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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21일 오전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회 녹색구매세계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21일 오전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회 녹색구매세계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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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21일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제3회 녹색구매세계대회(아래 녹색구매대회) 개막식 기조연설의 초반 5분만 취재를 허용한 것은 너무 지나친 행동이며, 그런 식의 계약 체결도 잘못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주최 측인 제3회 녹색구매세계대회 조직위원회(아래 대회 조직위, 공동조직위원장 김용서 수원시장 등 9명)는 행사장 앞에서 기자들에게 'PRESS'라 적힌 증명서와 함께 '제3회 녹색구매 세계대회 개회식 취재 유의사항'이란 안내문을 나눠주었다

녹색구매세계대회 행사장 앞에서 나눠준 취재 유의사항
 녹색구매세계대회 행사장 앞에서 나눠준 취재 유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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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내문엔 '공지사항(앨고어 측)'이라며 ▲ 기조연설 시작 후(오전 10:30~10:35) 5분만 기자들을 위한 메시지 전달 ▲ 5분 동안 촬영 가능하며, 질문은 없음 ▲ 5분 후에는 모든 기자들은 퇴장 등의 조건이 담겼다. 또한 "위 요구사항 위배 시 여기에 따른 손해배상과 법적소송 등 제소요건에 해당됨이 통보되었음"이란 경고 문구도 들어 있다.

앨 고어의 기조연설을 앞두고도 여러 차례 '기자들은 5분간만 취재하고 퇴장해야 한다'는 안내 방송과 사회자의 설명이 계속 반복됐다.

"기다리시던 시간이 됐습니다. 5분 동안 주요 의제가 나오게 되고 취재를 제한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취재를 하면 뒤에 참관하시는 분들이 어렵고 불편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도 "강연 시작하시면 5분 뒤에 취재를 중지해 주시기 바란다"면서 "그 5분이 되는 시점은 제가 여기서 표시를 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 전 장관은 "전 세계적인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45대 부통령 앨 고어 부통령을 소개하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정말로 소개가 필요 없으신 분"이라면서도 출생부터 출신 학교와 정치 활동, 환경 운동, 언론사 경영, 저서, 노벨평화상 수상 등을 영어로 상세하게 소개했다.

주제 풀어내려는 순간 "취재 중지해 주세요, 퇴장하세요"

앨 고어의 기조연설 시작 5분 뒤, 기자들은 어두운 계단을 통해 행사장 밖으로 퇴장했다.
 앨 고어의 기조연설 시작 5분 뒤, 기자들은 어두운 계단을 통해 행사장 밖으로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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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장관의 소개를 받은 앨 고어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연단에 올라섰다. 앨 고어는 행사 주최 측과 여러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뒤,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당에서 겪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한 여성이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지나간 뒤, 조금 있다가 다시 한번 유심히 쳐다보면서 지나가기에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했더니 그 여성이 '앨 고어하고 참 많이 닮으셨네요'하고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미국 정치인들이 연설 초반에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였으나, 앨 고어의 말을 듣고 웃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앨 고어는 "기후 환경에 대해 우리가 노력하고자 하는 진정한 뜻은 바로 기후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알면 알수록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과거와 전혀 다른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나는 중"이라고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어 앨 고어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가끔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보는 것과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며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고 기후 변화에 둔감한 현실을 꼬집었다.

인사말과 우스개에 이어 앨 고어가 기조연설의 주제들을 막 풀어내려는 순간,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은 기자들에게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5분이 다 된 것이다.

"자, 이제 사진 그만 찍고 나가 주세요."
"취재를 중지해 주세요, 퇴장하셔야 됩니다."

기자들은 카메라와 삼각대, 노트북 따위의 취재 장비를 챙겨 어두운 계단을 올라 행사장 밖으로 '퇴장'했다. 사진기자들은 그나마 연설 장면을 찍었으니 별 문제가 없지만 펜기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연설문조차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조직위와 계약이 체결돼 기사에 담을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지역 A 일보 기자는 "5분 동안 취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더니 도대체 뭘 가지고 기사를 쓰라는 거냐"면서 "이 정도로 될 줄 알았으면 아예 취재 거부를 했어야 하는 거였다"고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B 신문 기자는 "차라리 호텔 방에서 아는 사람 몇 명만 불러 놓고 얘기하지, 뭐 하러 기조연설을 한다고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이런 건 기사에서 까(비판)버려야 하는데, 쓰지 말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행사장 밖으로 나오면서도 통역기를 귀에 달고 있던 한 기자가 "어, 밖에 나와도 통역기로 뭔 얘기 하는지 다 들리는데 이걸 듣고 쓸까" 하자, 옆에 있던 다른 기자는 "그러다 손해배상 소송당하면 어쩌려고"하며 만류하기도 했다.

조직위 사무국장 "앨 고어 쪽에서 그렇게 해야만 온다고 강하게 요구"

사진기자들은 황당한 상황이라면서도 그나마 연설 장면을 찍었으니 별 문제 없어했지만 펜기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사진기자들은 황당한 상황이라면서도 그나마 연설 장면을 찍었으니 별 문제 없어했지만 펜기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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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개막식 전날인 19일 수원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앨 고어 쪽에서 계약사를 통해 기조연설 초반 5분 동안 기사 쓸 수 있는 메시지를 다 줄 테니 기자들을 퇴장시켜 달라고 요구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또한 계약 내용과 과정에 대해 황용원 녹색구매대회 조직위 사무국장(수원YMCA사무총장)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전체 연설에 대해 사진 찍고, 기사 쓰고, 녹화하는 걸 못하도록 계약이 체결이 됐다"면서 "그 쪽(앨 고어)에서 그렇게 해야만 온다고 강하게 요구했다"고 털어놨다.

황 사무국장은 "왜 그런지 확인해 봤더니 다른 제3세계국가에 갔을 때 (연설 내용을) 다 녹화해 다른 데 써먹어서 피해를 많이 봤다고 했다"면서 "그래서 5분 동안만 기자들에게 공개하더라도 녹색구매를 알리는 데 오시게 하는 게 좋다고 판단해 그렇게 계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계약 조건에 대해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이주현 공동대표는 "녹색구매라는 게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기후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인데, 연설문도 공개하지 않고 언론 취재도 지나치게 제한한 것은 옳지 않은 처사"라면서 "앨 고어 쪽에서 그런 식의 계약조건을 내건 것도 문제지만, 유명인사 초청에 급급해 그런 조건을 받아들인 것도 정말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수원시민신문(www.urisu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앨 고어, #녹색구매세게대회, #녹색구매, #기후변화, #수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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