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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은 못 보내. '아웃 오브 스테이트'(주외 거주)도 그렇고."

올 가을에 대학에 입학하는 딸에게 일찌감치 '선언'을 했다. 등록금이 비싼 사립이나 아웃 오브 스테이트 대학은 못 보낸다고. 학비가 비싸도 웬만해야지 '인 스테이트'(주내 거주) 대학보다 세 배나 비싼데 어떻게 보내겠는가. (관련기사 "대학합격 기쁨도 잠시...1년 6500만원? 보기)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못 보내는 이유가 비싼 등록금에 있는 만큼 몇 백 달러, 혹은 몇 천 달러 주면서 장학금 줬다고 생색내는 '무늬만 장학금'이 아니라 실제 학비에 도움이 될 만한 '진짜 장학금'만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다. 말리의 경우처럼.

2007 BCS 내셔널 챔피언에 오른 LSU(루이지애나 주립대학)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마칭 밴드. 맨 오른쪽이 클라리넷을 부는 말리. 풋볼팀이 있는 대학의 마칭밴드에 참여하게 되면 장학금을 받는다.
 2007 BCS 내셔널 챔피언에 오른 LSU(루이지애나 주립대학)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마칭 밴드. 맨 오른쪽이 클라리넷을 부는 말리. 풋볼팀이 있는 대학의 마칭밴드에 참여하게 되면 장학금을 받는다.
ⓒ 말리 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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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앞둔 딸에게 선언 "비싼 데는 안 돼"

말리는 재작년에 이곳 버지니아 주의 해리슨버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웃 오브 스테이트 대학인 루이지애나 주립대학(LSU)으로 진학한 친구 딸이다. 대학 교수로 일하는 말리의 부모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중산층이지만 장학금 등의 학비 지원 없이 비싼 사립이나 아웃 오브 스테이트 대학을 가는 데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말리 엄마의 말이다. 

"BA(학사 학위) 하나 따기 위해 20만 달러를 들이는 건 멍청한 짓이다. 빚을 얻어 그런 비싼 대학을 다니면 언제 그 빚을 다 갚을 것이며, 언제 그 돈을 회수할 수 있겠는가. 대학은 그냥 저렴한 학비를 내면서 다니고 나중에 장학금 혜택이 많은 좋은 대학원에 진학해서 장학금도 받고 강의 조교도 하면서 공부하는 게 바람직하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멀리 아웃 오브 스테이트 대학으로 가고 싶었던 말리는 결국 자신에게 장학금을 준다는 여러 대학 가운데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LSU를 선택했다. 루이지애나는 이곳 버지니아에서 비행기로 가야 할 만큼 거리가 멀지만 LSU는 말리에게 학비 외에 기숙사비와 책값 등도 제공했다.

이렇게 학비는 물론이려니와 기숙사비와 책값까지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인 스테이트 대학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장학금!

대학에 갈 때 신청할 수 있는 장학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신청할 수 있는 '저소득층 지원 장학금'(Need-based Scholarship)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 성적이나 예술, 스포츠 등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인 학생에게 주는 우수 장학금(Merit-based Scholarship)이다.

비싼 대학 가고 싶다면 장학금 받든지

저소득층 지원 장학금은 예를 들면, 스탠포드나 하버드 등의 명문 사립대학에서 부모의 소득이 연 10만 달러, 혹은 6만 달러 이하일 때 수업료를 공짜로 해주는 것을 말한다. 일부 대학에서도 재정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수업료를 지원해준다.

하지만 이런 장학금은 그 규모가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은 이런 장학금 대신 나중에 갚아야 하는 '학생융자(Loan)'나 학교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워크 스터디(Work study)'를 선택하고 있다.

우수 장학금은 뛰어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대학 측이 제공하는 것인데 이는 가정 형편과 상관이 없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학생들도 많이 받고 있다. 장학금을 받는 조건은 탁월한 성적. 버지니아 주에 있는 샬로츠빌 고등학교에 다니는 모니카도 바로 이 장학금을 받았다. 

모니카의 부모는 버지니아 의과대학 부속병원 의사다. 그런데 모니카는 자신이 지원한 여러 대학으로부터 우수 장학금 제의를 많이 받았다. 왜냐하면 학교 성적도 뛰어나고 리더십을 갖춘 데다 버지니아 주 오케스트라(All Virginia Orchestra)에서 첼로 주자로 활약했을 만큼 첼로 실력도 뛰어난 다재다능한 학생이었기에. 

모니카는 여러 명문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은 뒤 어느 대학을 선택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 그 가운데 텍사스에 있는 라이스 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을 최종 후보로 올려놓고 일단 두 대학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런데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에서는 최종 결정을 앞둔 모니카에게 초대장을 보내왔다. 여기서 말하는 초대장이란 단순히 학교를 방문해 달라는 초대장 종이를 달랑 보내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곳까지 오는 비행기표와 무료 숙식 제공을 포함하는 일종의 패키지 티켓을 보내오는 것이다. 

