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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5일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과 권영진 제6정조위 부위원장이 오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시도교육감 러닝메이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행법에서 단체장과 교육감은 별개의 선거이고, 교육감은 정당 공천을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이걸 바꾸겠다는 겁니다. 예컨대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후보와 서울교육감 후보를 한 팀으로 내놓는 형태로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육감 후보는 당연히 정당 공천을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한나라당이 교육감 후보를 공천하거나 아니면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은 서울시장 후보가 교육감 후보를 지명하는 등의 방식을 취할 겁니다.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 낮으니 러닝메이트로? 

 

한나라당의 러닝메이트 주장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닙니다.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흘러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리 새롭지 않습니다.

 

이번에 러닝메이트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면서 한나라당이 밝힌 필요성은 유권자의 관심도와 선거비용 등입니다. 처음 주민직선으로 치러진 2007년 부산 교육감 선거가 15.3%의 투표율을 보이고, 2008년의 충남과 서울 선거가 각각 17.2%와 15.4%를 기록한 것처럼 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은 저조합니다. 왜 그럴까요?  

 

또 교육감 선거에 지금까지 약 720억원 정도 들어간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돈은 물론 국민이 낸 세금입니다. 예전의 간선제에서 주민직선으로 전환하면서 늘어난 비용입니다. 만약 지난 서울교육감 선거가 높은 투표율에 후보간 정책대결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등 '재밌는 선거'였다면, 과다한 선거비용라는 지적은 없었을 겁니다.

 

충남교육감이 비리 등의 혐의로 옷을 벗고,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으니, '돈이 아깝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만약 위와 같은 이유를 갖다댄다면, 지방선거나 대통령 선거 등 모든 선거에도 동일하게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의 논리대로 한다면, 지방선거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투표율도 물론 낮고 당선자가 비리 등의 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요. 하지만 '지방선거 하지 말자'는 주장은 흔하지 않습니다. 오직 교육감 선거에 대해서만 그들 안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습니다.

 

한나라당, 싹쓸이하고 싶었구나

 

 

광역단체장-시도교육감 러닝메이트는 얼토당토 않습니다. 헌법 제31조 제4항에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러닝메이트가 성사되려면 헌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안 될 경우 '느슨한 형태의 정책 연대'도 검토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헌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마저도 '편하게' 생각하는 정부이고 여당이다 보니,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움직임처럼 만약 교육계가 대거 반발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교육계 또한 정당으로서는 소중한 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러닝메이트 검토 발언은 이걸 당장 실현하겠다는 의미보다는 그 안에 있는 정치적 함의가 중요합니다. 그건 '싹쓸이'와 '개입'입니다.

 

내년 지방선거는 교육감과 교육위원도 함께 뽑습니다. 이렇게 되면 1인 8표입니다.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광역비례,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기초비례, 그리고 교육감과 교육위원입니다. 8명이나 찍어야 하니, 꽤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1인 6표일 때와 비슷한 현상이 더 심하게 벌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후보와 정당을 꼼꼼히 따지는 유권자야 누구는 정당 보고 찍고 누구는 인물 보고 찍고 누구는 기권하고 등 현명한 선택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몰아찍기'입니다. 광역단체장을 1번 찍으면, 나머지도 다 1번 찍는 것이지요.

 

교육감선거와 관련한 몰아찍기는 이미 한 차례 있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울산, 경남 등 4개 지역의 교육감 선거가 함께 치러졌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2번이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기호 2번 말입니다.

 

 

그런데 몰아찍기 현상은 한나라당 성향의 교육감 후보에게 곤혹스럽습니다. 지방선거 번호 부여방식과 교육감선거 번호 부여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 성향의 후보가 한나라당 번호(이제는 1번)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정치적 성향을 지닌 후보가 번호의 덕으로 당선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대선과 함께 치러진 4개 지역 중에서 실제로 있었습니다.

 

한나라당 역시 당혹스럽습니다. 알게 모르게 여러 명의 보수 후보들을 단일화시켜놨는데, 그 후보가 1번을 받지 못하는 날에는… 어휴~. 

 

러닝메이트는 이런 일을 원천봉쇄합니다. 공천하건 지명하건, 한나라당 처지에서는 자신들과 관계하고 있는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입니다.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16곳의 광역단체장 중 14곳에서 이긴다면, 시도교육감 역시 14명을 확보하게 됩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교육감 선거에 대해 러닝메이트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건 어떤 형태로든지 자기 사람을 교육감 의자에 앉히겠다는 '싹쓸이'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러닝메이트가 제도화되건 말건 상관없이, 교육감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말입니다.

 

교육감 직선제의 개선 방향은 있습니다만

 

낮은 투표율을 보이는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개선방향이 있기는 합니다. 관심이 적은 건 후보와 정책 등을 잘 몰라서 그런 경우가 많은데, 이건 후보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의 문제가 큽니다. 일단 ▲선거구가 너무 넓고 ▲후보 후원회가 금지되어 있는 등 선거운동에 필요한 비용과 조직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교수는 가능한데 교사는 사표 써야지만 입후보할 수 있는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책을 마련하여 정책선거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예컨대, 직선제라도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와 교육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중에서 정책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더 나은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재밌게 참여하는' 직선제를 만드는 게 먼저입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러닝메이트는 이런 방향과 거리가 멉니다. 한나라당은 어떻게 하면 괜찮은 교육감 선거 방식을 만들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기 사람을 교육감으로 만들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눈여겨볼 지점이 있습니다. '왜 하필 지금 발언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작년 서울교육감 선거 전에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이 "한나라당의 교육 이념·정책과 비슷한 후보는 난립하는데, 전교조가 지원하는 후보는 한 명"이라며 "반한나라당적인 교육 이념을 가진 후보가 교육감이 될 수도 있다"고 사실상 보수후보 단일화를 주장한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오는 4월 8일에 치러지는 경기도 교육감 선거입니다.

덧붙이는 글 | 송경원 기자는 진보신당에서 교육분야를 살피고 있습니다. 


태그:#한나라당, #싹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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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교육기관에서 잠깐잠깐 일했고 지금은 정의당 정책위원회에 있다. 꼰대 되지 않으려 애쓴다는데,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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