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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27일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서 닷새째 '언론악법 원천무효를 위한 2만배 참회와 정진' 기도를 올리고 있는 최문순 민주당 의원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27일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서 닷새째 '언론악법 원천무효를 위한 2만배 참회와 정진' 기도를 올리고 있는 최문순 민주당 의원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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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부처님이 자비를 내리실 겁니다."

'언론법 권한쟁의사건'의 헌재 선고공판을 이틀 앞둔 27일 오후 서울 강북구 화계사 대웅전 앞.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오십대 여성이 천정배 의원에게 다가가 눈물을 훔쳤다. 부처님이 반드시 공덕을 베푸실 거라고 위무하면서. 그러자 천 의원이 입술을 뗐다.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이 사건을 무효라고 할지 상상이 안 됩니다. 물론 신행정수도 위헌판결처럼 관습헌법 운운하며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판결도 있습니다만, 설마 그렇게야 되겠습니까. 저희들이야 그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지만."

천 의원은 깊은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명색이 법무부장관까지 한 정치인인데 헌법재판소가 상상초월 판결을 해버린다면 그걸 후대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적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87년 민주항쟁의 결실로 탄생한 헌법재판소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춤춘다면 과연 그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인가 골몰하는 것 같았다.

벌써 98일째다. 7월 22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 뒤 의원직을 버리고 거리에서 뛴 시간들이. 날마다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 서명을 받았고, 민생포차를 밀며 거리를 뛰었다.

얼굴에 고양이 그림을 그리고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도 했고, 헌법재판소의 바른 결정을 촉구하는 노숙농성도 벌였다. 점잖은 체면이지만, 거리정치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그의 말마따나 최선을 다했다.

# 장면2.

"이틀 하면 계시가 온다는데, 왜 나는 화만 나는 걸까?"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27일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서 닷새째 '언론악법 원천무효를 위한 2만배 참회와 정진' 기도를 하고 있다.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27일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서 닷새째 '언론악법 원천무효를 위한 2만배 참회와 정진' 기도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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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닷새째다.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린 지. 최문순 의원이 어깨에 걸고 있는 밝은 초록빛깔 수건은 땀이 묻어나면서 점차 짙은 초록으로 바뀌어갔다. 무릎이 저리고 다리가 뻐근한 상태. 처음엔 기어다니면서 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계단을 내려갈 때 거동은 불편해 보였다. 1만2천배로 평소 안 쓰던 근육이 뭉쳤으니 그 다리가 성할 턱이 있겠나. 

절도 수행인데 올릴 때마다 화가 났다. 남들은 부처님의 계시가 내렸느냐, 헌재가 어떤 결정을 할 것 같으냐 묻지만 답이 안 나온다.

스님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의 '참 나'를 찾으라고 하지만 7월 22일 미디어법 날치기 장면만 생각하면 어느새 가슴엔 불기둥이 치솟았다. 도대체 우리 국민이 어떻게 해서 일군 민주주의인데 이걸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려고 하나, 한나라당이 미운 그 마음은 도무지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해탈이 안 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만 나흘만에 1만배를 올린 최문순 의원을 천정배 의원이 찾아갔다. '미디어법 사태'로 거의 '형제지간'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돼 버린 두 남자는 가을단풍이 곱게 물든 화계사 회주실에서 조용한 만남을 가졌다.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엉터리 판결을 해 버리면 위상이 많이 흔들리겠지요. 신행정수도 이전 때처럼 관습헌법 운운하는 것은 오만하고 독재적인 발상이거든요. 그런 판결은 내 머릿속에 헌법이 들어 있다 이런 것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얘기를 더는 못할 텐데."

천 의원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언론법 날치기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자행한 불법, 재투표, 대리투표, 사전투표는 이미 국민들이 TV 화면을 통해 다 봤습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이를 무효로 결정하지 않을 다른 도리가 없어 보입니다.

이 상황에서도 헌법재판소가 언론악법을 정당화 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헌재 자체의 존재이유를 국민들이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민 스스로 나서 저항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고, 상당히 불행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뭐, 이미 이 시간, 헌법재판소는 다 결정해 놓았을 테고 우리는 조용히 그 발표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거지요. 이미 뱃속에선 아들, 딸이 다 정해진 상태인데 나올 때까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를 위한 2만배 참회와 정진' 기도중인 최문순 의원이 지지방문 온 천정배 의원과 얘기를 나누며 화계사 앞뜰을 걷고 있다.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를 위한 2만배 참회와 정진' 기도중인 최문순 의원이 지지방문 온 천정배 의원과 얘기를 나누며 화계사 앞뜰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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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산책, 릴레이 108배, 그리고 종이비행기

최문순 의원도 거들었다. 최 의원은 "7월 22일 국회에서 벌어진 대리투표, 재투표, 사전투표 문제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하면 국회가 과연 필요한 걸까"라고 의문을 표한 뒤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한 건데 헌법재판소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결정해 버리면 그땐 대응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지금 우리는 변곡점에 놓인 상태"라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올바르지 못할 때는 국민적 저항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냐"고 별렀다.

최문순 의원이 화계사에서 2만1천배를 목표로 절을 올리는 동안 서울 종로구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1만배 정진을 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22일 500배, 23일 1천배, 24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는 1500배를 올렸다. 총 3천배를 마쳤다. 뿐만 아니라 28일 오전 10시부터 29일 오전 10시까지는 24시간 절을 올려 일만배를 마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헌재 앞에서 절을 올리는 최 위원장에게 지나가던 시민들은 음료를 건네며 응원했고, 일부 차량은 경적을 울리며 격려했다. 최 위원장은 언론노조 홈페이지를 통해 "헌법 재판소의 바른 판결과 함께 국민, 민주주의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며 "언론악법은 시행 돼서는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 선고(29일 예상)를 앞두고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헌법재판소의 바른 결정을 촉구하는 1만배를 하고 있다.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 선고(29일 예상)를 앞두고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헌법재판소의 바른 결정을 촉구하는 1만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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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언론법 권한쟁의' 유무효 결정이 내려지는 헌법재판소 앞엔 전날부터 촛불세력들이 모여들 것으로 보인다. '언론악법 원천무효 언론장악 저지 100일 행동'은 28일 오후 6시 30분부터 '촛불산책' 1인 시위, 릴레이 108배 등을 계획하고 있다. 시민들이 모여 밤새 종이학과 종이비행기를 접고 29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의 선고결정이 내려지면 이때 이것들을 모두 날린다는 계획이다.

7월 22일 한나라당의 언론법 강행처리 뒤로 날짜를 역산하면 29일은 꼭 100일째 되는 날이다. 천정배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일식이 있던 낮, 한나라당이 국회를 유린하고 이 땅에서 민주주의의 빛을 살라먹었다"며 "국회에서 민주주의가 강탈된 지 100일째 되는 29일 헌재는 이 땅의 빛과 어둠을 가를 역사적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법률적 지식과 양심대로만 판결해달라"며 "재투표가 합법이면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서 일사부재의 원칙을 삭제하라 명령하시라, 대리투표가 합법이면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대리투표를 허용하시라"고 역설했다.

언론법 원천무효를 위한 갖가지 행동이 만발하는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29일 어떤 선고를 내릴까. 하늘은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실까.


태그:#언론법 권한쟁의, #최문순, #천정배, #최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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