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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와 아이가 다니는 학교 예산이 어디에 얼마나 잡혀 있고 어떻게 쓰이는지 잘 알고 계시나요? 아마 대부분 잘 모르고 계실 것입니다.

바빠서,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으니까, 관심이 없어서, 그건 내 일이 아니니까, 내가 골치 아프게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해? 그리고 별 생각 없음…….

이러는 사이에 우리가 낸 세금이 쓸데없이 낭비되고, 집집마다 아침에 아이들과 준비물 준비로 실랑이를 벌이고, 교실에서는 학습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

지난 기사 "선생님, 교실에 필요한 거 없어요?"에서 아이들 학교 교육에 필요한 학습준비물은 모두 학교 예산으로 가능하다는 얘기를 하면서, 학교에서 제공해야 할 하고 많은 학습준비물 중에서 도화지와 휴지를 예로 들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댓글 중에는 '그까짓 도화지와 휴지가 얼마나 비싸다고 가정에서 못 사주느냐?', '휴지 하나 가져오라고 한 것 때문에 나쁜 교사로 몰 수 있느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나쁜'이라는 말을 쓴 까닭을, 학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래된 전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뜻으로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를 '훌륭한' 교사라고 치켜세워주신 분도 계신데 '훌륭한' 교사라는 말은 사양하겠습니다. 제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28년째 국가가 꼬박꼬박 주는 월급 값을 하려는 것뿐입니다. 

반발하는 의견을 예상했으면서도 제가 도화지와 휴지를 예로 든 까닭이 있습니다. 도화지와 휴지에 학교 예산 속에 들어 있는 학습준비물비와 학교 교육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교실에 필요한 학습준비물을 미리 갖춰놓고 있으면, 교사와 아이들이 학습준비물을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없이 효율적으로 학습활동을 진행할 수 있어 좋습니다.
▲ 교실에 마련해 둔 여러 가지 종류의 도화지와 학습준비물들 교실에 필요한 학습준비물을 미리 갖춰놓고 있으면, 교사와 아이들이 학습준비물을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없이 효율적으로 학습활동을 진행할 수 있어 좋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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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지를 왜 학교에서 사 주어야 하는가?

먼저 도화지를 왜 학교에서 마련해줘야 하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학습준비물비를 어렵사리 따져 학교 예산 항목으로 마련한 뒤, 그 다음 차례로 관리자와 부딪치는 일이 어떤 것을 사 줄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에서 관리자들이 늘 딴죽을 거는 것이 바로 도화지였습니다.

관리자들은 번번이 '왜 하찮은 도화지까지 학교에서 사 주어야하느냐?'고 했습니다. 관리자들 뿐만 아니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교사도 많습니다. 그럴 때 제 대답은 '도화지이기 때문에 사 주어야 합니다'입니다.

그렇다면 왜 도화지를 학교에서 사 주어야하는지 예를 들어 얘기해 보겠습니다.

어느 날 어느 반 담임 선생님이 도화지를 두 장씩 가져오라고 했다고 해 보세요. 다음날 아침 그 반 아이들 집은 도화지 한 장으로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아이들은 꼭 미리 말하지 않고, 등교 시간에 늦을락말락할 때 급히 가방 메고 신발 신고 나서면서 준비물을 얘기합니다.

"엄마, 선생님이 도화지 두 장 사 오랬어." 그러면 부모는 참 황당하지요.  "진작 말하지. 왜 넌 꼭 학교 갈 시간에 말하니?" 학교 갈 시간이 급하니 잔소리도 길게 못하고 얼른 천 원을 쥐어 보냅니다.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사!"

요즘 학교에서 주간학습계획안을 집에 보내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맞벌이 가정에서는 학습준비물 준비가 더욱 어렵습니다.

아침부터 잔소리는 들었지만 도화지 값으로 천 원을 받아든 아이는 신이 납니다. 왜냐하면 학교 앞 문방구점에 가서 도화지 두 장을 사고 남는 거스름돈은 아이 용돈이 되거든요. 이럴 때 거스름돈을 끝까지 챙기는 부모님은 거의 없습니다. 아이는 남는 돈으로 문방구점에 있는 군것질거리를 사서 먹습니다. 대부분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향기가 짙은 불량식품을요. 문방구점에서 산 도화지를 교실에 들고 오는 동안 조심한다 해도 도화지는 구겨지고 더렵혀집니다. 어떤 아이들은 아침에 부모에게 받은 천 원을 손에 쥐고 오거나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가 그만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또 도화지를 깜박 잊고 가져오지 않은 아이는 늘 있게 마련입니다. 이럴 때는 공부시간이 시작돼서 도화지를 가져온 아이와 가져오지 않은 아이를 파악하고, 없는 아이에게 도화지를 마련해 주느라 시간이 많이 지나갑니다. 가져오지 않은 아이는 더 가져온 아이 것이나 교실에 남아 있는 것을 쓰게 하지만, 이상하게도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는 아이는 늘 정해져 있습니다. 그만큼 빌려주는 아이도 늘 정해져 있습니다. 도화지를 가져오지 않은 아이는 늘 남의 것을 얻어 쓰는 아이로 낙인이 찍혀서 주눅 들게 됩니다.

