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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할 때 7000만 원에 준다고 했어. 근데 5억6000만 원(전용면적 72㎡짜리 점포의 최고 분양가)이래. 그 돈 있으면 장사 잘 되는 동대문에서 임대사업이나 하지, 미쳤다고 맨땅에 헤딩하러 여기 오겠어?"

 

26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동남권유통단지 '가든파이브' 앞에서 만난 김아무개(56)씨는 이마에 땀을 닦으며 짜증나는 듯 연방 손부채질을 해댔다.

 

'가든파이브'는 2003년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으로 상권을 잃은 청계천 상인들의 이주를 목적으로 조성 중인 아시아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유통단지다. 연면적 82만300㎡에 쇼핑과 레저를 위한 문화공간과 복합쇼핑몰, 아파트형 공장, 최신 공구와 기초 소재 상가 등 8000여 전문상가가 들어선다.

 

동대문시장에서 공구·의류업을 하고 있는 김씨는 특별분양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서울시와 SH공사가 '가든파이브'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청계천 복원 당시 상가 이주를 신청했던 6097명 외에 신청을 하지 못한 청계천 일대 상인 6만여 명에게도 우선 분양 기회를 준 것이다.

 

청계천 상인들이 높은 분양가 때문에 '가든파이브'에 등을 돌리면서 초기 분양률은 20%를 밑돌았다. 이미 지난 연말 완공을 해놓고도, 올해 4월 개장 계획을 7월로 미뤘다가, 다시 9월로 추가 연기한 것도 저조한 분양률 때문이다.

 

'청계천 대체 상가'라는 애초 목적은 이미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무려 2조 원이란 천문학적 세금을 쏟아 부은 '가든파이브'가 개장도 하기 전에 '아시아 최대 유령단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청계천 상인 대신 '복부인'들이 차지

 

"밀라노로 갈까? 아니 가든파이브!", "밴쿠버로 갈까? 아니 가든파이브!"

 

'가든파이브'의 광고 카피다. 8호선 장지역 3번 출구 안내판에는 선명하게 '가든파이브'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아직 '가든파이브'로 갈 수 없다. '가든파이브'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에는 '출입금지'라는 안내문과 가로막이 쳐있다. 다른 통로를 이용해 밖으로 나오니, 고개를 한껏 쳐들고 올려다 봐야 하는 대형건물과 조형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코엑스몰의 6.2배, 롯데월드의 1.4배, 63빌딩의 4.9배로 '단일 쇼핑몰로는 동양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멀찌감치 중앙공원 막바지 조경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런데 움직이는 사람은 그들이 전부처럼 보였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개장을 해서 수많은 인파로 북적여야 할 곳에 적막함만 가득했다. 드문드문 마주치는 사람들은 지난 4월 먼저 문을 연 CGV에서 영화를 보고 나왔거나 찜질방 이용객이 대부분이었다.

 

 

'나' 블록 1층에 마련된 분양사무실로 향했다. 청계천 일대 상인을 대상으로 한 우선분양 신청 접수 마지막 날이었지만, 분양사무실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4~5명이 팸플릿을 옆에 끼고 벽에 붙어 있는 상가 전개도 앞에 서서 분양 받을 상가를 고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우선분양 대상이 아닌, 이른바 '복부인'들도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

 

한 50대 여성은 부동산 업자로 보이는 한 남성에게 상가 매입 가능성 여부를 조심스럽게 타진했다. 이 남성이 "일반분양은 아직 안 된다"며 "청계천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5순위 분양까지 끝나야, 일반분양이 가능하다"고 설명해줬다.

 

그러자 이 여성은 "피(프리미엄의 은어- 편집자 주) 2000만~2500만 원 붙여주면, 1년 뒤에 명의 변경이 가능하다는데, 왜 안 된다고 하느냐"고 따졌다. 당황한 이 남성은 "맞다, 정확히 알고 계시네"라고 맞장구를 쳐준 뒤, "상가만 보지 말고 창고도 한번 보자. 창고도 피가 붙었지만, 공급가가 상가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며 상가 전개도에 표시된 창고를 일일이 짚어줬다.

 

SH공사는 청계천 이주 상인에게 감정가의 50% 수준인 조성 원가에 특별·우선순위 공급을 한 뒤, 오는 8월 말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남은 상가를 판매할 예정이다. 대신 청계천 이주 상인에게는 1년간 전매제한 기간을 뒀다. 하지만 청계천 상인들에게 분양된 '가든파이브' 상가가 수천만 원의 웃돈(프리미엄)이 붙은 채 '선(先)매매 후(後)등기 이전' 방식으로 다시 일반 투자자에게 팔리고 있다.

 

그러나 SH공사 측은 이러한 사실을 부인했다. 김남주 '가든파이브' 공급관리팀장은 "복부인들이 싹쓸이 했다면 분양률이 30%대밖에 안 나오겠나? 100%를 넘어서 과열 양상을 보여야 맞지 않겠느냐"며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여기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공급한 350개 정도의 상가가 바로 전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 그렇게 전매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SH공사 측의 설명과 달리 이미 지하철과 연결되는 지하 1층과 지상 1층 등 목 좋은 자리는 대부분 청계천 상인의 이름만 빌린 '강남 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는 게 부동산업계측의 판단이다. 분양가가 높아 계약을 망설였던 청계천 상인으로서는 쉽게 웃돈을 챙길 수 있고, 투자자로서는 일반 분양분보다 싸고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웃돈은 층수·위치·업종에 따라 점포당 1500만~5000만 원 가량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창고의 경우 상가 수에 비해 절대 부족한 데다, 상가보다 저렴하고, 사무실 등으로 용도변경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돌면서 투자자들의 '인기 상품'으로 떠올랐다. 상가만 먼저 분양받은 상인들이 웃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뒤늦게 창고를 분양받기 위해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분양률 올리기' 급급, 투기 단속 소극적

