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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수정지구 연안매립지의 산업용지 조성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장요세파(50) 수정성모트라피스트수녀원 원장.
 마산 수정지구 연안매립지의 산업용지 조성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장요세파(50) 수정성모트라피스트수녀원 원장.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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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가야죠. 다른 방법이 없어요."

마산 수정지구 연안매립지의 산업용지 조성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장요세파(50) 수정성모트라피스트수녀원 원장이 한 말이다. 지난 12일 저녁 수녀원에서 만났다. 경남 마산시 구산면 수정리에 있는 수녀원에선 마산 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수녀원이 최근 언론에 많이 거론된 것은 연안 매립 문제 때문이다.

마산시가 수정지구 공유수면을 매립해 조선소(STX)를 유치하기로 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당초 마산시는 주택용지 매립면허를 따냈다. 그러다가 일반산업단지로 변경해 그곳에 조선소를 유치하겠다고 한 것이다. 수녀원과 수정마을 주민들은 반대대책위를 구성했다.

지금은 마산수정지구공유수면 매립목적변경승인이 결정된 상태이며, 환경영향평가 단계에 있다. 마산시와 STX조선이 낸 환경영형평가서를 낙동강유역환경청이 검토하고 있다.

장요세파 수녀는 조용하게 기도만 하다가 연안매립 용도변경 반대 투쟁에 앞장서 왔다. 수녀들이 경남도청은 물론 서울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고, 장요세파 수녀는 한때 단식하기도 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터널(원효터널)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도롱뇽을 위해 싸웠다면, 장요세파 수녀는 연안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 마산 수정일반산업단지 관련 경과

- 1990년 7월 마산시 공유수면 매립면허 승인(경남도고시, 택지 목적)
- 1994년11월 매립공사 시작(두산건설, 98년 여건 변화로 사업 중지)
- 2006년 5월 매립시공권 STX중공업에서 인수(마산시와 약정 체결)
- 2007년 7월 마산시→경남도 매립사업목적변경인가(협의요청)
- 2007년11월 수정지구 마을주민대책위, 건교부 등에 탄원서 제출
- 2007년12월 주민설명회
- 2008년 2월 STX조선소 유치 반대를 위한 문화제.촛불기도회
- 2008년 3월 마산시→경남도 매립목적변경 관련 보완자료 제출
- 2008년 4월 수정지구 매립목적변경승인처분 무효소송 접수
- 2008년 6월 STX중공업 수정지구 일반산업단지 개발 확정 발표
- 2008년 9월 STX 유치 협약서 무효소송 각하 판결(고등법원 항소)
- 2008년10월 매립목적변경승인 무효소송, 집행정지신청소송 기각
- 2008년11월 수정일반산업단지계획 및 환경영향평가 합동설명회
- 2008년12월 수정일반산업단지 환경영향평가 전문가 토론회(1차)
- 2009년 2월 백도명 교수, 강기갑 의원 등 수정마을 주민간담회
- 2009년 2월 수정일반산업단지 환경영향평가 전문가 토론회(2차)


- 기도하다가 사회 문제로 나와 싸우면서 온갖 험한 상황을 겪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 수정지구 매립용도 변경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았지요. 제 안에서 용암이 끓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세상 악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처음에는 정말 감당하기가 어렵더라구요. 공무원을 본다는 것 자체가 혐오스럽데요. 내 안에 용암이 들끓는다는 생각을 하고, 점점 그 사람들을 보면서 익숙해져 갔지요. 그 사람들은 사기나 거짓이 하나의 수단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편에서는 이해가 되더라구요. 이해한다고 해서 용납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럴수록 우리가 가는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은 더 확실해졌으니까요."

- 용암이 들끓었다는 표현을 들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는군요.
"그 사람들의 가치관이 문제라는 생각보다는,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고, 그 속에서 그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인형이더라구요. 거기에 대고 우리가 아무리 화를 낸다고 해도 꿈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죠. 그들을 향해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갈 길을 간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었죠. 그러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구요.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문제도 넘어서고, 성과 없는 것에 대한 초조함도 사라졌지요."

