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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헌책방이라는 곳은

서울 홍제동 헌책방 〈대양서점〉 두 아저씨(1매장과 2매장 두 곳으로 나뉘어 있습니다)는 당신 일터인 헌책방을 찍은 사진을 사진첩에 알뜰히 간수해 놓고 있습니다. "조금씩 모아 놓으면 역사가 되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잘 찍었건 못 찍었건 그 사진은 그때 내가 여기에 있던 모습을 보여주니까 소중해요.(2매장 작은아저씨)" "이기 이렇게 모아 놓고 간간이 들여다보는데, 그 재미가 쏠쏠해요. 최 기자가 찍어 준 것도 있고 다른 단골 손님이 찍어 준 것도 있는데, 사진을 보면서 내가 여기서 살아온 발자취를 들여다보잖아. 재미있어.(1매장 큰아저씨)"

서울 홍제동 헌책방 〈대양서점〉 1매장 책꽂이 벽에는, 그동안 이곳을 취재해서 나왔던 기사를 비닐에 곱게 싸서 붙여놓고 있습니다. 언론사에서는 때 되면 '추억과 향수 어린 곳'이라느니 '불경기에 새롭게 주목받는 곳'이라느니 하면서 찾아와 언제나처럼 똑같은 말을 묻고 똑같은 대답을 들으려고 합니다. 그 기사가 그 기사고 이 기사가 이 기사가 아닌가 싶은데, 그래도 '이렇게 헌책방을 잊지 않고 찾아와 취재하고 기사를 써 주는' 모습을 반갑게 여겨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예 모르쇠로 있는달지, 헌책방이라는 곳이 있거나 말거나 한달지 할 때보다는 조금은 나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와 같은 기사가 나오면서 '헌책방이 요즈음 같은 때에도 용케 죽지 않고 살아 있기도 하구먼' 하고 사람들이 생각해 줄는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책방 앞. <대양서점> 1매장은 큰길가, 고가도로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책방 앞. <대양서점> 1매장은 큰길가, 고가도로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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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조금이라도 곰곰이 헤아려 본다면, 한두 해가 아닌 열스물 해, 또는 서른마흔 해를 한길을 파면서 한 자리에서 꿋꿋하게 지키곤 하는 헌책방입니다. 사람들은 나날이 책을 덜 읽거나 안 읽는다고 하는데 헌책방은 무슨 재주가 있어서 그리 오랜 나날을 뿌리내리며 버틸 수 있을까요. 웬만한 새책방은 모조리 문을 닫는 판에, 헌책방은 살림을 어떻게 꾸리고 책은 어떻게 간수하며 손님은 어떻게 맞이하기에 기나긴 나날에 걸쳐 크게 도드라지거나 돈을 번다는 소식은 없어도, 모두들 이렇게 제자리를 고이 이어나가고 있을까요.

"기자들은 헌책방을 몰라요. 헌책방을 알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나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은 헌책방을 모르지 않잖아요. 동네에서든 멀리서든 우리 헌책방을 찾아와 주는 분들은 헌책방에 깃든 좋은 보물을 알고서 찾아와 주세요." 가게삯을 내고 책을 새로 사들이는 데에 돈을 치러야 하고, 전기값이니 물값이니 자잘한 세금을 내고(전기값은 자잘하지 않습니다만), 여기에 헌책방을 지키는 일꾼으로서 당신 몫을 어느 만큼 챙겨야 하며, 이렇게 챙긴 몫으로 집살림을 꾸립니다. 때때로 술 한잔을 걸친다든지 바깥밥을 사먹는다든지 마음을 풀고자 나들이를 떠난다든지 합니다. 이렇게 하자면 헌책방 한 곳은 날마다 어느 만큼 책을 팔고 어느 만큼 돈을 벌어야 할까요. 이처럼 헌책방 살림을 꾸리도록 하는 책들은 어떠한 책들일까요. 헌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어떠한 책에 눈길을 보내고 어떠한 책에 손길을 뻗치며 어떠한 책을 읽으며 마음길을 다스릴까요.