 

'분양가 인하'를 요구하는 청계천 상인들은 감독당국인 서울시와 SH공사측이 분양률을 높이는 데만 집착해 불법인 제3자 전매 행위 단속에 소극적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로서는 분양률 저조로 두 차례나 개장이 연기된 데다 9월 개장마저 미뤄질 경우 시정 능력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특히 시행사인 SH공사는 일찌감치 일반분양을 해서라도 개장 시기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는 한 명의 청계천 상인이라도 더 분양을 받도록 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든파이브'가 비록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 수립한 사업이지만, 본래 건립 취지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시와 SH공사는 지난해 12월 1차 분양 이후 지지부진한 분양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개장 시기를 연기할 때마다 수차례에 걸쳐 특별분양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당초 3년까지였던 전매제한 기간은 지난 5월 2년으로 줄더니, 지금은 1년으로 단축됐다. 1인당 1개 점포만 계약할 수 있던 조건도 3개까지 신청이 가능하고, 특히 1순위 신청 자격을 1인당 2~3개 점포를 계약한 다점포 신청자에게 주도록 했다.

 

청계천 상인들인 시와 SH공사가 '계약률 올리기'에 급급해 전매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도 이 때문이다. 영세 상인에게 비싼 점포를 2~3개씩 분양하면 나중에 매매를 할 수밖에 없고, 이는 간접적으로 전매를 부추기는 행위라는 것이다.

 

사실 '가든파이브'의 분양률이 낮았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청계천 상인들이 예상했던 분양가와 SH공사가 조성한 원가 사이의 괴리 때문이다. 45년째 세운상가에서 전자부품 판매업을 하다가 이번에 '가든파이브' 상가 분양을 받은 박모(67)씨는 "(2003년) 청계천 복원당시 이명박 시장이 상인들에게 설명회 등을 하면서 제시한 분양금액은 전용면적 17.78㎡(7평) 기준 최하 7000만 원에서 최고 1억 원이었다"며 "현재 SH공사에서 제시하는 분양가는 최저 6000만 원에서 최고 5억 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그래도 나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라도 있지만, 청계천 상인들은 대부분 영세한 임차인들이기 때문에 상가 분양을 받을 수도 없고, 받더라고 관리비나 운영자금이 부담이 돼 얼마 버티지 못한다"며 "우리는 잘 지은 여인숙 정도를 생각했는데, SH공사는 으리으리한 호텔을 지어 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매번 분양 조건을 완화하면서 '분양일정 최종확정', '더 이상의 조건 완화와 개장 연기는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늑대와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만 할 게 아니라 분양원가를 더 낮추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애물단지로 전락... 한 달 손실 70억  

 

일각에서는 특별분양 조건을 단계적으로 완화하지 말고 초기에 일시적으로 단행했다면 분양률을 더 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SH공사 측도 서울시에 이러한 내용을 건의했지만 번번이 묵살 당했다.

 

특히 SH공사 측에 따르면 '가든파이브'의 공과 관리비, 사업비에 대한 이자 손실비 등이 매월 70억 원에 달한다. 오는 9월에 개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4월부터 6개월간 420여 억 원의 손실을 본 셈이다. 이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차라리 그 손실 비용으로 청계천 상인들에 대한 분양 원가를 더 낮췄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서울시는 "분양 원가 부분은 절대 손 댈 수 없는 부분"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 동남권유통단지 조성담당관인 임호빈 팀장은 "지금 분양이 안 되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미리 예단을 해서 그런(분양 원가를 깎아주는) 조치를 한다는 것은 행정이나 공공 부문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기업체는 오너가 책임지고 할 수도 있지만, 공공부문은 그렇게 하면 하는대로 논란의 소지가 크다. 상인들도 그것을 믿고,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사견을 전제로 "더 이상 대책을 내놓을 것도 없다"면서 "상인들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서울시의) 머리 꼭대기에서 상투를 가지고 노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임 팀장은 "시의 정책목적 달성을 위한 노력을 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못 이뤄서 안타깝다"며 "특별·우선분양이 안 되면 결국은 일반분양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29일 SH공사에 따르면 지난 15일부터 26일까지 청계천 일대 상인들을 대상으로 우선분양을 실시한 결과 추가로 상가 분양을 신청한 사람은 521명이다. 특히 SH공사는 전자, 패션, 영화관 등 복합쇼핑몰로 구성돼 있는 '가' 블록의 경우, "신청자들이 100% 계약한다면 55% 정도의 분양률을 보인다"며 반겼다. 그러나 '나' 블록과 '다' 블록은 각각 20.5%, 6.1%의 분양률을 보여, 전체 8360여 개 상가에 대한 분양률은 37.9%에 그쳤다.

 

SH공사는 예정대로 8월 말 일반분양을 실시한 뒤, 9월에 개장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특별·우선분양률이 40%에도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일반분양의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게 됐다. 특별·우선분양분이 편법 거래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두 배나 비싼 일반분양분을 사겠느냐는 우려가 높다.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 불황도 문제다. 상가업계에서는 "분양률이 70~80% 정도는 넘어야 상인이나 SH공사 모두 손해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청계천 대체 상가'라는 당초 사업 취지마저 퇴색한 가운데, 애물단지로 전락한 '가든파이브' 때문에 서울시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태그:#가든파이브, #SH공사, #오세훈 서울시장, #이명박 전 서울시장, #청계천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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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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