결국 모니카는 대학 등록 마감일(5월 1일) 전에 두 대학을 방문한 뒤 자신에게 전액 장학금을 제공하겠다는 라이스 대학에 가기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 5월 1일은 자신이 갈 대학을 결정한 고3 학생들이 대학에 예치금(deposit)을 내고 등록을 마감한 날이었다. 하지만 장학금을 받기 위한 전쟁은 그 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딸이 가져온 <전도양양한 음악가 장학금> 신청서. 자신이 왜 이 장학금을 받을 만한지, 입학 후 계획과 졸업 후 목표, 음악을 통해 학교 밖에서 기여한 바 등을 기술해야 하는 에세이도 작성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장학금 수혜자로 결정이 되면 얼마를 받을까? 750 달러. 새발의피?
 지난 5월 1일은 자신이 갈 대학을 결정한 고3 학생들이 대학에 예치금(deposit)을 내고 등록을 마감한 날이었다. 하지만 장학금을 받기 위한 전쟁은 그 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딸이 가져온 <전도양양한 음악가 장학금> 신청서. 자신이 왜 이 장학금을 받을 만한지, 입학 후 계획과 졸업 후 목표, 음악을 통해 학교 밖에서 기여한 바 등을 기술해야 하는 에세이도 작성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장학금 수혜자로 결정이 되면 얼마를 받을까? 750 달러. 새발의피?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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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 장학금에 목매는 고등학생들

하지만 모든 학생이 모니카와 같은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1일자 <뉴욕타임스> 교육면에는 "목표는 대학. 장애물은 재정 보조를 찾는 일"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는 비싼 등록금 때문에 고민하는 한 남학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브레넌 잭슨. 브레넌은 성적이 최상위에 속하는 '할리우드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이다. 

그는 명문 공립대학인 UC 버클리에 합격했지만 비싼 등록금 때문에 걱정이 많다. 브레넌은 매일 오후가 되면 학교 진학 상담실을 찾아간다. 왜냐하면 학교로 온 장학금 신청서를 누구보다 먼저 가져가기 위해서다.

브레넌이 진학하게 될 버클리 대학은 1년 학비가 기숙사비를 포함해 2만 5천 달러 정도. UC 계열의 10개 대학이 지난 7일 평의회에서 <2009~2010> 등록금을 일제히 9.3% 인상하기로 해 부담이 더 커진 것이다.

회계사로 일해 온 브레넌의 아버지는 1년 전 실직했고 파트타임 교사로 일하는 어머니는 작년에 5만 8천 달러의 소득을 신고했다. 브레넌은 부모의 수입이 6만 달러 이하면 학비가 공짜인 스탠포드대학에도 지원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불합격하고 말았다.

이제 브레넌은 대학 학비를 직접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2만 5천 달러는 그에게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물론 버클리에서는 그에게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212 달러를 줬지만 등록금의 1/100도 안 되는 그 돈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일뿐이다.

결국 브레넌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여러 군데 장학금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올해는 경기 불황의 여파로 장학금을 받고자 하는 학생은 많고 장학금 단체들은 규모를 축소하고 있어 이 또한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학자금을 대출해 주는 '스태포드론(Stafford Loan)'이나 '페어런트 플러스론(Parent Plus Loan)' 등의 인기 학자금 대출 프로그램 이자율도 각각 7%, 8.5%까지 치솟아 학생과 학부모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브레넌은 등록금 마련 때문에 걱정이 많아 머리도 빠지고 여드름도 심해졌다고 한다.

장학금 전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장학금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은 캘리포니아에 사는 브레넌뿐만이 아니다. 이곳 버지니아 주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졸업반인 전교 1등 라이언 월터도 바로 이런 학생 가운데 하나다. 

작곡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라이언은 작곡으로 잘 알려진 캘리포니아 주의 남가주대학(USC)과 뉴욕대학(NYU) 등에 원서를 내고 합격증을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돈.

라이언은 연방 학비보조 무료 신청 양식인 FAFSA를 통해 이자가 저렴한 학생 융자를 받을 수 없다. <아웃포스트>라는 대학가 서점을 경영하고 있는 그의 부모가 소득이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부모도 라이언의 비싼 아웃 오브 스테이트 등록금을 선뜻 내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에게는 동생이 넷이나 있고 이곳 버지니아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가는 데 필요한 여행 경비와 책값, 용돈 등을 감안한다면 1년에 6만 달러(우리 돈으로 치면 7800만 원 정도) 정도의 큰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라이언은 셰넌도어 밸리 지역에서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신청해 둔 상태다. 수업료 전액을 지원해주는 이 장학금을 받게 된다면 라이언은 USC로 진학할 예정이다. 하지만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면 그냥 가까운 대학으로 가야 한다. 

장학금 결과 발표는 오는 6월 1일. 하지만 이들은 그냥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지 않는다. 학교 상담실은 (비록 그 액수가 250달러에서 1천 달러 밖에 안 될지라도) 가능하면 많은 기관의 장학금 혜택을 받기 위해 오늘도 신청서를 작성하고 정성을 다해 에세이를 쓰는 고3 학생들로 북적인다.


태그:#미국 대학,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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