저 스스로 헌책방이 좋고 책이 좋아 헌책방마실을 합니다. 헌책방 이야기를 글로 끄적거리고 헌책방 모습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할 까닭 없이, 저부터 헌책방이라는 곳을 얼마나 속깊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 스스로 헌책방 책살림을 얼마나 찬찬히 보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돌이켜봅니다. 헌책방 한 곳이 살아내는 발자취를, 헌책방 일꾼 한 사람이 살아가는 발자취를, 책 하나가 헌책방을 드나들며 빚어내는 발자취를, 이 하나하나를 얼마나 곰곰이 헤아리고 이 하나하나를 얼마나 두루 아울러 돌아보는 삶인가 하나하나 되새깁니다.

<대양> 1매장 큰아저씨가, 새로 들어온 책과 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대양> 1매장 큰아저씨가, 새로 들어온 책과 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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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규 씨는 이렇게 자주 찾아와서 여러 시간 있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기자들은 어쩌다 한 번 잠깐 찾아와서 슥 둘러보고 가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보는 눈이 다르지요. 그런데 종규 씨도 알겠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죽 있는데 손님이 몇 사람이나 들어와요? 기자들은 불황기에 헌책방을 새로 주목하며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적으면서, 마치 우리가 장사가 아주 잘 된다는 듯이 이야기하는데, 하나도 그렇지 않아요." 〈대양서점〉 1매장과 2매장을 오가면서 이야기를 듣고 책을 살핍니다. 몇 해째 얌전하게 꽂힌 책을 새삼스레 쓰다듬어 보고, 열 몇 해째 더께를 늘려가는 책을 살며시 손가락으로 찍어 봅니다. 이 책들은 앞으로 스무 해쯤 지나면 새로운 빛줄기를 얻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쉰 해나 백 해가 지나도 아무런 빛줄기를 얻을 수 없을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 책들 가운데 퍽 많은 책들은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헌책방으로 들어와 오래도록 책손을 기다리는 동안에 어느 한 번도 따순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을 받아 본 적이 없는지 모릅니다.

인천 노동자 역사를 다룬 책 하나.
 인천 노동자 역사를 다룬 책 하나.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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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 엮음-'87 노동자대투쟁(7∼8월 인천지역 사례》(풀빛,1988)이라는 책 하나를 꺼내어 펼치면서, 1987년에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제가 보고 겪고 부대낀 그무렵 인천 모습과 '노동자대투쟁' 이야기를 꺼내는 책에 담긴 모습을 견주어 봅니다. 이와 같은 책은 인천사람 아니라면 들추어 볼 일이 없겠지요. 이와 같은 책은 인천사람이라 할지라도 노동자 이야기나 우리 지난날에 눈길을 두는 사람이 아니라면 들출 일이 없을 테지요. 이와 같은 책은 인천사람이며 우리네 지난 삶자락에 눈길을 둔다 할지라도, 스스로 짬을 내고 겨를을 마련하여 우리 삶터를 더욱 차근차근 되새겨 보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애써 헌책방마실까지 하면서 '판 끊어지고 사라진 이 책'을 알아보거나 장만해서 당신 집 책시렁으로 옮겨 놓을 마음을 품지 않겠지요.

 (2) 헌책이 아닌 책을 보면서

《안재성-김시자 평전, 부르지 못한 연가》(삶이보이는창,2006)라는 책이 눈에 뜨입니다. 세상에 이름이 드높지 않은 사람 이야기요, 세상에 이름이 드높지 않은 사람 가운데 여성노동자 한 사람 이야기입니다. 불꽃처럼 사그라든 넋을 책 하나로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나마 이렇게 책으로 엮어내 주니까 우리들은 우리가 놓치거나 모르거나 등돌리는 어느 한 갈래 삶터를 고맙게 둘러볼 수 있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 김시자의 분신 사유는 명백하다. 오로지 한전 노동자들의 보다 나은 생활과 인격적인 대우를 위해서였다. 이를 위하여 노동조합이 올바른 민주적 절차와 내용을 가져야 한다고 목이 아프게 외치고 또 외치다가 한계에 부딪히자 자신의 몸으로 그 벽을 뚫어 보려고 했다 ..  (21쪽)

