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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김이랑(50) 짚풀공예 댕댕이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2006년 6월경 첫 인터뷰 이후이다. 그간의 세월이 증명하듯 그녀는 보다 원숙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녀를 오랜세월 이끌어준 스승 임채지 님과 함께 지난해 9월 정부에서 인정하는 '짚풀공예 국가기능 전승자와 계승자'가 되었다.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국가기능자를 배출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한 이래 짚풀공예 부문에서 처음이자, 최고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 어찌 반가운 일이 아닌가. 7월15일 신현동 신현초 뒤편에 위치한 그녀의 공방을 찾으니, 마침 임채지(73)님이 짚풀작업에 열중하고 계신다. 취재를 왔다고 설명하자, 이야기 보따리를 한아름 풀어내신다.

 

"아, 내가 말이지...20여 년 전 우연히 짚신을 삼았는데, 아 글쎄 주변에서 잘 만들었다고 칭찬이 자자해. 흥이 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짚신을 몇 켤레 삼아 청계천 7가 골동품상가에 내다놓으니 서로 잘 삼았다고 만들어 달라고 해서 수원 등에도 많이 갖다 팔았지. 아, 그래서 말이야...아예 곡성에서 올라와 용인민속촌에 들어갔어. 짚신을 삼겠다고. 그런데 허드렛일만 시켜서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로 가서 14년을 있었지."

 

본인이 짚풀을 삼게 된 이유를 설명하신다. 다른 긴 설명은 필요없는 듯 했다. 스스로 돋아나는 '흥'이다. 이내 김이랑 대표와의 인연을 '참 고마운 인연'이라고 표현하셨다.

 

"2002년도에 순천 낙안읍성으로 배우겠다고 날 찾아왔어. 이 짚풀하는 일이 손도 아프고, 벌이도 안되고, 힘들고, 공기도 탁하고 등등 남자들도 못 하는 일인데 꾸준히 버티어 내기에 내 맘 속으로 너무 고마워 내 아는 대로 가르쳐 주었지. 수많은 사람이 나에게 배워갔지만, 모두 중도에 그만두었는데 이렇게 김 대표가 짚풀공예의 맥을 이어주고 있으니, 내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는가 말이야...허허."

 

우매한 질문이긴 하지만, 왜 짚풀공예를 하시는데요? 하고 물었다. 그러니 임채지, 김이랑님이 동시에 "한가지 작품을 만들어내면 그렇게 재미있어"하고 말한다. 임채지님은 "아, 김선생은 말이지...처음부터 잘할 수 없는데, 솜씨와 실력이 겁나게 많아. 짚풀에서 짚신, 소쿠리 등의 평면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지만, 입체가 있는 짐승 등은 만들기 어렵거든. 저기 돼지를 봐여. 돼지발톱까지 어찌 저리 표현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내 이번에 공방에 들르면서 '고부에 왔다'고 했지."

 

고부에라? 김이랑 대표는 "딱 알맞게 왔다"는 표현이라고 설명해준다. 임채지님이 돼지발을 어떻게 짤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공방에 들렀는데 김이랑 대표의 돼지작품을 보고 한 말이다. 이젠 스승과 제자를 구분할 것 없이 "우리나라 전통이 무너질까 싶어서 함께하는 이"가 되었다.

 

김이랑 대표는 "10여 년 전 아무도 하는 이 없어 막막했지만 중학교 CA활동하면서 가르치는 재미와 작품만드는 즐거움에 계속 해냈고, 어느 날 심화과정을 배우고 싶어 국립박물관에 문의하니 임채지 선생님을 소개해 주어 만나게 되었다"며 "현재는 임채지 선생님이 곡성군 기차마을에 계신 지 3년이 되었는데, 지푸라기에 대해 얘기하면 날샐 정도로 끊임없고, 언제가도 늘 계시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맞아주신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노동부 국가기능 자격에 응시한 결과 지난해 9월5일 짚풀공예 부문에 '임채지(전승자)-김이랑(계승자)' 님이 다른 8팀 신청자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공식 인정을 받게 됐다.

 

임채지님은 그 공을 김이랑님에게 돌린다. "계승자가 있기에 내가 전승자가 되었구려. 그래서 내가 많이 키워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쉬워. 특히 김 선생이 전시장이 없는게 그러오. 다른 사람들이 배우러 온다고 해도 제대로 된 작업공간이 없고, 이렇게 남의 안방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내 사실 창피합니다. 안그래도 예전에 짚풀을 하면 하인이 하는 천한 작업으로 여겼는데, 지금은 장소도 없어 더 천하게 만드는지...내 참 시흥에 온 김에 시장 얼굴좀 만나보려고 합니다. 아니면 김 선생을 곡성으로라도 데려가야지..."

 

그러더니 "고성 공룡축제, 낙안읍성 축제 등 문화행사에 함께가면 관람객들이 '저 참한 여성이 어찌 저리 힘들 일을 할꼬'하고 대견해하면, '시흥에서 왔습니다'하고 이렇게 시흥홍보를 하는데 시흥에서는 그녀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차신다.

 

옆에 듣고 있던 김이랑 님은 "10년 전에는 막막했는데 전통공예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몇주 전에는 공예문화진흥원 주관으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공예포럼'을 개최, 비전있는 희망 토론회도 개최했다"며 "그 일환으로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옻칠, 대장간, 짚풀 등 사장될 위기에 처한 분야들을 일부라도 살려내고자 '전승자-계승자'를 서로 엮어 격려하는 것이 아니냐"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에서, 지역에서 관심을 갖고 '공예촌'을 만들어 육성, 장려하는데 반해 시흥의 유치원생들은 인근 인천도호부청사 및 부천시민회관 등으로 견학을 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짚 문화가 이젠 지푸라기가 아닌 금푸라기"라며 한몫 거드는 임채지 님은 "모르는 사람들은 짚풀문화를 허술하게 생각하는데, 문화재로 소중하게 관리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이랑 님도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짚풀문화를 알리고 체험할 수 있는 마당을 지닌 전시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소박한 꿈을 내비쳤다. 또 "무형문화재가 되어 전통을 이어가는 작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행사참여, 교육프로그램 정도로 그치고 있는 짚풀공예를 앞으로 학문적 연구로 도입하고자 서울산업대 공예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그녀. 지푸라기 작가로서 후진양성을 해내고, 무형문화재가 되고자 한다는 확신한 비전을 보이고 있다.

 

"갯골생태공원, 옥구공원, 연꽃단지 등에 옛 지푸라기 문화와 연계된 놀이프로그램을 하면 관광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언과 함께 "시흥에 있는 옻칠, 한지, 천연염색, 짚풀, 목공예, 장승솟대, 방짜 등을 하고 있는 전통공예인들이 힘을 모을 계획을 하고 있다"는 설명도 보탰다.

 

과거 '재미'와 '흥'으로 시작한 일이 이젠 국가기능인으로, 미래에는 무형문화재가 되려는 일로 바뀌었다. 과거-현재-미래를 제대로 된 목표와 꿈을 안고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3년 전 그녀를 대할 때나 지금이나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고 정의내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컬쳐인시흥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짚풀공예, #시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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