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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고도 부여에는 문화재 전문 인력을 양성할 목적으로 2000년에 세워진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있습니다. 사관학교나 경찰대학 등과 같이 특수한 목적을 지닌 문화재청 산하의 4년제 국립 대학입니다. 설립 후부터 줄곧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전통문화 교육의 중추 기관으로 비전을 제시하며 전국의 우수한 고등학생을 유치해 왔습니다.

국내 유수의 대학에 진학할 성적이 되는데도, 아끼던 제자에게 한국전통문화학교에 가라며 등 떠민 것도 그가 우리 문화유산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는 것과 정부와 학교가 내건 설립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의 부모도 저의 진학 지도 내용에 흔쾌히 동의했고, 예상보다 힘겨운 관문이었지만 당당히 합격했고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기실 그는 제가 부임해 와서 만든 고등학교 답사 동아리의 초창기 멤버였습니다. 분기마다 한 번씩 답사를 다녔고, 그때마다 자료집을 준비하고 다녀와서는 보고서를 만드는 등 동아리 활동을 책임지고 이끌었던 아이입니다. 지금도 졸업한 선배들과 재학 중인 후배들을 이어주는 다리 구실을 하는, 없어서는 안 될 답사 동아리의 보배입니다.

당시 그의 담임교사로서 적성과 재능을 고려한 가장 모범적인 입시 지도 사례였다고 자부하며 내심 뿌듯해 했습니다. 그도 대학 생활이 만족스러웠던지 이따금씩 애써 후배들을 찾아와 학교를 자랑하며 홍보하는 데에도 열심이었습니다. 한번은 학기 중인데도 고향에 내려와 후배들의 정기 답사에 함께 했고, 인솔 교사를 대신해 가이드를 자청하는 등 동아리와 전통문화에 대한 애착이 그 누구보다 대단했습니다.

선배들 중 '특수 목적'대로 취업한 경우 거의 없어

그러나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후 그의 앞에 펼쳐진 현실은 온통 잿빛이었습니다. 문화재 전문가가 되겠다는 그의 오랜 바람은 현실의 벽 앞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를 대비한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의 산실로 거듭난다는 전통문화학교는 학과 이름만 빼면 여느 대학과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졸업한 그의 선배들 중 그 '특수 목적'대로 취업한 경우가 전무하다시피 하고, 대부분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졸업과 동시에 '노량진'을 향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한 겁니다. 입학과 동시에 토익과 토플, 공무원 수험서에 목맨 새내기들도, 재학생들의 요구라고 눙치며 교내에 고시원을 마련하고 공무원 시험 특강을 개설한 학교의 방침 또한 그가 기억하는 학교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학교의 설립 취지는 졸업생은 물론, 재학생에게도 이미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습니다. 4년 동안 학교로부터 오로지 문화재 전문 인력이라는 자부심을 교육 받았건만, 사회에 나와 봐야 쓰일 곳 거의 없고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가혹한 현실에 그들은 완전히 주눅 들어 버렸습니다. 설립 당시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던 정부는 아무런 대꾸조차 없습니다.

현실에 주눅이 든 탓인지 학교를 세워만 놓고 아무런 관심도, 지원도 없는 정부를 향한 학생들의 쓴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건 놀랍습니다. 전교생이라 해봐야 채 600명도 되지 않은 작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의견과 요구가 쉽게 뭉쳐질 법도 하건만, 그들은 도서관에 틀어박혀 오로지 공무원 시험에만 '올인'하는 모습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문화재 전문가를 자처하는 교수들도 제자들의 장래와 학교의 미래를 위해 무관심한 정부에 탄원서 한 장 보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전통문화학교 진학 강권한 교사로서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고민 고민하다 제자는 올해 1년간 휴학을 택했습니다. 일단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되는 현실이 자못 두려웠던 탓이고, 자신의 애초 기대와는 전혀 딴 판으로 돌아가는 학교의 현실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열심히 해 온 전공 공부를 접고, 더 늦기 전에 자신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답니다.

한결 같은 고민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배려하고 뭉치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 해결하려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의 모습에도 적잖이 실망한 표정입니다. 아예 번잡스럽지 않은 조용한 환경에서 고시 공부하기 좋은 학교로 여기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혼란스러워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설립 취지가 퇴색돼 가는 거야 특수 목적 대학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라지만, 특히 전통문화학교의 경우는 심각합니다. 문화재 관리와 보존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데다 경제위기라는 현실에서 맨 먼저 배제되는 분야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 바쁜데 '한가롭게' 문화재 타령이나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래도 스승이랍시고 휴학 후 고향에 내려와 맨 먼저 찾아준 그가 고마웠습니다. 휴학 중 무얼 할 거냐고 물었더니 잠깐 쉬면서 진로에 대해 확실하게 매듭짓겠다고 합니다. 그가 1년 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한편으로는 궁금하면서도, 현실에 휩쓸려 이렇게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전통문화학교 진학을 강권하다시피 한 교사로서 솔직히 죄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문화재 전문가를 꿈꾸던 그도 요즘 들어 '노량진'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부쩍 자주 꾼다고 합니다. 이럴 거였다면 왜 굳이 '특수 목적' 대학을 만들었을까요?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한국전통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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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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