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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어집니다)

4. 아직 남은 문제, 체비지 변상금

수정마을
 수정마을
ⓒ 이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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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촌 이후를 꿈꾸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이번 판결로 비닐하우스촌의 환경은 좀 더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비닐하우스촌 이후를 계획하려는 이곳 주민들에게는 더 큰 고민이 있다. 대부분은 비닐하우스촌에 입주할 때 잠시 머물 생각으로 들어오지만 체비지 변상금 때문에 떠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체비지는 개발사업의 비용에 충당하기 위해서 국․공유로 남겨 놓는 토지를 말하는데, 대부분 빈터로 남아있기 때문에 수정마을처럼 비닐하우스촌이 많이 형성돼 있다.

정부는 이들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에 대해 변상금을 매년 부과하고 있으나, 주민들은 이러한 변상금을 감당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 그래서 매년 부과되는 변상금에 연체료까지 가산돼 변상금 액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정부도 이들의 사정을 감안해 해당 비닐하우스촌에서 거주하는 동안은 변상금 징수절차를 집행하지 않으나, 이들이 비닐하우스촌에서 이주하는 순간부터 그동안 누적된 변상금을 징수하기 위해 바로 압류 등의 절차를 진행한다.

그러나 이런 행정태도는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 이곳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행정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비닐하우스촌의 해소가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변상금의 전액을 면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처음에는 체비지 변상금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잠시 살려고 들어왔는데 1년 살고 나니 400만원짜리 고지서가 날아들더라구요. 처음엔 어쩔 줄 모르다가 다들 수천만 원의 변상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예전에는 집이 팔리지 않을까봐 이런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체비지 변상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감당할 수 있으면 들어오라고 처음부터 얘기해요."

체비지 변상금은 어떻게 부과되기 시작했을까. 맨 처음 수정마을이 생길 때부터 있던 것은 아니었다. 1992년부터 이때 생긴 법으로 인해 부과되기 시작했다. 거주자가 바뀌면 사람이 나와 체크하고, 체비지 위에 지어진 집의 크기에 따라 변상금을 부과한다. 평균적으로 1년에 두 번, 총 천만 원 정도 부과된다고 한다. 물론 이 금액은 해가 지나면서 누적된다.

수정마을의 경우 전체 1050평에 해당하는 총가구의 체비지 체납금은 약 70억에 달한다. 체비지 변상금을 합의 보지 못하고 마을을 떠난 사람이 있었는데 임대아파트에 가압류가 붙어서 살지 못하고 다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합의는 변상금을 없애는 수준까지 이루어져야 하며 서울시가 세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실질적으로 지급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왜 이런 부담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대안은 쉽지 않다. 한번 봐주기 시작하면 우후죽순 봐달라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며 반대하는 입장과 어차피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내지 않을 돈이니 부과해도 상관없는 것 아니냐는 안이한 행정태도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주민들의 현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비닐하우스촌을 떠나 새로운 삶을 계획하려는 사람들에게 정부는 공공개발을 통해 임대주택을 건설하고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에게 그 임대주택을 분양해 그들이 안정된 주거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비싼 보증금과 월세 문제와 더불어 체비지 변상금으로 인해 주민들은 이 제도를 꿈도 꾸지 못한다. 그들은 다시 비닐하우스촌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수정마을의 집을 비우면 6650만원을 융자받을 수 있는 제도를 정부가 마련해주었지만, 실질적으로 2000만원의 체비지 변상금이 밀려있는 상태에서 임대아파트로의 입주는 불가능해요. 분명 영구임대아파트와 융자는 좋은 제도이지만 체비지 변상금이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3000-6000만원 사이의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2000만원의 체비지 변상금을 물어야 한다면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어요. 차라리 융자금을 임대아파트로 거주할 수 있는 권한으로 전환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수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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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책임을 묻다

비닐하우스촌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은 단지 이들의 개인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없다. 무분별한 재개발로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 설 곳을 잃게 만든 정부, 그러한 정부의 재개발에 편승해서 집을 재산을 불리는 도구로 삼아 집값을 폭등시킨 다수의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때문에, 전입신고를 받아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사회가 흘려듣지 않았듯이 수정마을에 앞으로 남은 체비지 변상금 문제 역시 사회적, 정책적으로 풀어야 한다. '수정마을 주민들의 인권, 마을 주변 고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인권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상식,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주거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등히 누려야 할 권리 즉 인권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공감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비닐하우스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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