지속되는 천연적인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 때문에 조기가 부패되지 않고 영광굴비의 독특한 맛을 더해준다. 엮는 기술도 쉽지 않다. 섶간을 한 조기는 한 두름(큰 것 10마리, 작은 것 20마리)씩 엮는다. 너무 세게 엮으면 조기가 뒤틀어지고, 헐거우면 빠지기 십상이다. 힘 조절과 매듭법이 비결이다.

주민들은 소금에 절이는 염장을 한 뒤, 조기를 통풍이 잘 되는 곳에 걸어 놓고 말린다. 해가 뜨면 햇볕 때문에 조기에서 습기가 빠지게 되고, 밤이 되면 습기를 다시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소금기가 조기 속에 스며들어 맛있는 법성포산 영광굴비가 탄생한다. 이처럼 관건은 법성포가 갖춘 천혜의 환경조건에서 천일염으로 염장하고 말리는 기술이다.

 먼 바다에서 잡혀온 참조기. 영광굴비로의 변신을 기다리고 있다.
 먼 바다에서 잡혀온 참조기. 영광굴비로의 변신을 기다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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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품 영광굴비 ‘명품’ 유지 안간힘

영광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은 요즘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악재가 잇따르는 가운데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제절명의 과제 때문이다. 영광굴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사업단의 노력은 애틋할 정도다. 사업단은 무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한편으로는 자체 단속반을 꾸려 임가공업체에 대한 단속에 나서고 있다.

영광굴비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원산지를 표시하는 끈과 포장재에 인쇄된 사업단 로고다. 노란 줄과 짚 한 가닥을 이용해 굴비를 엮은 다음 매듭 제일 위에 분홍색과 파랑색, 빨강색 등 형형색색의 끈을 묶는다. ‘영광 법성포’라고 새겨진 이 끈은 생산자와 원산지, 그리고 제품의 규격을 표시한다.

그러나 위조품이 언제 등장할지 몰라 안심할 수 없다. 임왕섭 특품사업단 사무국장은 “제품에 의심이 갈 경우 특품사업단(061-356-5657)에 전화를 하면 생산자와 생산 일자 등 생산이력과 함께 진품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광굴비를 가장 믿고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택배 등을 통한 현지에서 구입하는 것”이라며 “현지에선 최고 50%까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소금에 절인 조기는 법성포의 햇볕과 바람에 의해 습기를 뱉어내고 빨아들이면서 영광굴비로 완성된다.
 소금에 절인 조기는 법성포의 햇볕과 바람에 의해 습기를 뱉어내고 빨아들이면서 영광굴비로 완성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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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품사업단은 중국산 굴비의 영광굴비 둔갑에 따른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구체적인 안도 마련했다. 우선 영광굴비의 맛과 가격, 포장까지 규격을 표준화해 고유 브랜드 개발에 나섰다. 용역이 마무리 단계에 있어 올 상반기에 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굴비를 엮는 줄도 옥수수 전분과 종이 등 친환경 소재로 바꿀 계획이다. 이 줄은 현재 백화점 납품 등에 시범 실시하고 있다. 소비자의 반응이 좋을 경우 특허를 내고 전 사업장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박스 포장재에 생산자 이력이 담긴 전자칩과 위조 방지장치를 부착해 짝퉁을 원천적으로 막는다는 복안도 마련하고 있다. 이는 휴대폰 단말기를 이용, 소비자 눈앞에서 진품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영광군도 전담팀을 구성, 지리적 표시제 등록 추진과 생산시설 현대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명절을 전후해 잇따르고 있는 ‘짝퉁굴비’ 논란에서 벗어날 날도 그리 머지않은 것 같다.

 '명절장사로 1년을 먹고 산다'는 영광 법성포구. 중국산 조기가 영광굴비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다는 텔레비전 보도 이후 된서리를 맞고 있다.
 '명절장사로 1년을 먹고 산다'는 영광 법성포구. 중국산 조기가 영광굴비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다는 텔레비전 보도 이후 된서리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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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굴비#법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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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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