- 집회도 열고 했잖아요?
"집회를 하면 온 공동체가 다 뒤집어지죠. 준비과정은 말도 못할 정도로 힘들죠. 온갖 준비를 해서 집회를 몇 차례 열었지만 결과가 없는 거죠. 하나하나 봤을 때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했지만 나오는 것은 없다는 거죠. 그러나 그런 과정 없이 길을 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수녀들도 터득하게 되었지요. 공동체 전체가 초조함에서 많이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 수도 생활하던 분들이라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수도생활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다시 묻게 되었고, 그 가치를 다시 느끼게 되었지요. 저희 같은 사람들은 한밤에 네온사인 번쩍거리는 길을 걸을 일이 없잖아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회의 불빛이 어떤 한 방향으로만 돌진해 간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 말입니다. 그렇게 가지 않아야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알았구요."

장요세파 수녀.
 장요세파 수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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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로 좋은 사람은 없었나요?
"그런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아마 이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실명을 거론해서 안 됐지만, 백도명 서울대 교수가 제일 생각나네요.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해 연락했는데, 처음 그분을 만나보고 놀랬어요. 옷도 허름했고, 구두도 낡았어요. 남방 옷깃이 낡아 올이 다 드러날 정도였죠. 서울대 교수는 다 그런가 생각했는데, 캠퍼스에 가보니 코트를 펄럭이며 가는 교수들도 있더라구요. 그분과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데, 처음에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환경영향평가 이야기를 했더니 첫마디가 '현장부터 가 봐야겠네요'였어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 마을 주민들이 연안매립 목적변경을 두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었잖아요?
"그 부분이 제일 화가 납니다. 아마도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두었다면 이만큼은 분열되지 않았을 겁니다. 보상이라며 '돈다발' 이야기에다 온갖 특혜, 즉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주민들 간에 골이 더 깊어졌지요. 공무원들이 주민들의 분열을 조장하기도 했구요. 이미 주민들에게 잘못된 정보가 형성돼 있었지요. 우리가 들어갈 부분이 없었지요. 우리는 주민들이 물질적 이익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비춰졌으니까요. 자연상태로 두면 괜찮을 일을, 인간이 인간을 악으로 만드는 현상을 보았지요."

- 이번 일을 겪으면서 공무원이나 행정기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수녀원과 관련해 이전에는 공무원들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죠. 공무원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간벌도 해주었죠. 공무원은 다 친절한 것으로만 여겼죠. 그러다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죠. 솔직히 공무원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루 전날 녹취해 놓았던 사실도 그 다음날에는 뒤집는 일이 다반사였지요. 행정에 아무리 항의해도 두 눈 깜짝 안 하대요. 심지어 언론도 동조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금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하듯, 공무원들은 더 잘 살게 해 준다는데 왜 반대하느냐는 식이었지요. 쇳가루를 마시고 살더라도, 마산만 발전하면 괜찮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고, 그런 일에 우리가 걸림돌로 여긴 거죠. 심지어 쇳가루 좀 날린다고 해서 당장에 주민이 죽느냐고 말하는 공무원도 있었으니까요."

- 시민운동이라는 게 명분은 있더라도 성과가 없다는 말을 하는데요. 그런 말에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지요?
"희생할 생각이 없기에 성과가 없다고 봅니다. 정말 주민 전체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분명히 성과는 있는 거지요. 그리고 이번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문규현 신부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대요. '끝까지 가세요'라고 말입니다. 특별한 묘책을 이야기해달라고 했더니, 그런 거 없다면서 끝까지 해야 한다는 말씀이셨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더라구요."

