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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분들이라면, 한국방송 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4년제 국립 대학교로서 40만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매머드규모의 대학교 말입니다. 인터넷이나 방송매체, 강의CD를 통해 강의를 듣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출석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직접 나와서 강의를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욱이 국립이다보니, 학비가 사이버 대학보다 훨신 저렴해서 직장인, 주부들이 많이 선호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저 같은' 20대들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 같더군요.(예전에 어땠는지 모르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원래 방송대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전문대 출신이라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데 일반 4년제에 편입하기에는 등록금이 턱없이 부족했죠. 주위에서는 수능 다시 치러서 메이저급 4년제에 다니는 게 낫다, 영어 공부 독하게 해서 반드시 4년제에 편입해야 한다, 시간제 수업을 통해 대학원 진학하면 된다고 했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동생이 대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제가 4년제로 편입하면 부모님 걱정이 더 늘어나기 때문에 '적어도 등록금은 나 혼자서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방송대 홍보 책자를 보면서 작년 3월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원 진학이 최종 목표라는 동기부여가 있었기에 방송대 편입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결과적으로 제 선택은 옳았습니다.)

 

그런데 '만만할 것 같았던' 방송대 공부는 예상 외로 어려웠습니다. 공학 전공이다보니 인문학쪽 공부가 귀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군대 다녀온 이후로 다시 공부하다 보니까 암기가 잘 되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았죠. 일반 4년제라면 하루종일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데다 교수와 다른 친구들을 통해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스터디에 가입하지 않는 이상, 자기가 알아서 공부해야 합니다. 초중고등학교가 무언가에 얽매여 강제로(?) 공부하는 그런 경우라면 방송대는 한 마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공부에 대한 열의와 의지가 없으면 도태되는 곳이기에, 단순히 대학원을 가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었던 겁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방송대를 다니면서 가장 크게 깨달았던 것은, 공부에 대한 열정은 성적과 비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성적표를 볼 때마다 느꼈던 것이 '내가 조금만 더 공부하면 좋았을텐데... 이래 가지고는 대학원에 갈 수 없다'는 아쉬움이었습니다. '일반 4년제가 아니니까 대충 공부하면 되겠구나. 방송대는 만만하잖아'라는 생각은 이곳에서 절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방송대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과목에서 F 받거나 중도 포기하는 경우였죠. 동생이 다니고 있는 회사 상사 같은 경우에는 작년 2학기에 전과목 F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방송대에 7년 동안 있었다고 하니, 등록금 낭비만 하고 말았죠.

 

제가 작년 11월에 어느 모 과목 출석 수업을 들었을 때 한 강사님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방송대에 입학하는 1학년 인원이 8000명인데 11월 이맘때 즈음에는 2500명 정도 줄어든다는 것이죠. 물론 이 수치는 매년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인원 숫자는 중요하지 않지만, 많은 인원들이 1년도 되지 않아 빠져나가는 것은 분명 곱씹어 볼만한 대목입니다.

 

일상생활 때문에 바빠서 그만두거나 휴학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공부에 대한 열정에서 좌우되는 것 같더군요.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하는 일에 관계 없이, 공부에 계속 전념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방송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등록금만 날리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죠.

 

아마도, 방송대의 학구열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출석수업때가 아닐까 합니다. 출석수업이란 일정 기간에 학교에 직접 나와서 시간강사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것인데(방송대 시간강사 숫자가 2004년 기준으로 4000여명이 된다고 합니다. 물론 전국 기준이지요.) 강의를 듣기 위한 사람들의 열의가 상당히 높습니다. 졸거나, 떠들거나, 딴짓하거나 다른 학습 분위기 해치는 이러한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수업을 듣는 모든 인원들이 강의에 최대한 집중하여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강의중에 질문하는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을까요. 방송대에서 배운 지식을 자신이 몸담는 회사에서 활용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출석수업을 듣는 모든 이들의 공통된 목적은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며칠 전 출석수업에서 제 스스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오전 9시에 강의가 있는 날이었는데, 밤새도록 일을 하다보니 취침할 타이밍을 놓친 상황에서 학교에 간 것이었습니다. 결국에는 강의실에서 3시간 동안 졸고 말았죠.