한 사람 힘은 얼마나 여리며 보잘것없는가 다시금 되뇌어 봅니다. 책 한 권 힘 또한 얼마나 여리며 하잘것없는지 다시금 되짚어 봅니다. 그러나, 여리며 보잘것없기에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종이 한 장 맞들면서 힘을 모둡니다. 그리고, 여리며 하잘것없기에 이 책 하나를 굳이 붙잡습니다. 책 하나에 얼마나 너르고 깊은 우주가 스며 있다고 책을 읽겠습니까만, 하잘것없는 우주이든 좁살 만한 우주이든, 우리 스스로 이 작고 힘없는 몸뚱이를 버티고 껴안고 이끄는 힘은 바로 자그마한 책 하나에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새로 들어오는 책들은 먼저, 바닥에 깔려 갈래 나누기를 기다립니다.
 새로 들어오는 책들은 먼저, 바닥에 깔려 갈래 나누기를 기다립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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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먹고 나온 종로는 성탄절 분위기로 화려했다. 세상은 한전 노동자를 둘러싼 암담한 상황과 아무 상관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대형 빌딩마다 화려한 성탄절 트리가 세워지고, 상점마다 연말연시 카드와 연하장을 진열해 놓았다 ..  (220쪽)

조용히 잘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아니, 시끌벅적 잘 굴러가는 삶터입니다. 내가 있다고 더 조용해지지 않고, 내가 있기에 더 시끌벅적하지 않습니다. 내가 없어도 조용할 때에는 조용하고, 내가 없든 말든 시끌벅적한 곳은 그예 시끌벅적합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세상은 제 흐름대로 흐릅니다. 물결은 제 모양새대로 넘실거립니다. 밖을 내다보면 나와는 아주 동떨어지거나 멀리 떨어진 듯 보이지만, 내 안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내 삶을 내 깜냥껏 꾸려 나가면 바깥이 이러하든 저러하든 내 마음은 언제나 느긋하고 고르며 판판합니다.

<대양> 1매장 큰아저씨는 손님이 뜸할 때, 텔레비전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컵라면을 먹거나 차 한 잔을 들거나 합니다.
 <대양> 1매장 큰아저씨는 손님이 뜸할 때, 텔레비전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컵라면을 먹거나 차 한 잔을 들거나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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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는 책하고 얘기해야지요. 예배당에서는 하느님과 얘기하고요." 한참 책을 들여다보며 사진도 찍고 헌책방 일꾼하고 이야기를 몇 마디씩 나누기도 합니다. 〈대양서점〉 2매장 작은아저씨는 꼭 하느님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런 하느님 같은 이야기는, 당신이 하느님을 섬기든, 책을 하느님처럼 섬기든, 아니면 이냥저냥 책장사를 하든, 그저 돈벌이 일감으로 이 일을 붙잡고 있든 아무러하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대양서점〉 1ㆍ2매장을 비롯한 모든 헌책방 일꾼은 늘 책하고 부대끼며 땀흘리고 있거든요. 날마다 책을 만나고 붙안고 부둥켜안으면서 몸으로 깨닫고 받아들인 이야기이거든요.

그러고 보면, 저 또한 여태껏 책방에서는 책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왔습니다. 낯도 모르고 이름이나 겨우 아는 숱한 사람들, 아니 숱한 앞사람들, 또는 숱한 어르신들을 책방 한쪽 구석 책시렁에서 끄집어 내어 말문을 걸었습니다. 그분들은 어느 곳에서나 제 마음 깊은 자리로 찾아와 마음말로 대꾸를 해 주었고, 저는 다시 이분들한테 몇 가지 궁금한 이야기를 여쭙고, 또 이분들은 당신 삶을 새겨 놓은 책 사이사이에서 당신들 다리품 서린 땀방울이 맺힌 글월로 대꾸를 해 주었습니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이 쓴 책 하나.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이 쓴 책 하나.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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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一勉-天皇の軍隊と朝鮮人慰安婦》(三一書房,1976)라는 책을 들춰봅니다. 이분이 쓴 책이 1970년대에 우리 말로도 나왔는지 궁금하며, 그 뒤에라도 우리 말로 옮겨졌는지 궁금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1970년대 한국땅에서는 "천황 군대와 조선인 위안부" 같은 책을 내려고 하는 출판사는 없지 않았으랴 싶고, 이러한 책을 냈을 때 제대로 읽어 줄 사람들이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들 깜냥으로 돌아본다면, 1990년대로 접어들고 2000년대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이만한 책이 나올 수 있고 읽을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안타까운 노릇이라고 해도 우리 참모습이라 할 텐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발자취를 돌아보도록 제대로 배우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에서건 중고등학교에서건, 아이들이 우리 발자취를 옳고 바르게 배우지 못하는 수업 얼거리인 가운데, 시험 문제 틀을 뛰어넘으면서 우리 삶을 톺아보고 우리 지난 삶자락과 다가올 삶자락을 견주어 살피도록 이끄는 교사를 찾아보기에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한테 가르쳐 줄 역사라 한다면 임금님 이름이나 사건사고 이름이나 년도가 아닐 텐데, 우리 눈길은 좀더 아래로 뻗어 가지 못합니다. 우리 손길은 좀더 옆으로 이어가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길은 좀더 우리 안쪽으로 파고들지 못합니다.

