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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그것과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르거나 아닌 것.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이비(似而非)'의 사전적 의미다. '사이비' 어원의 유래와 역사는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지만 역사 또한 깊다. 일찍이 공자도 "나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惡似而非者)"고 했다. 그 이유가 분명하다.

"사이비는 외모가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즉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며, 선량해 보이지만 실은 질이 좋지 못하다"고 정의했다. '말만 잘하는 것을 미워한다'는 뜻으로 읽혀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신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서 사이비를 싫어한다'는 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공자는 "정(鄭)나라의 음란한 음악을 미워하는 이유는 아악(雅樂)을 더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자줏빛을 미워하는 이유는 붉은빛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처세술에 능한 사이비를 '덕을 해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에 미워한 것이다.

광주·전남 사이비기자 무더기 적발, "또?"...언론계 파장

<광주드림> 20일자 2면.
▲ 사이비 기자들... <광주드림> 20일자 2면.
ⓒ 광주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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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짝퉁'으로도 통용되는 사이비가 최근 지역에서 활개치고 있다. 이번엔 광주·전남지역 언론사와 소속 기자들이 사이비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가지 많은 곳에 바람 잘 날 없듯, 신문사 수가 많은 지역일수록 곧잘 터지곤 하는 사건이다.

이권 개입이나 책자 강매, 광고 강요 등 언론의 정도에서 벗어난 불법행위를 일삼은 기자를 흔히 사이비 기자라고 부른다. 그런 부류들이 이 지역에서 무더기로 적발됐다. 광주지검 특수부(부장검사 최길수)는 지난 2월부터 사이비 언론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 모 환경신문 기자와 모 일간지 기자 등 18명을 적발해 이 중 9명을 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또 나머지 9명은 불구속 기소하거나 현재 수사 중이다.

이들이 노린 곳은 주로 관공서나 공사현장이다. 특히 아파트 공사 현장소장에게 접근하여 "소음과 먼지로 민원 소지가 있다"고 협박한 뒤 "급전을 빌려주지 않으면 신고하거나 기사화하겠다"고 겁을 줘 돈을 뜯어내는 수법이 가장 많다.

<전남일보>의 최근 사이비 기자 관련 기사들.
▲ 사이비 기자 관련기사 <전남일보>의 최근 사이비 기자 관련 기사들.
ⓒ 전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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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에는 지난 2003년 6월부터 최근까지 같은 방법으로 모두 275차례에 걸쳐 5600여 만원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례도 있다. 적발된 나머지 사이비기자들은 주로 건설업체나 폐기물처리업체 등 환경민원의 소지가 큰 업체를 대상으로 먼지, 소음, 진동, 자재야적 등을 빌미로 뒷돈을 챙기거나 수백만 원대 광고강요를 일삼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언론사 간부를 사칭하거나 유명인과의 가짜 친분을 앞세워 간행물을 강매하거나 기사무마 조건으로 억대 이권 개입까지 저질러온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광주지검은 홈페이지(gwangju.dpo.go.kr)에 사이비 기자 신고코너를 설치하는 등 광주·전남기자협회는 '사이비 기자 근절 대책 특별위원회'를 자체 구성할 정도로 피해 사례가 심각하다. 전국적으로 신문사 수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사이비 기자들과 싸우며 싸잡아 욕먹는 또 다른 기자들

<전남일보> 21일자 3면.
▲ 사이비 근절책 없나? <전남일보> 21일자 3면.
ⓒ 전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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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지자체에 등록된 신문사가 일간지 33개, 인터넷신문 97개, 주간지 108개, 월간지 51개, 계간지 17개 등 모두 306개에 이를 정도다. 공사현장 등 사소한 잘못을 트집 잡기 쉬운 곳을 노려 돈을 빼앗고, 간행물 강매, 식사비·기름 값 등을 뜯어내는 등 범행 형태가 다양했다.

오죽했으면 사이비 근절을 주문하는 사설과 칼럼들이 지역 신문사에 등장할 정도다. <전남일보>는 21일 사설 '사이비 기자 끝까지 추적 뿌리 뽑아야'는 한 지역에 너무 많은 신문사가 난립한 데 따른 폐해를 고발하며 자성을 주문했다.

"광주ㆍ전남 지자체에 등록된 언론사는 모두 306곳에 이른다. 그렇잖아도 언론사가 너무 많다는 여론인데 이러한 와중에 사무실에 책상 한두 개 들여놓고 등록증도 없이 기자 행세를 하는 사람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 언론인들까지 싸잡아 욕을 얻어먹고 있다."

사설은 말미에서 "당국은 이를 철저히 가려서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사이비 기자에 대해서는 지역사회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밝고 투명한 사회를 위해 기업인ㆍ시민단체ㆍ지역민 모두가 나서 언론 자정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리고 주문하기도 했다.

얼마나 취재현장에서 기자들이 힘들었으면 이 신문은 이날 '사이비 기자 근절책 없나'란 제목으로 쓴 사회부 기자의 칼럼에서도 자성과 주문을 촉구했다.

"피해자들은 사이비 기자들이 처벌을 받아도 다시 기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실제 사이비 기자들은 검찰에 적발된 뒤에도 피해자들에게 진술 번복을 유도하고 위협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실태를 고발했다. 그는 "피해자들의 철저한 신원 보호 속에서 적극적인 신고를 바탕으로 사이비 기자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다.

