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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리 태봉 곳곳에 흩어져 있는 헌종 태실 유물들
 옥계리 태봉 곳곳에 흩어져 있는 헌종 태실 유물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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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태봉산에 위치한 헌종(조선 24대왕) 태실이 복원 정비된다.

옥계저수지의 풍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태봉(胎峰)산의 헌종태실은 현재까지 밝혀진 예산군내 4개 태실 가운데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갖춰 오랜 시간동안 주민과 풍수연구가들 사이에 정비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예산군은 2009년 1회 추경에서 덕산 옥계리태봉산 태실정비예산 3000만 원이 확정됨에 따라 헌종태실을 복원 정비하고, 이 일대 문화관광자원으로 연계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또 정비가 끝난 후 문화재지정 여부에 대한 검토도 따를 것으로 보인다.

충남도내에서는 서산 운산에 위치한 명종태실이 1975년에 복원, 도 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금산 추부에 있는 태조태실은 1993년에 복원 역시 도지정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이외에도 세종, 경종 등 전국 곳곳에 있는 태실들은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관리 보존되고 있다.

1827년 태어나 8세의 어린나이로 등극한 헌종은 재임중인 1847년에 자신의 태봉지를 단장했다. 당시 태봉지 조성에 대한 안태사 이지연의 보고용 그림과 실록기록은 서울규장각에 있는 '원손아지씨안태등록'에 자세히 나와있다.

이 태실은 왕실문화를 철저히 파괴시켰던 일제에 의해 1927년 태항아리를 이장하고 난 뒤, 태실 석물이 훼손방치돼 일부 석물은 분실됐다. 또 인근 민가 앞마당과 태봉 위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비석은 저수지에 수몰(주민 주장)돼 있다. 다행히 여러차례 도난의 위기를 맞을 정도로 중요한 태주석은 현재 덕산면사무소에 보관하는 등 복원에 필요한 중요석물이 남아있고 뛰어난 예술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월 4일 김기영 도의원, 최무영 군의원, 예산역사연구소 박성묵 소장 등과 현장을 둘러본 박기청 예산부군수는 "그동안 이렇게 중요한 유물을 방치한 것이 부끄럽다. 속히 복원에 힘써 가야산 관문인 옥계저수지와 함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자리잡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태실이 복원 정비되면 남연군묘, 옥병계와 더불어 풍수관광 연계코스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예산군내에는 이 태실외에도 대술 궐곡리 숙종 왕자 태실, 대흥 동헌 뒤편에 영조 왕녀 태실, 신양 황계리에 현종태실 등 밝혀진 것만 4곳이나 있다.

이 가운데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현종태실은 산주가 묘지를 조성해 완전히 훼손됐으며, 대술 궐곡리 숙종 왕자 태실도 훼손도가 심하고 한 대학 박물관에 일부가 보관돼 있다. 예산군 대흥면 영조 왕녀 태실은 본래 광시면 월송리에 있었으나 예당저수지가 수몰되면서 석함과 아지비를 현재 위치로 옮겨 놓았다.

태실과 태봉
조선시대에 왕손이 출생하면 태를 백자항아리에 넣어 명당자리에 태실을 만들고 뒤에 임금으로 등극할 경우 개건했다. 태봉에 안치된 태의 주인공이 보위에 오르면 가봉(加封)했는데, 이는 등극한 임금의 태실을 다시 손질하는 것으로 귀부석(龜趺石)이 가봉시에 설치되며 그지역이 한단계 승격됐다. 덕산현이 덕산군으로 승격된 것이 24대 헌종13년(1847년) 때인 것을 볼 때 태실 고장에 대한 예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태실의 설치는 군현, 명호의 승격·위상과도 밀접히 관련됐고, 영역확대 등의 특혜가 주어지는 경우도 있어 태실을 자기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지역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태함(백자항아리)은 대부분 일제때 도굴됐지만 조선시대 풍수지리와 당시 미술 양식을 알 수 있는 문화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무한정보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예산군, #태실, #헌종, #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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