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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재직시절 노 대통령의 인기는 현직 대통령 못지않게 바닥이었다. 오죽하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농담이 생겨날 정도였다. 2002년 노 대통령은 "진보"의 이름으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그러나 취임 후 그는 달라졌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해괴한 언어를 만들어내며 한미FTA, 이라크 파병 등 지지층을 배반한 보수적 개혁을 추진했다. 게다가 정제되지 못한 언행들은 보수 언론의 용이한 공세감이었다.

 

그렇게 그의 지지도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노간지"라는 이름으로 뜨기 시작했다. 그의 무능력 덕택으로 당선이 된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부터 시작해서 평화 시위를 강경 진압만으로 다루는 무능력한 태도를 계속해서 보여왔기 때문이다. 즉, 이명박의 무능력으로 인해 노무현이 "간지"난다고 뜨기 시작한 것이다. 바꿔 말해 서로의 무능 덕택에 한쪽은 대통령이 되고, 한쪽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할 만도 하다.

 

더욱 이명박과 노무현은 노골적으로 비교되는 부분이 있었다. 노무현의 트레이드 마크는 도덕성이었다. 그는 재임시절 청렴성을 수 십 번이나 강조해왔다. 반면 이명박은 전과 14범이라는 딱지가 붙을 정도로 준법 의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런 사람이 툭하면 시위에 대고는 법치주의 강조하니 국민들 눈에는 고와보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청렴한 노무현 씨가 서서히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부인과 형의 비리가 드러났고 본인마저 검찰에 출두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노사모 측에선 그의 검찰 조사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고, 보수 단체는 노무현의 구속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 사실 양쪽다 오십보 백보였다. 사실 혐의가 의심되는데 검찰보고 수사하지 말라는 것은 직무유기를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는데다, 게다가 혐의가 입증되지도 않았는데 구속하라고 설레발치는 것은 호들갑이기 때문이다. 아마 비리와는 친근한 관계인 현직 대통령이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는다면 노사모와 보수단체는 자리만 바꾼 채 시위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이런 긴장관계가 갑자기 깨져버렸다. 어느 날 아침,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을 한 것이다. 자살로 인해 그는 추대되기 시작했고, 전 국민적인 추모 열기가 행해졌다. 각 지역마다 분향소가 설치 됐고, 포털사이트는 메인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대문을 걸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추모가 그에 대한 맹목적인 예찬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언론은 노제가 열린 당일 서울광장에 무지개가 떴다면서 죽음을 신비화하기까지 했다.  정작 그의 과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없이 그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보르헤스는 <케네디를 추모하며>에서 말한다.

 

"총탄은 오래된 것이다. 1897년 아레돈노라고 하는 몬테비데오 출신의 한 청년이 우루과이 대통령을 향해 쏘았던 바로 그 총탄이다……전에 총탄은 다른 물건들이었다. 왜냐하면 피타고르스적 윤회에 따르면 그것은 단지 인간만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동방에서 대신들이 받았던 비단 오랏줄이었고, 알라모 요새를 방어하던 수비대원들을 몰살시켰던 소총과 총검이었고, 한 여왕의 목을 잘랐던 세모꼴의 단도였고, 구세주의 몸을 관통했던 칙칙한 못과 십자가의 목재들이었고, 카르타헤나의 장수가 쇠반지 속에 숨겨놓았던 독약이었고, 어느 날 저녁 소크라테스가 마셨던 잔잔한 독배였다. 그것은 태초에 카인이 아벨에게 던졌던 돌이었고,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인류와 함께, 인류의 불가사의하고 덫없는 운명과 함께 끝이 날 많은 것들이리라."

 

 노무현 그는 스스로에게 오래된 총알을 겨눈 셈이다. 그로인해 그는 죽음으로써 숭고해졌다

 


태그:#노무현, #자살, #신자유주의, #보르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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