"부끄러운 상황... 윤리의식과 기자정신이 필요하다"

광주전남 민언련의 지난해 12월 성명 내용.
▲ 기자정신 필요하다... 광주전남 민언련의 지난해 12월 성명 내용.
ⓒ 광주전남 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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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해 파문이 컸던 곳이다. 지난해 12월 광주·전남 민언련은 '기자의 윤리의식과 기자정신이 필요하다'란 이색적인 성명을 내고 언론인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광주전남 지역의 부끄러운 언론현실을 드러내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는 성명은 당시 부끄러운 상황을 이렇게 적시했다.

"광주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는 관내 사이비 기자들의 공갈 행위 등으로 인한 지역 사회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여론에 따라 사이비 기자들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실시하여 3개 업체로부터 440만 원을, 공무원의 업무태만을 미끼로 105만 원을 갈취한 기자 등 총 7명의 사이비 기자를 적발하여 그 중 3명을 구속했다고 한다. 이들은 각종 건설 현장 및 공장들을 돌아다니면서 취재활동을 빙자하여 사소한 법 위반 사실을 적발한 후, 이를 약점으로 잡아 갈취 행위를 하고 신문 등의 구독을 강요했다고 한다."

성명은 이어 "참으로 부끄럽고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했지만 1년도 채 안돼 더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비단 이 지역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경기도에서도 기자들의 비리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돼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곳 역시 타 지역에 비해 신문사가 많은 지역이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 등록된 일간지 수만도 14개사에 이른다. 지난해 8월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기업 비리를 보도하겠다며 광고비 명목으로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배임수재 및 공갈 등)로 부천지역 일ㆍ주간지와 인터넷신문 기자 10명을 적발해 5명을 구속 기소하고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약식 기소한 바 있다.

조사결과 일부 기자들은 기자단 내 지위와 인맥을 기반으로 관내 공공기관 및 기업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ㆍ허가 관련 이권사업에 개입하거나 기업체로부터 금품을 갈취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당시 검찰은 전했다. 이때도 지역 언론·시민단체들의 자성촉구 목소리가 잇따랐다.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기자, 같은 속성 '일란성 쌍둥이'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부장의 개인 블로그에 올려진 글.
▲ 사이비 감별법...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부장의 개인 블로그에 올려진 글.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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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기자는 같은 속성을 지닌 일란성 쌍둥이다. 그 속성은 '갈취'다.  사이비 언론과 기자들이 주로 뜯어먹는 대상은 관공서나 공사현장이 주류를 이룬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부장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사이비 언론·사이비 기자 감별법 아시나요?'란 글에서 20여 년 간 신문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이비 기자 감별법을 소개했다.

"우선 사이비 신문에는 기자의 이름이나 출처가 없는 기사가 유달리 많다. 요즘 제대로 된 신문은 기사실명제가 완전히 정착돼 있다. 출처불명의 기사가 많다는 건 무단도용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사진도 출처불명이 많다. 그런 사진은 대개 화질도 좋지 않다. 인터넷이나 남의 매체에서 역시 무단으로 훔쳐 썼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그는 "임금체불이 잦은 회사도 사이비성이 짙다"며 또한 "신문 한부당 가격과 구독료는 책정돼 있지만 대부분 무료로 배포되는 신문이 있다면 그것도 사이비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런 신문사는 지사·지국 등 판매망도 제대로 구축이 안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된다"는 그는 "구독신청도 하지 않은 신문이 계속 들어온다면 그것도 의심의 대상"이라고 귓뜸했다.

또한 기자가 본업인 취재는 제쳐두고 사교에만 열중인 경우, 홍보기사가 나오면 해당기관 또는 기업체의 간부를 반드시 찾아가거나 전화를 해 생색을 내는 경우, 기사는 쓰지 않으면서 약점을 잡아 은근히 겁을 주는 것도 전형적인 사이비의 유형으로 그는 소개했다.

지역 언론들, 한가롭게 사이비 기자와 싸울 때가 아니다

이에 앞서 <국제신문> 이노성 기자도 개인 불로그에 올린 '사이비 기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란 글에서 사이비 기자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언론사가 공인된 언론기관 회사인지 확인할 것', '벌금을 물더라도 고발할 것" 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런 불미스런 일들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는 전체 지역 언론계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곤 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 언론사와 언론인들을 더욱 더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 독자들의 신뢰는 더욱 추락하고 만다. 

원리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사이비가 활개를 치는 경우를 지나온 과거를 통해 종종 목격해 왔다. 그들은 대부분 올바른 길을 걷지 않고 시류에 일시적으로 영합하며,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거나 말로 사람을 혼란시키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이다.

따라서 기자들의 윤리의식과 기자정신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일로 지역에서 양심적으로 활동하는 많은 기자들마저 사이비 기자로 취급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아울러 사이비 기자를 계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비정상적인 지역신문의 구조가 타파되고 지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을 수 있는 언론이 지역에 자리 잡아 나가야 한다.

가뜩이나 6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법안이 통과되면 지역신문업계의 퇴출과 구조조정 칼바람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지금 지역신문들은 사이비 기자들과 싸울 때가 아니다. 자전거와 비데, 상품권 등을 동원하여 무분별하게 지역 판매시장을 교란하는 서울의 과점신문들과 싸워 지역여론의 다양성과 건전성을 지켜야 할 때다.


태그:#사이비기자, #사이비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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