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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코스모스가 산들거리며 피어있다. 코스모스 길을 따라 걷다보면 꿀벌들의 잉잉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늘을 바라보면 파아란 가을 하늘이 코스모스들을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고,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스러졌던 동심이 새싹 아지랑이처럼 생그르르 떠오르기도 한다.

동심을 가장 잘 표현하는 글이 있다면 무얼까. 동화도 있지만 아무래도 동시가 아닐까 싶다. 동시는 어린이들의 시다. 어린이들이 쓴 시이기도 하고 어린이의 마음과 생각을 담은 시가 동시다. 그렇다고 어린이들만 읽는 시는 아니다. 나 또한 종종 동시를 찾아 읽는다. 동시를 읽다보면 잃었던 그 무언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찾기도 한다. 그리고 일단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어른들의 시를 읽으면 어려 의미를 떠올리려 머리를 굴리지만 동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그림(이미지)만 그려도 된다. 그래도 재미있다.

<아기염소가 웃는 까닭>
 <아기염소가 웃는 까닭>
ⓒ 청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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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동시! 정말 그런 동시가 있을까? 있다. 그리고 시집을 읽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기발한 생각에 미소가 돌았고, 깨끗한 시인의 눈에, 귀에 미소가 돌았다. 오순택 시인의 <아기염소가 웃는 까닭>이란 동시집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돌고 마음이 맑아진다.

풀잎에 맺힌
이슬 핥아 먹고

봉숭아 씨
똥을 눈다.

똥에선 풀꽃 향내가 난다.

                               - <달팽이> 모두 -

똥에서 향내가 난다? 풀꽃 향내가? 참 귀엽지 않은가. 혹 달팽이가 옆에 있다 똥을 눈다며 정말 풀꽃 향내가 나는가 안 나는가 냄새를 맡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그리고 풀잎에 맺힌 이슬을 핦아 먹고 까만 봉숭아 씨 같은 똥을 눈 달팽이 똥에서 풀꽃 향내를 맡는 시인의 모습은 어떤 표정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기발한 상상력의 시도 있다. 눈 내리는 소릴 연필 깎는 소리에 비유해 쓴 <저녁 눈>이란 시이다.

사락사락
누가
연필을 깎고 있다.

하얀 종이 위에
시를 쓰려나 보다.

김광균이라는 시인은 <설야>라는 시에서 눈이 오는 소리를 "먼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감각적인 표현을 사용했는데 오순택은 하얀 종이 위에 시를 쓰는 연필 깎는 소리로 표현했다. 정말 이 시를 입속에서 읊조리면 눈이 오는 소리가 사락사락 오는지 귀를 기울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한 시골 초등학교의 1학년 정도의 꼬맹이들이 귀여운 손을 꼼지락거리며 시를 쓰는 모습이 연상된다.

꽁지 몽땅한 새가 날아가면서



민들레 꽃잎에
똑-
떨어졌다.

민들레 얼굴이 노래진다.

새순을 뜯어 먹고 있던
아기염소가
까르르 웃는다.

                    - <아기염소가 웃는 까닭> 모두 -

어떠한가? 절로 미소가 돌지 않은가. 그리고 두 개의 장면이 하나의 화면에 그려지지 않은가. 꽁지 짧은 새가 날아가다 싼 똥이 민들레 잎에 떨어지고, 그 똥을 맞은 민들레 꽃(얼굴)이 노래진다. 그때 아기염소는 노래진 얼굴로 변한 민들레를 바라보며 까르르 웃는다. 새똥 맞은 민들레와 까르르 웃는 염소. 이 두 개의 장면을 재미있게 연결한 시인의 상상력을 동시만의 맛을 듬뿍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오순택 시인의 시들은 앙증맞은 아기의 표정을 연상하게 한다. 달콤한 향기가 돈다. 그러면서 읽는 이의 마음에 미소를 돌게 하고 맑게 한다. 거기에 또 시 틈틈이 그려져 있는 한지 냄새가 나는 그림들은 시들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시인은 짧은 동시들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속에 옹달샘이 퐁퐁 솟아오르길 소망한다. 옹달샘의 샘물처럼 마음주머니도 생각주머니도 퐁퐁퐁 솟아나길 희망한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책의 머리말에 이러저런 이야기보다 동시 한 편으로 대신했다.

아이들
마음속에 옹달샘.

그 옹달샘에서
맑은 물이
퐁퐁퐁
솟아났으면…….

덧붙이는 글 | <아기염소가 웃는 까닭>/ 오순택 동시집 / 값8,000원



아기염소가 웃는 까닭

오순택 지음, 수정한지그림연구회 그림, 청개구리(2009)


태그:#오순택,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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