아이들이 문방구점에서 사 온 도화지는 똘똘 말려 있거나 손때가 많이 묻고 구겨져 있어서 표현 활동을 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구겨지고 더러워지지 않았다 해도 아이들이 사 온 도화지 중 대부분은 그림을 그리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도화지를 마련해 주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가장 먼저, 집집마다 도화지 한 장 한 장 챙겨주어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됩니다. 둘째,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도화지를 챙겨오지 못하는 아이를 배려할 수 있습니다. 샛째, 각자 한두 장씩 사는 것보다 학교에서 한꺼번에 묶음으로 사는 것이 두서너 배 경제적입니다.

넷째, 품질 좋은 도화지를 마련해 줄 수 있습니다. 대부분 문방구점에서 파는 도화지는 그림 그리기에 적당하지 못한 130g/㎡짜리인데, 학교에서 최소 180g/㎡짜리 이상을 사서 제공하면 아이들이 표현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교실에 넉넉하게 사 두면 교사가 준비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학습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 물품 준비 여부를 확인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아이들이 돈을 들고 다니다가 생길 수 있는 분실과 도난사건, 그리고 거스름돈으로 불량식품을 사먹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전교생이 쓰는 도화지를 품질 좋은 것으로 충분히 마련한다 해도 그리 많은 돈이 들지 않습니다. 들이는 돈에 비해 도화지를 사줌으로써 얻는 효과는 이루말할 수 없이 큽니다.

사진에는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이지 않지만, 위에서부터 차례로 130g/㎡ 짜리 스케치북, 130g/㎡, 180g/㎡,200g/㎡, 220g/㎡ 짜리 도화지 모습입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도화지로 180g/㎡이 넘는 것이 좋습니다.
▲ 아이들이 쓰는 도화지 종류 사진에는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이지 않지만, 위에서부터 차례로 130g/㎡ 짜리 스케치북, 130g/㎡, 180g/㎡,200g/㎡, 220g/㎡ 짜리 도화지 모습입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도화지로 180g/㎡이 넘는 것이 좋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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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휴지를 학교에서 사 주어야 하는가?

도화지를 사 주는 것에 공감하는 분들 중에도 휴지를 사 주는 것에는 공감하지 않는 분이 꽤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휴지를 집에서 가져오게 하는 까닭이 학교에서 마련해 주면 휴지 낭비가 심해서라고 합니다. 그렇긴 합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도 개인 것은 아껴 써도, 공짜이거나 함께 쓰는 물건은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이 휴지를 사와서 각자 책상서랍 속에 넣어놓고 자기 것을 쓰면 공짜로 함께 쓸 때보다 휴지를 아끼는 경향이 조금은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얼마만큼이나 절약이 될까요? 또 이 아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모든 곳에서 자기가 쓸 휴지를 반드시 들고 다녀야 하나요? 혹시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쓸 휴지를 집에서 가져오게 하는 교사는 자신이 쓰는 휴지도 집에서 가져와서 쓰고 있나요?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든 활동은 모두 교육입니다. 휴지를 쓸 때도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아이들이 휴지를 함부로 쓴다고 해서, 또 공짜로 주는 것이기에 낭비한다고 해서 휴지를 주지 않을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학교에서 주면서 휴지를 절약해 쓰는 교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휴지를 사용하는 습관을 살펴서 휴지 대신 물걸레와 손수건을 사용하게 하는 교육을 해야 하지 않나요? 이런 교육 없이 휴지를 각자 집에서 가져와서 쓰게 해도 결국 함께 쓰는 휴지를 낭비하는 태도는 그대로일 테니 말입니다.

