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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와 이동통신사업자 3사(SKT·KT·LGT)가 '초당 과금제' 도입, 가입비 인하, 장기가입자에 대한 요금 인하 등 이동통신 요금 인하 방안을 25일 발표했다. 방통위는 이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내건 '통화료 20% 인하' 공약을 거의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실제적인 요금 인하 효과를 보려면 이 대통령 임기 말인 2011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이통3사가 밝힌 요금 인하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따져보면 "실효성 없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통3사가 기본료 인하는 물론 가입비나 문자메시지 요금 폐지 등에 난색을 표한 반면, '단말기 보조금 대신 통화료 인하' 등 '조삼모사'격의 방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이통사들에 대한) 행정지도를 또 할 수 없다"며 이통요금 인하를 위한 더 이상의 개입 여지를 차단했다. 이 때문에 "방통위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따가운 질책이 터져나오고 있다.

 

SKT만 '1초당 과금제'로 개선, 다른 이통사 이용자는 '봉'? 

 

방통위와 이통사가 발표한 이통요금 인하 방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과금 방식의 변화다. SKT는 "이용자가 사용한 만큼 요금을 지출하도록 요금제의 과금 방식을 현행 10초씩에서 1초씩으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과금 방식 변화에 부정적이었던 SKT가 뒤늦게 입장을 바꿨다는 점에서 전향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다만 완전한 1초 과금은 교환기 교체 등의 이유로 2010년 3월에나 시행이 가능하다.

 

현행 10초 단위로 나뉘어 있는 요금 부과단위를 1초 단위로 세분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1초를 쓰든 20초를 쓰든 통신 요금이 같기 때문이다. 실제 '10초당 과금제'로 인해 통신사들이 챙기는 낙전수입만 1년에 8700억 원인 상황에서 '1초당 과금제'로의 전환은 통신비 인하의 필수사항인 셈이다.

 

방통위측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KT가 지난 1996년 '10초당 과금제' 도입 이후 13년 만에 근본적인 요금 체계의 변화를 시도한 것"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SKT측은 '그동안 잉여수익이 있었음에도 왜 더 일찍 초당 과금제를 도입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다만 이형희 SKT 전무는 "(10초당 과금제는) 요금을 설계할 때 평균 통화가 어떻게 이뤄지느냐의 통계를 바탕으로 설정이 된 것이고, 택시요금과 같은 방식"이라며 "이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과금 체계로 가겠다. 초당 과금제를 강화시켜 (타사와의) 요금 경쟁 시스템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SKT의 '초당 과금제' 도입을 KT와 LGT는 거부했다는 것이다. KT측은 "초당 과금제는 SKT 요금 전략의 일환일 뿐"이라며 도입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고, LGT측도 "필요하다면 검토할 수는 있다"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결국 SKT만 '초당 과금제'를 도입할 경우, 다른 이통사 이용자들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과금 방식 변화와 함께 2000년 이후 처음으로 가입비를 인하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SKT는 현행 5만5000원인 가입비를 4만 원으로 27% 인하하기로 했고, KT는 현행 3만 원을 2만4000원으로 20% 인하할 계획이다. 그러나 KT는 가입비 인하안을 발표하면서 '해지 후 재가입비 면제'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SKT는 지난 2000년부터 해지 후 재가입시 가입비를 받아서, 이용자들의 불만을 사왔다. 여기에 KT까지 가세하면서 재가입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킨 셈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은 "이통3사 간의 경쟁을 활성화 하겠다면서 재가입비를 받겠다면 과연 어떤 이용자가 통신사를 쉽게 옮길 수 있겠느냐"며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라고 지적했다.

 

특히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미 시설 투자비를 모두 회수한 상태에서 가입비를 유지하는 것은 부당한 이득을 보장하는 것이며 완전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통사들은 시장 초기 막대한 통신망 설비비 부담 등으로 3만~5만 원씩 가입비를 받았다. 그러나 이미 설치가 끝난 통신망에 대해 현재 이용자에게까지 비용을 전가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다. 실제 OECD 가입 30개국 중 이통사 가입비를 부과하지 않는 나라가 20여 개 국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통사 간 경쟁 저해... "보조금 대신 요금 인하는 조삼모사"

 