《新 しい手織》(婦人之友社,1967)이라는 책은 얼핏설핏 구경하다가 책 사이에 "大忠式 手織機" 광고쪽지가 끼워져 있기에 차근차근 넘겨 봅니다. 일본에서 '명치 30년'에 처음 세운 회사라고 하고, 손으로 옷감을 짜는 틀을 만드는 곳이라 합니다. 이 회사가 오늘까지도 잘 남아 있는지, 이제는 사라졌는지 모르겠는데, 오늘날에도 고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일본이니까요. 한국이라면 죄 씨가 마르거나 자취를 감출 테지만, 일본이니까요.

손으로 옷감 짜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에 실린 안내전단지 겉그림.
 손으로 옷감 짜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에 실린 안내전단지 겉그림.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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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마실을 하며 일본책을 볼 때마다 늘 느끼지만, 오늘은 《新 しい手織》을 보면서 일본 문화가 일본 삶터에 얼마나 깊고 너르게 뿌리내리고 있는가를 새삼 느낍니다. 우리네 문화는 우리 삶터에 얼마나 얕게 뿌리를 뻗치고 있으면서 아슬아슬한가를 다시금 느낍니다. 《新 しい手織》은 '손으로 빚는 문화'는 이 문화대로 보여주는 가운데, 손으로 옷감 엮는 틀을 보여주는 사진이 퍽 보기 좋습니다. 사진을 참 잘 찍었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아니, 우리 땅에서 이런 '실용품 사진찍기'를 꾸밈없이 받아들이면서 곱고 알맞게 해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3) 우리가 만드는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이경희-현이의 연극》(昔岩社,1973)이라는 책을 집어듭니다. 처음 보는 책, 처음 만나는 글쓴이, 처음 마주하는 펴낸곳입니다. 헌책방에서는 이런 낯도 물도 선 책을 고작 몇 천 원으로 장만할 수 있으니, 무어든지 낯선 책이라 할지라도 스스럼없이 집어들 수 있는지 모릅니다. 몇 만 원짜리 책이라면 섣불리 뽑아들지 못할는지 모릅니다. 아니, 몇 만 원짜리 책이라 하여도 뽑아들기는 하겠지요. 주머니가 홀쭉한 저로서는 사들이지는 못하고, 여러 시간 선 채로 찬찬히 읽고 훑기만 하겠지만.

.. 참으로 오래간만에 여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어제 점심때, 친구와 같이 어느 식당에 갔더니 그 식당 입구 양쪽에 대로 만든 여치 둥우리가 걸려 있었다. 시원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나는 무의식중에 "어마!" 하고 거의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한동안 잊고 살아온 여름벌레! … 언젠가 들은 얘기지만 도오쿄오 중심지에서는 나비를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어쩐지 사실 같지 않았으나 요즘 서울에서도 나는 나비를 본 기억이 까마득한 것 같다.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둥이가 꽃에 나비가 앉은 그림을 그린 것을 보고, 아직은 그 애가 꽃과 연관해서 나비를 생각할 줄 아는구나 하여 다행한 생각이 들었다. 광산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냇물의 색을 시꺼멓게 칠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비 없는 꽃만을 즐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슬퍼진다 ..  (98∼100쪽)

서울사람 가운데 여치와 풀무치와 베짱이와 메뚜기와 방아깨비 소리를 가눌 줄 아는 사람은 이제는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 소리는커녕 생김새를 가눌 줄 아는 사람부터 드물겠지요. 더욱이, 이런저런 이름을 떠올리기나 할 수 있겠습니까. 풀벌레가 살아갈 풀이 없는 서울인데.

어느 책이든 읽는 사람이 잘 삭이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훌륭하고 반가운 책이 됩니다.
 어느 책이든 읽는 사람이 잘 삭이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훌륭하고 반가운 책이 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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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가 사는 인천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대전이나 대구나 광주나 부산 같은 큰도시는 어떠할까요. 마산이나 진주는? 거창이나 김해는? 함평이나 목포는? 서산이나 천안은?

