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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가 뻐근하고 몸이 묵직하다. 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잠이 깨기도 전 머릿속이 복잡하다.

 

'뭘 입나?' 바지를 입으면 빗물에 밑단이 젖어 찝찝하고, 밑단 젖는 게 싫어 치마나 반바지를 입으면 찬 기운이 다리에 스며든다. 비가 내리면 버스에 사람이 많다. 사람들 비집고 버스 타기도 힘들지만, 타자마자 안경에 김이 서려 시야가 흐려진다. 한 손은 우산 들어야 하고, 한 손은 손잡이 잡아야 한다. 안경 닦을 손이 없다. 그렇게 우스운 꼴로 얼마를 가야 한다. 비 내리는 날이 반갑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하루가 눈에 선하다. 아이들 엉덩이는 의자에 붙어있질 않는다. 목소리는 '솔'음, 복도에선 종일 달리기 경주가 이어진다. 한두 번 예상이 빗나갈 만도 한데, 이건 백발백중이다.

 

우재(가명)는 우리 반 3학년 학생이다. 비 내리면 아이들은 날궂이를 하는지 더 산만한데, 우재는 그 중 단연 돋보인다. 남부러울 것 없는 듯 기분 좋기도 하고, 세상 걱정 다 짊어진 듯 울상이 되기도 한다. 어느 때는 기분 좋았다가 금방 울상이 되는 변덕을 부려 주변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며칠 전 우재가 보인 행동이 비 내리는 날 긴장을 더했다. 자폐 장애가 있는 우재가 학교생활을 잘하도록 꼼꼼히 챙겨주는 짝꿍. 사람 많은 곳에선 뭘 안 먹어 학교 급식도 거의 먹지 않는 우재에게 밥·김치·오이무침을 먹인 짝꿍이라 더 기특했다. 다들 우재가 짝꿍을 좋아해서 잘 따른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짝꿍 어깨를 문 것이다.

 

누가 비 내리는 날 아니랄까봐 1교시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다. 우재는 혼자 웃다가 불쑥 일어나 교실 문 열고 닫기를 몇 번, 쉬는 시간 컴퓨터에 앉아 있는 내게

 

"버즈(만화 영화 토이스토리 주인공 이름) 보자, 버즈 보여 주세요, 버즈 볼까?"

 

지치지도 않고 말한다. 나도 그에 질세라 일일이 대답한다.

 

"버즈는 집에서 봐요. 버즈는 집에서 보자. 버즈 안 봐!"

 

정신없이 수업을 마치고 우재네 전화했다. 학교 앞에서 식당을 하시는 우재 어머니께서는 바쁜 시간이라 우재를 데리러 올 수가 없다고 하신다.

 

"선생님, 그냥 보내세요."

 

맑은 날이면 혼자 식당을 찾아가니 보내겠지만, 아직 비가 그치지 않았다. 주섬주섬 우산과 우재를 챙겨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가는 길가에 물웅덩이가 있다.

 

"우재야, 안 돼!"

 

 말 끝나기도 전에 발을 첨벙한다. 이미 척척해진 양말은 둘째 치고 무릎까지 물이 튀어 바지가 반은 젖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밉살스럽게 웃으며 '선생님, 오늘은 비가 내리잖아요'라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우재가 식당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돌아오는 길. 방금 전 물웅덩이 앞에 섰다. 돌아갈까, 뛰어 넘을까 때 아닌 고민을 하다 '에라, 모르겠다.' 물웅덩이를 밟았다. 사방으로 물이 튀어 옷이 젖는데도 이상하게 속이 후련하고 기분이 좋다.

 

"그래, 우재야 오늘은 비 내리는 날이다."
 
우재가 들어간 식당 입구를 보며 미처 못 한 대답을 한다. 비 내리는 하루가 간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이번 주 내내 비가 내린다고 한다.

태그:#비, #물웅덩이,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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