도화지 한 장, 휴지 하나라도 모두 학교 교육비로 사 주어야한다는 말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 교육에 더 효과적이고, 시간 활용 측면에서도 더 효율적이며, 전체적으로 볼 때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도화지와 휴지를 사 주는 학교가 있느냐고 묻는 분이 있어서 저도 참 놀랐습니다. 우리 학교 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학교는 도화지와 휴지를 무료로 줄 수 있습니다. 학교 예산에 다 들어 있으니까요. 저도 학교 예산에 대해 관심이 적었던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휴지를 집에서 가져오게 해서 걷어놓고 썼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하기에 저도 따라 휴지를 걷어서 썼습니다. 하지만 학교 예산에 대해 알고부터는 휴지를 학교에서 제공해달라고 요구하고, 아이들에게 가져오게 하는 일을 없앴습니다. 

학교 예산 어디에 그런 항목이 있느냐구요?

지금부터 학교 예산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학교 예산은 모두 아이들 교육을 위한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아이들에게 직접 혜택을 주는 항목에는 '교재교구구입비', '학급운영비', '학습준비물비', '학급청소용품구입비', '학급환경정리물품비'가 있습니다. 이런 예산은 학교 규모에 따라, 또 학교 관리자와 교사의 관심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우리 학교 예산을 예로 들어보면 학급에서 교사 재량으로 학급 운영에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학급운영비'가 1인당 1만5000원, '학습준비물비'가 1인당 2만5000원 책정되어 있습니다. 그밖에 학급 환경 정리에 필요한 '학급환경정리물품비'에 '학급청소용품구입비'가 따로 책정되어 있고요, 또 교과학습에 필요한 자료는 '교재교구구입비'로 사서 쓸 수 있고, 과학과 체육, 도서실, 교육정보화 기자재 관련한 자료구입비는 따로 책정해 놓고 있습니다.

 악기와 크레파스, 유성펜, 팔레트와 물통, 붓 같은 것은 한번 사 놓으면 여러 해 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계속 쓸 수 있습니다. 이런 물품들은 아이에 따라 자기 것을 쓰고 싶다는 아이가 있으면 집에 있는 것을 가져와서 쓰도록 하기도 합니다.
▲ 학습준비물을 갖춰놓은 교실 모습 악기와 크레파스, 유성펜, 팔레트와 물통, 붓 같은 것은 한번 사 놓으면 여러 해 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계속 쓸 수 있습니다. 이런 물품들은 아이에 따라 자기 것을 쓰고 싶다는 아이가 있으면 집에 있는 것을 가져와서 쓰도록 하기도 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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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교사들이 학교 예산에 대해 잘 몰라서 돈이 남아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부담을 시키는 일이 많습니다. 아니면 아이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학습을 위한 학습준비물비는 턱없이 적게 책정해 놓고, 활용도가 낮은 고가의 비품이라든가 다수보다는 일부 아이들에게 혜택이 가는 곳에 예산을 많이 책정해 놓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학습준비물 사 줄 돈은 없는데 학년말이 되면 다른 항목의 돈은 많이 남아서, 한 학년 회계결산을 앞두고 남은 돈을 쓰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공사를 벌이거나 멀쩡한 기자재를 버리고 새로 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그동안 학교에 있으면서 학교 예산이 낭비되는 모습을 많이 봐 왔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멀쩡한 마루를 뜯어서 새로 깐 지 1년 만에 다른 관리자가 와서 새로 깐 마루를 뜯어냈던 일, 아직 깨끗한 교실을 새로 페인트칠 하는 일, 관리자가 바뀔 때마다 교실의 전등 전체를 새로 바꾸어 다는 일, 멀쩡한 칠판을 바꾸는 일, 조금만 고치면 충분히 쓸 수 있는 놀이기구를 뜯어 없애고 새 놀이기구를 하루아침에 들여놓는 모습 말입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멀쩡한 장과 기자재를 버리고 새로 들여놓는 일은 해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관리자와 교사, 학부모가 관심을 갖고 머리를 맞대서 아이들 교육에 가장 효율적으로 학교 예산을 짜고 꼭 필요한 곳에 쓰면, 예산을 더 늘리지 않더라도 지금의 예산으로도 지금보다 몇 배 더 아이들이 더 편리하고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아이들과 '그까짓' 도화지와 휴지 같은 것으로 실랑이를 벌이면서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아직도 교실에서 학습활동에 쓸 복사용지까지 아이들에게 사오게 하는 교사가 있던데, 이런 교사들은 대체 어찌 해야 할까요?

덧붙이는 글 | 1년 학교 예산은 학년말에 먼저 관리자와 담당 교사들이 세워서 학교운영위 심의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세워놓은 예산은 관리자와 교사들이 관심을 갖고 필요한 곳에 알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만약에 학교에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한다면, 학부모가 학교 예산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잘못된 것은 따지고 필요한 것은 요구해야 합니다.



태그:#학교예산, #학습준비물비,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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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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