- 끝까지 한다는 게 너무 막연하잖아요?
"끝까지 갈 수 있다면 어떤 싸움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주민들이 같이 해오고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지요. 오히려 미안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터널 공사에 반대했던 지율 스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직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어요. 정확히는 몰라요. 그런데 파수꾼 같은 역할을 하신다는 느낌을 갖고 있어요. 수정지구는 380세대 1200여 명 주민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사람이 아닌 자연환경의 문제였죠. 개발을 위해서는 알고서도 조작하잖아요. 보상을 받는데 왜 반대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구요. 우리도 그랬는데, 지율 스님은 더 심했을 겁니다. 그런 고독함 속에서 싸우셨는데, 정말 대단하죠. 우리가 당해보니까 알겠더라구요."

- 지금 수정지구 문제는 환경영향평가 검토 단계인데, 환경영향평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지요?
"한마디로 왜 하는지 모르겠네요. 돈만 들고, 기업에 면죄부 주는 역할밖에 못하는 거지요. 법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단체장의 욕심에 맞춰서 환경영향평가서가 조작될 수도 있구요. 환경영형평가는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장요세파 수녀.
 장요세파 수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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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지구의 일반산업단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해보니 어떤가요?
"평가서에 대해서는 국가기관조차 제대로 평가를 하지 않아요. 평가서 초안에 대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도 지금까지 하던대로 '괜찮다'고 동의해준 거죠. 실제 평가가 아니라 관행처럼 지나간 겁니다. 국회에서 수정지구에 대한 토론회를 하지 않았더라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수정일반산업단지 계획승인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이 나왔을 때인 지난해 12월에 이어 '최종 평가서'가 나왔을 때인 지난 2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두 차례 토론회가 열렸는데, 전문가들은 주요 항목이 빠진 점 등 여러 가지를 지적했지요. 토론회 준비 과정을 보면 고생한 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국회의원과 환경전문가 섭외부터 현장조사 등 정말 어려움이 많았지요. 전문가들이 그렇게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는데, 환경영향평가 통과 여부를 쥐고 있는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볼 겁니다."

- 환경영향평가 과정을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은?
"각종 개발문제에 있어 환경영향평가가 점점 더 간소화되고 있어요. 개발 찬성 쪽에서 보면 이전보다 훨씬 더 쉬워진 겁니다. 지구 온난화 보면 알잖아요. 지금 전 세계가 자연파괴로 위협받고 있잖아요. 유럽 나라들은 이미 그 같은 사실을 알고 자연을 살려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정반대로 가는 정책만 펴잖아요. 생존에 있어 기본적인 부분을 망각하는 겁니다. 오히려 금전적이거나 경제적인 부를 지닐 수 있는 방향으로, 그런 유혹만 쫓아가는 거지요. 그것은 우리를 모두 마비시킬 겁니다. 지율 스님도 그랬지만, 작은 목소리라도 계속 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지요."

- 수정지구 산업단지 조성 반대 투쟁을 벌이면서 '종교인이 왜 그러느냐'거나 '종교인이 너무한다'는 말을 들었을 것 같은데요?
"종교인이라면 화도 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세상의 일이 잘못되어 가면 그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내는 게 종교인의 역할입니다. 참된 행복은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지금 당장의 행복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거죠. 지금 즉시 행복해지려면, 마약을 먹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나 마약을 먹을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명백하게 이야기해주는 겁니다."

-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지요?
"끝까지 가야죠. 방법이 없잖아요. 우리는 늘 저쪽에서 치고 뒤따라가는 형식이지만 그래도 해야 하잖아요. 환경영향평가 통과 여부가 남아 있는데, 전문가들이 그렇게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도 통과시킨다면 아마 교수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갈 길은 하나밖에 없잖아요. 나머지는 공장이 들어와도 좋다는 건데,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까요. 이 길 갈까, 저 길 갈까 헷갈리지 않아서 좋아요. 그러다가 어떤 사태가 터지면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면 되는 거구요."


태그:#수정지구, #장요세파 수녀, #환경영향평가, #연안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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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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