도시사람이든 시골사람이든 풀벌레소리와 개구리소리로 아침을 맞이하고 저녁을 마무리하는 삶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손전화 소리나 텔레비전 소리로 아침저녁을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가운데, 차소리와 기계소리로 온 하루를 다 보내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삶에 소리다운 소리란, 자연이 빚어내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이룬 온갖 기계가 빚어내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듣고 익숙해지는 소리는 자연에서 저절로 흐르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따로 마련한 갖가지 기계에서 흐르는 소리입니다.

"최 기자, 다른 데도 가 보니까 좀 알 텐데, 다른 데는 어떻다고 합니까? 책 좀 나온다고 합니까? 우리는 아주 죽겠어요. 책이 참 안 나와. 작년보다 더 안 나와. 작년에도 책이 안 나와서 죽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책이 안 나온 적이 없었거든." 사람들이 책을 덜 읽거나 안 읽는다 하니까, 헌책방까지 스며들 헌책은 차츰 줄어들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책을 덜 읽는다 하여도 아예 안 읽지 않습니다. 출판사들은 책을 꾸준하게 찍어내고, 인터넷책방이든 교보나 영풍처럼 큰 책방에서든 책을 수십 수백만 권씩 팔고 있습니다. 책은 예나 이제나 새로 만들고 새로 읽히고 새로 버려집니다. 다만, 오늘날은 이 나라 웬만한 사람들 살림집이 거의 아파트로 바뀌었습니다. 아파트에서는 헌책을 '책'으로 그러모아 헌책방으로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그냥 막바로 집게로 콱 찝어서 폐휴지로 만듭니다. 폐휴지란, '종이쓰레기'입니다. 우리들 사람 넋과 자취와 슬기가 담긴 종이모둠 책이 아니라, 얼른 솎아내고 덜어내어 '새로운 종이로 만들' 종이쓰레기가 되어 버리도록 하는 오늘날 우리 삶자리입니다.

<대양> 1매장은 위쪽에 책갈래를 적어 놓은 판이 붙어 있습니다.
 <대양> 1매장은 위쪽에 책갈래를 적어 놓은 판이 붙어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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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렇게 틈틈이 찾아 주니 고마워요. 다음에도 또 들러요. 그런데, 들르나마나 책이 좀 나와야 할 텐데." 주섬주섬 책들을 가방에 챙기고 한 권은 손에 쥡니다. 전철 타는 곳으로 걸어갑니다. 전철을 타며 책을 읽습니다. 책에는 여치 소리 이야기가 가득한데, 전철에서는 쇠소리와 전화소리 가득합니다.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어우러집니다. 손전화로 듣는 노래소리와 손전화로 보는 텔레비전 소리가 뒤섞입니다. 모두들 혼자 보고 혼자 즐기고 혼자 삭이고 혼자 보냅니다. 그리고, 저 또한 혼자 책을 읽으며 혼자 선 채로 집으로 갑니다. 그저, 오늘 내가 만나 가방 가득 챙긴 책들은 내 손에서 한 장 두 장 넘기는 책이 될 테고, 뒷날 우리 집 책꽂이와 도서관 책꽂이에 얌전히 꽂힌 채 또다른 사람들 손을 탄다면 혼자 보는 책으로 머물지는 않을 테지요.

'내가 읽는 책도 역사라 할 수 있을까? 내가 쥐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책마을 역사 가운데 하나로 남을 수 있을까?' 썩 밝지 않은 전철 등불에 기대어 책을 읽다가 책을 덮고 한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뾰족한 풀이가 없는 생각은 접어 두고 어쨌든 오늘 만난 책들을 좀더 읽자.' 다시 책을 펼칩니다. 두 귀는 둘레 소리가 아닌 내가 한 손으로 쥐고 두 눈으로 읽는 이 책이 내 마음한테 들려주는 소리를 받아들이도록 기울이자고 생각합니다. 사십 분 남짓 책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역입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대양서점> 2매장 작은아저씨가, 헌책방에 놀러 온 아이하고 놀아 줍니다.
 <대양서점> 2매장 작은아저씨가, 헌책방에 놀러 온 아이하고 놀아 줍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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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 02) 394-2511
http://cafe.naver.com/daeyangbook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헌책방, #대양서점, #서울헌책방, #책읽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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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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