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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제난으로 소비가 줄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 봄, 입을 게 없다"는 딸의 하소연에 "옷장부터 정리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괜한' 소리로 들리지 않는 요즘입니다. 비단 아껴 쓰는 것에서 나아가 '다시' 쓰고, '나눠' 써도 "괜찮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불황이 낳은 또 다른 삶의 모습입니다. 그 곁을 따라가 봤습니다. <편집자말>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질수록 나눔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늘고 있다. 식품 제조업체나 개인으로부터 식품을 기부 받아 사회복지시설이나 독거노인, 결식아동, 저소득 장애인과 가정 등에 전달해주는 복지단체인 '푸드뱅크'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올해 들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푸드뱅크에 기부식품 제공을 요청한 사회복지기관 수는 월 평균 161곳.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1월에 296곳, 2월 445곳, 3월 773곳으로 신규로 신청하는 기관들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복지시설에 물건을 전달해 주는 푸드뱅크뿐만 아니라, 식품이 필요한 사람들이 직접 방문해서 물건을 가져가는 상점 형태인 '푸드마켓'에도 이용자가 늘어난 것은 마찬가지다. 심재권 동대문구 푸드마켓 소장은 "작년 초에는 이 곳을 이용하는 회원이 400명 정도였지만 올해는 1300명 정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기부는 줄고 이용자는 '급증'
 

그에 반해 기부처들의 숫자는 거꾸로 가고 있다. 장성기 동대문구 푸드뱅크 담당은 31일 오전 소규모 빵집 두 군데에서 빵 한 꾸러미씩을 기부받고, 중구 복지회관에서 막대사탕 6상자를 수령했다. 지난해는 기부 물품들을 받으러 더 바쁘게 뛰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경제난으로 기부처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동대문구에서 지난 7년 동안 푸드뱅크를 맡아 온 장성기씨는 "예전에는 기부받던 곳이 40여 곳 정도 됐는데 올해 들어 그 중 3곳은 문을 닫았다. 작년까지 두 군데 도매상에서 기부를 했는데 그마저도 올해 끊겼다. 여전히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시는 곳도 있지만 많은 상점들이 기부하는 양이나 횟수를 줄이고 있다. 이처럼 기부량이 곤두박질 친 것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김정환 중구 푸드마켓 담당도 "최근 들어 대기업들의 기부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줄었다, 들어오는 물건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말했다. 푸드뱅크가 받은 기부 규모는 지난해 3월 기준 36억 2천여만 원이었지만, 올 3월은 30일까지 16억 6천여만 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46%나 감소했다.
 
도움 받으려는 사람은 급증하고, 기부자는 줄고. 이 답답한 상황을 푸드뱅크는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푸드뱅크는 신청자 모두에게 식품을 제공하기 위해 한정된 물품을 잘게 쪼개어 양을 줄이면서 되도록 횟수를 채우는 방식과 전국 및 관할 광역 푸드뱅크 간의 업무협력을 강화해 부족한 곳에 물품을 우선적으로 몰아주는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다.
 
"부족한 물품 아껴 먹으려다 곰팡이 슬어"
 

이런 고육지책에도 식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양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푸드뱅크 지원을 받는 차상위계층인 김아무개(여)씨는 "지원 받은 물품을 10명이 똑같이 나눠 가지는데 올해 들어 많이 줄고 (제공해 주는 기한이) 불규칙적이 됐다"고 아쉬워했다.
 
심재권 소장은 "이곳(동대문구 푸드마켓)을 이용하는 분들 중에는 기초생활수급자인 저소득, 독거노인 분들이 많은데 이 분들은 기부자들의 식품 지원이 없으면 생계에 큰 위협이 된다"면서 "우리 지역은 그나마 상황이 낮지만 타 (지역)마켓에서는 기부물품이 부족해 지역 이용자들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양이 줄다 보니 기부 받은 빵을 아껴 먹으려다가 곰팡이가 생겨 못 먹는 경우도 종종 봤다"고 말했다.
 
시설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200~300명 이상 되는 사회복지시설은 일정 양 이상이 되어야 지원해 줄 수 있다. 식품이 모두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다. 지원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당연.  
 
서울 청량리에 위치한 가나안 노숙자 쉼터는 작년에 2억원 정도의 물품을 후원받았고 그 중 절반 이상을 푸드뱅크에서 제공 받았다. 이 쉼터를 운영하는 가나안 교회 김수재 목사는 "푸드뱅크를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다양한 혜택을 받았지만 올해는 물품 후원이 '뚝'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지금 필요한 건 뭐? 기부!
 
절실히 원하는 것은 하나다. 기부의 증가다. 김정환 담당은 "기업들은 소비자들을 통해 돈을 벌었으니, 돈을 흡수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며 기업의 사회적 역할 확대를 강조했고 "몇몇 기업들이 유통기한 만료가 임박한 식품을 기부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수익의) 일정 부분을 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국가나 지자체의 역할도 늘어나야 한다. 기부자 발굴과 여러 복지 사업 연계에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각 구의 푸드뱅크는 서울시에서 절반, 구청에서 나머지 절반을 부담해 35만여원의 운영비를 지원 받고 있다. 식품을 전하는 데 필요한 차량을 유지하는 것만도 벅찬 수준이다. 
 
심재권 동대문구 푸드마켓 소장은 "기부는 큰 곳(기업)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힘들이 모여 큰 힘이 될 수 있다"며 기부 문화의 저변이 개인을 통해 사회로 확대되기를 바랐다. 또한 이를 통해 "후원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날씨가 추운 연말에만 늘어나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실제로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의 기부 규모는 30억~40억 원이었지만 12월에는 68억 6천여만원이었다.
 
자원봉사자 및 푸드뱅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기부물품이 감소해 '나눔의 재미'가 줄었다고 했다. 기운도 예전만큼 나질 않는다고 했다. 한 자원봉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누지 않는다면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나눔의 재미'가 필요한 때이다.

태그:#푸드뱅크, #푸드마켓, #기부, #나눔,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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