'장기가입자에 대한 요금 인하' 방안 역시 이통사 간 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SKT는 가입 후 2년 이상 경과한 장기이용자 중 이용요금이 2만9000원 이상이고, 1~2년 약정을 체결한 이용자에 대해 월 요금 3000~2만250원을 인하할 계획이다. KT도 2년 이상 장기가입자가 재약정(1년)을 하는 경우 요금 할인을 해주겠다는 방침이다. LGT는 일정기간(18~24개월)을 약정한 가입자에 대해 기본료 등 요금 인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 연말이면 요금 약정에 의한 의무가입자가 전체 이용자의 50%에 이른다. 이들은 의무가입 기간이 끝난 뒤, 다시 1~3년을 기다려야 혜택을 볼 수 있다. 결국 상당수 이동통신 이용자가 '장기가입자 요금 인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최대 5년 동안 다른 이통사로 이동하지 못한다. 따라서 즉각적인 인하 효과도 없을 뿐더러, 이통사 간의 경쟁이 사라져 이동통신 시장도 얼어붙게 된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장기가입자 요금 인하' 방안은 이동통신 시장에서 사업자 간 경쟁 정책을 포기를 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라며 "방통위가 재판매제도(MVNO)를 통해 신규사업자의 진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이용자들의 상당수가 기존 이통사에 발이 묶여 있는데,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특히 KT는 신규나 기계변경 시 보조금을 받지 않는 이용자에게 요금을 할인하는 방안을 내놨다. SKT도 "보조금 지원 등 마케팅 경쟁 비용을 줄여서 요금 인하나 투자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방통위도 이통요금 인하 방안의 하나로 이용자가 보조금을 받지 않고 일정기간 약정하면 요금을 깎아주는 제도를 검토해 왔다.

 

하지만 보조금 지원은 이용자가 비싼 단말기를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자에게 요금 인하 못지않은 혜택을 준다. 보조금과 요금 인하를 연계시키는 것을 두고 '조삼모사'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용신 진보신당 기획실장은 "보조금 대신 요금 인하를 하겠다는 것은 이통사의 추가적인 부담이 전혀 없는 방안으로 '아랫돌 빼다 윗돌 괴는' 식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보조금을 없앨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집행되는 광고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이통3사는 무선데이터 요금 인하, 선불요금제 활성화, 청소년 요금제 개선, 유선부분 및 결합상품 요금 인하 방안 등을 내놨다. 이 가운데 선불요금제의 경우, 현행 10초당 58~65원을 48~49원 수준으로 인하했다. 그러나 인하 방안 역시 표준요금제(10초당 18원)보다 3배 정도 비싸고, 선불요금제 사용자 수가 적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통3사의 선불요금제 가입자는 90여 만 명으로 전체 이통가입자의 2%에도 못 미친다.

 

또한 시외요금을 전국 단일요금으로 통합해 시내요금과 동일한 수준으로 받겠다는 KT의 방안은 영업 전략으로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미 시내외 요금 구분이 없는 인터넷 전화가 유선전화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전략상 통일요금제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무선데이터 요금 인하 역시 지난 5년간 이통사의 데이터 통신 매출이 감소해 왔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기본료 인하, 문자메시지 무료 등 빠져... "생색내기 불과"

 

반면 시민단체 등에서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기본료 50% 인하'에 대해 방통위와 이통3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신용섭 방통위 통신정책국장은 "기본료를 일률적으로 인하하는 것보다는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요금 인하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이통3사도 "기본료를 인하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하지 않다"며 "요금 경쟁이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률적으로 요금을 인하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문자메시지(SMS) 요금 인하 방안이 빠진 것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5년 통신업계가 밝힌 문자메시지의 원가는 건당 2.472원에 불과했다. 최근 이통사들이 문자메시지 요금을 20원으로 인하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7~8배의 폭리를 취하고 있다.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은 "기본료 반값, 음성통화료 20% 이상 인하, SMS 무료화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만 실질적인 가계 통신비 부담 인하 효과가 있다"며 "그러한 시정 계획이 없는 통신요금 인하 방안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통요금 인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방통위의 부적절한 처신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규제당국인 방통위는 '현재 이통요금이 적정하냐 아니냐,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이냐'만 밝히면 된다"며 "방통위가 이통3사의 컨설팅회사도 아니고, 요금 방식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안된다. KT만 '쇼'를 하는 게 아니라, 방통위와 이통사들이 합작으로 '쇼'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 논란#SKT·KT·LGT#방송통신위원회#초당 과금제#기본료.문자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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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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