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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게 패배하신 이회창 후보님의 노고에 대해서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아울러 드립니다. 특히 이제 새로운 진보의 기치를 내걸고 열심히 뛰신 권영길 후보님 선전하신 것에 대해서 축하드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큰 발전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당을 달리하고 이번 선거에서 많은 의원님들 정치하시는 분들, 이제 대화와 타협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도록 언제든지 대화를 제의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국민을 위해서 힘을 모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 합니다. - 노무현 16대 대통령 당선 연설

 

2002년 나는 투표권이 없는 고등학생이었지만 대통령 선거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왜냐하면 대학 입시에 10대의 삶을 저당잡인 우리 청소년들을 누가 구원을 해줄 수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이 되었을 때 가장 인상이 깊은 것은 앞에서 언급한 당선 연설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정치인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만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었다. 의견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정당에 대해서 일체 배제를 하고 갈등을 만들 뿐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후보는 달랐다. 자신과 표차가 얼마 나지 않았던 이회창 후보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선전한 권영길 후보에게 격력의 메시지를 남기는 여유를 보였다. 그리고 이제 대화와 타협의 시대를 열어 갈 것이라고 하며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라도 함께 가자고 했다. 이런 노무현은 당시 청소년인 나에게 너무나 멋있는 존재였다. 이 사람이야 말로 모든 국민을 포용하고 이끌어가는 이 시대의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대통령 탄핵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04년 봄 느닷없이 야당(한나라당)에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했다. 대학교 1학년 학생 이었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야당과 대화를 통해 여러 가지 문제를 큰 갈등 없이 풀어갈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당은 국회의원 의석수가 여당보다 많은 것을 이용해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 시켜 버렸다.

 

국민들은 다시 나서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서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국민들은 너도 나도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대통령 탄핵을 '결사반대' 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2002년 대통령 선거의 열풍처럼 노무현을 살리기 위해 국민들은 다시 그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탄핵 국면을 지켜보면서 노무현은 정말 복 받은 정치인이라는 것을 느꼈다. 국민들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그를 구원해주니 말이다. 그리고 그 해 국민들은 노무현이 만든 열린우리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다.

 

이제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겠지?

 

대연정, 노무현 진보 맞나?

 

 

보수 정치에 맞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쳐 나갈 거라고 기대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갑자기 한나라당에 러브콜을 보냈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구현해 나가기 위해 야당에게 연정을 제안했던 것이다. 대연정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확인하자 나뿐만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물리치고자 했던 적과 어떻게 동침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더러운 보수정치 세력과 한통속이 되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이 달갑게 들리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노태우 정권 때 민주화 인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노태우-김종필 당과 손을 잡았던 사건이 회상되었기 때문이다. 3당이 합당하여 국민을 위해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겠다고 했으나, 군부 세력과 손잡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한미 FTA 집회 반대에 제일 앞에 서다

 

 

대연정뿐만 아니라 당시 노무현 지지자들을 의아해 하게 만들었던 것은 한미 FTA를 정부에서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나는 노무현에게 가졌던 연민조차 다 버리게 되었다.

 

참여정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부를 기치로 걸었던 노무현 정부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추진하는 모습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전 세계의 자본의 흐름을 유연하게 하여 다국적 기업의 자본을 증식시키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노무현 정부가 협조하겠다고 한 사실이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다시 거리로 나가서 촛불을 들었다. 이제 노무현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무현을 비판하기 위해서 촛불을 들게 되었다. '한미 FTA 반대', '미친 미국 소 우리가 먹을 수 없다.' '농민들 다 죽이는 FTA 중단!' 등의 구호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졌다.

 

국민들에게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나의 생각은 배신에 대한 기억밖에 없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주위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위협하자 노무현을 그리워할 때도 나는 노무현으로 돌아가는 것은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연호>를 통해 만난 노무현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가졌던 그에 대한 오해가 조금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연정에 대해서 그는 '내 탓'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연정은 조금..... 바로 내 전략이 보통은 옳다고 하는 자만심이 만들어낸 오류입니다. 내 딴에 건곤일척의 카드라고 던졌는데, 그게 흑카드가 됐어요."

 

"나한테 모순이 있는 건 아닙니다. 나는 대통령에 당선될 때부터, 민주당 시절부터 연정 구상을 가지고 있었어요. 2004년 총선은 반드시 우리가 질 걸로 봤습니다. 그때 카드를 일종의 이원집정에 가까운, 말하자면 내각제에 가까운 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타협의 정치를 한번 해보려고 한 것이죠."

 

한미 FTA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도 심상정 의원과 토론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대부분 개방을 하고, FTA를 하고 있으므로 이들 나라 정부 모두를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말해야 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노력은 했으나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심 대표가 주장한 만큼의 진보를 이루어내지 못한 것은 아쉽게 생각합니다. "

 

노무현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국민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지금 노무현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들의 지지를 잃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끓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는 거부하라!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노무현은 퇴임 이후에도 끊임없이 한국 사회의 진보에 대해서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나라의 최고의 권력을 맛본 사람이 또 어떤 욕심이 있었던 걸까?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 무렵 저는 임기를 마치면 이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가서 '시민주권운동'에 한 몫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민주주의든 진보주의든 궁극적으로 시민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간다'는 이치를 거듭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하느냐 아니냐는 이제는 결국 시민들의, 최종적으로 시민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시민이 최종 선택을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시민사회를 재조직해보자'는 겁니다. 그래서 마침내 정확하게 선택해 나가야 한다. 시민의 운동이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덮는 순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여주고자 했던 한국사회의 정치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노무현의 현실정치와 그의 사상적 맥락을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맞이하고 비석에 남겼던 이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문은 말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와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이번주 일요일에 부산대학교에서 민주주의에 대해서 토론을 해볼 예정이다. 혹시 관심있으신 분은 쪽지로 연락주세요. (이 토론을 통해서 노무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기사를 써 볼 예정이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통령 노무현과 기자 오연호의 3일간 심층 대화, 개정판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7)


태그:#노무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진보,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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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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