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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아저씨...

 

한 번도 당신을 불러 본 적 없는 나임에도, 불러도 대답 없을 당신을 떠올리면 이리도 먹먹해지고 맙니다. 이리도 마음이 여려서 이 세상 어찌 살겠냐고,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철은 언제 들 거냐고, 사사건건 나를 주눅 들게 하는 말들도 오늘은 전혀 들려오지 않아요.

 

52일만이에요, 아저씨.

 

이제야 당신을 편히 보내드립니다. 이렇게 당신, 정말 가시네요.

 

사람 맘이 참 웃겨요.

이미 세상 떠난 아저씨지만, 단 한 번 마주 앉아본 적 없는 당신이지만, 그런 당신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게 떠나는 오늘이 이리도 섭섭하고 먹먹합니다. 하루종일 우울함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당신, 그 이름, 너무 무거운 하루예요.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던가요. 마치 어딘가 하나는 분명코 부족한 게 있을 어른들이나 하는 것이 노동자라고 배워온 세상이니까요. 그런 세상의 편견에 맞서, 생계에 맞닿은 싸움들을 할 때마다 '이기주의'라느니 '노동귀족'이라느니 말장난이나 치는 권력과 언론에 맞서, 노곤노곤 알콩달콩 살고 싶은 바람들은 먼 훗날의 꿈으로 미뤄두고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게 노동자의 삶이니까요.

 

그런 세상에게 외치는 특수고용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해달라던 아저씨의 그 절절한 구호를, 그 속의 절망감과 힘겨움을 어찌 제가 헤아리겠어요. 어찌 안다 감히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럼에도 지금 느끼는 딱 이만큼만이라도 아저씨의 구호가 내 맘을 좀 더 날카로이 스쳤더라면, 그러면 혹여 아저씨를 보내며 할 수 있는 게 눈물뿐인 지금의 속절없는 뒤늦은 후회를 거둘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에 맘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보내게 한 우리의 무디고 느렸던 마음을 오늘은 한없이 미워했습니다.

 

얼마나 힘드셨나요. 얼마나 막막하셨어요.

애틋한 아내와 그 삶의 기둥이 되고 팠던, 바람막이가 되어 주고 싶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 뒤로하고 자신의 삶을 통째로 내바치며 아저씨... 얼마나 외로우셨어요.

 

그렇게 당신을 보내고야 말았으니 난 눈물조차 흘릴 자격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두 눈이 충혈되어 터질 지경이 되어도 절대 울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보내드리는 아저씨, 마지막 가는 길에 서서 난 아저씨를 붙잡아 둘 거리가 없나 두 눈 희번덕대며 애타하고 있습니다. 내 후회를 되돌리고 싶은 난 아직도 이토록 이기적이기만 합니다.

 

민들레 아저씨, 당신의 마지막 길, 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그저 당신의 수천 수백의 꽃씨가 되겠습니다.

그 약속 하나 드립니다.

 

아저씨가 마지막 사랑하는 동료들과 나눴다는 술자리, 평소 음치라며 빼시다가 멋지게 한 자락 뽑았다던 그 노래, "민들레처럼".

 

그 노래에서처럼 특별하지도, 빛나지도 않을지라도,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피어난 민들레가 되고싶으셨던 아저씨. 그 바람 마지막 유서에조차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드림'으로 전하며 당신, 그렇게 가셨어요.

 

그래요, 아저씨. 아저씨의 뜨거운 가슴이 전해져 수천 수백의 꽃씨가 당신에게서 날려 여기저기에 흩뿌려졌어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면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의 봄이 올 거예요.

아저씨, 제가 그 수천 수백의 꽃씨 중 하나가 될게요.

 

하지만, 아저씨...

당신의 사랑하는 동료들이 경찰들과 회사 직원들에게 두들겨 맞고 끌려가던 모습이 다 내려다보이는 그 언덕배기에서 목숨을 끊었던 그 외롭고 힘들었을 절망의 시간을,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숨김없이 드러나던 당신의 마지막 흔들리던 필체 속 슬픔을,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란 표현으로 민들레로 태어난 당신을, 난 아직은 묻을 수가 없네요.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 한용운시인의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란 말이 이런 느낌이겠네요. 정말 그러네요. 난 아직 민들레 아저씨, 당신을 죽어도 보내지는 못하겠습니다.

 

언젠가 이 세상에 민들레가 만발했을 때에, 아저씨가 사랑하는 동료들이 열심히 살면 그만큼 행복해진다 여길 수 있을 때에, 그렇게 아저씨가 몸바쳐온 서민들의 삶이 더 인간다워지면, 그 때 난 민들레 꽃을 엮어 화관을 만들어 망월동을 가려고 합니다. 당신의 무덤가에 살포시 놓으며 그 때서야 난 비로소 당신을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민들레 아저씨....

 

오늘은, 그래도 오늘은, 당신을 지키지 못한 우리가, 당신을 죽게 만든 현실이, 이토록 인간에게 잔인한 이 사회가, 한 사람의 죽음에도 단 한 번의 흔들림없이 당당한 낯빛의 정부와 대한통운이, 치떨리게 무섭고 죽도록 밉습니다.

 

그래요, 아저씨. 나도 잘 알아요. 이젠 정말 잘 알아요. 미워만 한다고, 원망만 한다고, 절대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구요. 아저씨가, 몸소 알려주셨잖아요. 알아요, 아저씨... 오늘까지만 미워하고 내일부턴 그 미움으로 이 악 물고 살아갈 거라구요. 당신이 남긴 꽃씨가 나로 하여금 민들레로 피어 그 민들레가 또 수천 수백의 꽃씨를 뿌릴 수 있도록 말이에요.

 

아저씨, 편히 가세요.

지금 흘리지 못한 눈물, 화관 안겨드리면서 함께 쏟아낼게요.

그 땐 좀 맘편히, 그리움만 남은 눈물이었음 좋겠어요.

 

아저씨, 정말 편히 가셔야 해요.

덧붙이는 글 | http://our-dream.tistory.com/ 중복게재


태그:#박종태열사, #화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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