 

다행히 강의실이 넓은 데다 제가 그 뒷편에 있다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아무리 허벅지 꼬집고 눈쪽을 비비더라도 졸음을 참지 못했는데, 저 하나 때문에 수업 분위기가 흐려지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못마땅했습니다. 출석수업 들으러 온 사람들 전원이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에 온 것이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폐를 끼치기가 싫었습니다.

 

저녁에는 직장인들이 강의를 듣는 경우가 많지만, 오전과 오후에도 강의를 듣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녀노소, 20대~50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지요. 방송대 출석수업이 시작되는 오전 9시가 되기 전에는, 지하철역에서부터 방송대쪽으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 입니다. 그중에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잠시 시간을 내서 학교에 왔던 사람도 있더군요. 도서관에 가보면 스스로 자습하시는 분들 또한 많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은 방송대의 졸업 시스템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 차원에서 조기 졸업이나 쉽게 졸업을 시키는 경우가 없는 데다 시험 난이도 또한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과목마다 다르지만) 사람들이 공부에 매달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졸업이라는 동기부여와 목표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물론 시험에 그치지 않고 졸업논문까지 써야 하기 때문에 졸업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방송대 차원에서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함입니다. 방송대 졸업생들이 일반 직장에서 인정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더욱이 시험 점수를 주는 과정까지 공평하지요. 제가 전문대 다녔을 때는 주관식 시험 문제에 말도 안 되는 말을 써서 답안지를 채우려고 했고 어떤 친구들은 시험지에 반성문을 써서 점수를 쉽게 얻으려고 했습니다.

 

4년제 학교에서 장학생이었던 어떤 사람은 교수와 친하니까 점수를 잘 받았다고 하는데, 공부에 매달린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이러한 경우가 불만족스러울 것입니다. 일반 대학교에서는 이러한 폐혜가 많지만, 방송대에서는 오직 실력을 통해 좋은 점수를 잘 받아야만 합니다. 평소 공부를 얼마만큼 꾸준히 했고 열의를 갖느냐에 따라 점수의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죠.

 

그리고 방송대 학우들의 열의 못지 않게, 시간강사들의 강의 또한 상당히 유익하고 열정적입니다. 그분들 중에는 일반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기업체 간부로 몸담고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11월에 모 대기업에서 주요 간부로 근무하시는 여성분의 강의를 뜻깊게 잘 들었습니다. 교재에 있는 강의 내용 이외에도 취업 동향 및 경력 개발,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방법, 회사에서 상사에게 '이쁨' 받는 법 등등 기업체 및 일상생활에서 다재다능하게 쓰일 수 있는 정보들을 많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학우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과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학우들이 출석 수업을 듣기 위해 직접 학교에 나오는 경우가 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회에는 방송대를 낮춰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작년 여름에 장기 알바를 그만두고 여러 곳에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방송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외면을 당했던 적이 있어서 그 아픔을 잘 알고 있습니다.(결국 1곳에서 합격했지만 근로조건이 마음에 안들어서 제가 스스로 그만두었죠.) 심지어 어느 모 업체 사장은 "방송대는 직장인들이 다니는 곳일 뿐이다. 방송대가 어떻게 대학교냐"라고 저에게 화를 내면서 바로 불합격시키더군요.

 

하지만 방송대는 합법적인 4년제 국립대학교가 맞습니다. 방송대가 그렇게 만만하다면 직접 수강하면서 출석수업을 들어보고, 기말고사까지 치러보기를 권합니다. 공부에 매달리는 사람들과 함께 강의실과 도서관의 뜨거운 온기를 느껴보시며 공부의 열정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방송대 졸업생들이 일반 직장 혹은 대학원에서 교수들에게 인정을 받는 이유가 성실함과 끈기, 의욕이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 알아준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동안 방송대를 대학원 진학을 위한 발판으로만 생각했다가 최근 출석수업을 받으면서 그 이상의 귀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분들이더라도 공부에 대한 열정은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아니 그들을 능가했습니다. 열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방송대를 다니면서 가장 크게 깨달았던 것이 바로 공부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방송대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입니다. 방송대 졸업생들이 해마다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방송대와 인연을 맺기 때문입니다. 이것 또한 제가 최근에 깨달았던 것이어서 방송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방송대에서 배웠던 그 가르침은 평생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방송대를 다니고 있는 지금의 이 시간이 저에게는 더 없이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uesoccer.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방송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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