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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2년째 골수암으로 투병 중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독한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는 외롭고 힘든 여정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다들 깊이 잠든 시간에도 잠들지 못하고 울면서 견디어내곤 했다. 수면제를 먹어도 한 시간 이상 편하게 잠들지 못한다. 그렇게 치료하기 일 년. 다행히 치료가 잘 되어서 지난 5개월간은 2주 만에, 또는 매달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검사결과를 점검받고 진통제만 받아왔다. 혹독한 병상생활에서 해방되니 살 만했다. 세상이 달라보였다.

 

그런데 지난 달 말, 갑자기 온 몸에 대상포진이 번지면서 수치가 올라가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대상포진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징후는 있었다. 근 한 달여를 역한 음식냄새로 식사를 할 수가 없었고, 체중은 날마다 최저치를 갱신했다. 체중이 내려간다는 것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다. 그것은 몸이 내게 보내는 적신호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냥 그렇게 대책 없이 지내다가 마치 바늘을 한 주먹 쥐고 마구 찔러대는 듯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갔다가 의사의 지시대로 입원준비를 했다. 그러나 입원실이 없어 하루 온종일을 아무런 처치도 받지 못한 채 무작정 대기하면서 병실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오후 늦게야 입원하고 견디기 힘든 통증을 잠재우기 위해 온갖 진통제를 쏟아 부으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이 병을 먼저 겪은 환자들과 간호사, 의사들이 오며가며 대상포진에 대한 아픔을 이야기해주어 지금도 이렇게 아픈데 도대체 얼마나 아픈 것인가 두렵기까지 했다. 다행히 일주일간 입원치료해서 상태가 가라앉자 집에서 드레싱을 계속하도록 하고 퇴원할 때 의사는 일주일 후 다시 오라고 했다.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병원에 갔는데 그때 주치의는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말로만 들어도 고통스럽고도 불길한 한 마디를 남겼다. 지난 번 입원 중에 검사한 결과 수치가 다시 올라가 항암치료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면서 일주일 후의 경과를 더 지켜보자고 했다.

 

다시 일 주일 후, 제발 좋은 결과 나와서 다시 그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시작하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불안한 시간들을 보내고 나서 주치의 앞에 결과를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앉았다. 그의 입에서 떨어질 한 마디를 기다리는 순간이 처절했다. 컴퓨터 검색으로 한참 동안 자료를 훑어보던 의사의 입에서 긴 시간 죽음 같은 침묵을 깨고 나온 말은 너무도 간결했다.

 

"다시 시작하죠."

 

지난 2월 12일, 마지막(?) 항암주사 맞고 만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울적한 마음으로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을 돌아서 집까지 오는 동안 그와 나는 말이 없었다. 무거운 마음이 온 몸을 짓눌렀다. 건강한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 그가 먼저 침묵을 깼다. 수치가 올라가면 주사 맞아 내리고, 입맛이 없으면 식욕촉진제 먹고, 잠이 안 오면 수면제 먹으면서 그냥 걱정하지 말고 살자고 했다. 사실 그 방법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

 

다시 검사를 한 번 더 하고 나서 그 결과에 따라 다음 주부터 온전히 주치의가 내려주는 처방대로 따르기로 했다. 다음 주에 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알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모든 것 다 맡기고 기도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인간이라는 육신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인생살이 참으로 길고 험난한 길이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 고통받는 사람들의 소식들로 넘쳐난다. 날마다 그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울하고 가슴이 아프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살기 좋은 세상은 그 언제나 오는 것일까.

 

그래도 나의 이 고통으로 드리는 기도가 나와 같은 길을 가는 환우들에게, 또한 이 세상에서 육신은 물론 영혼의 고통으로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동안 내가 받았던 크고 작은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천상병 시인처럼 이 세상 소풍 마치는 그날까지 넘어지지 않고 걸어가야겠다.


태그:#암투병기, #항암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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