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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포에 수를 놓는 바이족 여인들. 한 장의 자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2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면포에 수를 놓는 바이족 여인들. 한 장의 자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2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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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을 생산하는 저우청의 한 농가. 자란은 집안에서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진다.
 자란을 생산하는 저우청의 한 농가. 자란은 집안에서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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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白)족은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가장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지닌 민족 중 하나다. 지금으로부터 4000여년 전 신석기시대 바이족의 선조는 윈난(雲南)성 얼하이(洱海)를 중심으로 집거 생활을 했다. 주로 농경과 어업 활동에 종사하면서 전국시대 초나라와 교류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한나라와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분산과 통합을 거듭하여 당나라 초기에 선조격이 되는 육조(六詔)를 형성했다. 육조는 지금의 다리(大理)자치주 일대에서 흥기한 여섯 개의 강대한 부족을 일컫는다. 육조는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성장했다.

8세기 초 다리에 새로운 풍운이 일어났다. 남조(南詔)의 지도자 몽사조(蒙舍詔)가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육조를 차례로 통합해 나간 것이다. 737년 바이족의 첫 통일왕조인 남조(南詔)국이 건국됐다. 남조국의 영향력은 다리를 중심으로 윈난 대부분에 미쳤다.

902년 남조가 멸망했지만 937년 또 다른 바이족의 나라 대리국이 들어섰다. 대리는 송나라와 대응한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13세기 중엽까지 번영했다.

세계제국 몽골의 침략으로 무너지기 전 대리는 중국에서 버마, 인도까지 이어지는 남부 실크로드를 장악했다. 남조와 대리가 500여년 동안 지속되면서 바이족은 통일된 언어와 문화를 지닌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했다.

오늘날 중국 내 바이족의 인구는 190여만 명으로, 이 중 80%는 다리에 살고 있다. 일부는 쓰촨(四川), 구이저우(貴州), 후난(湖南)에 흩어져 거주한다. 바이족은 티베트·버마어계에 속하는 언어를 구사한다. 과거에는 독자적인 문자도 지녔지만 지금은 한자를 사용한다.

다리에 거주하는 바이족의 95% 이상은 자신의 언어를 구사하며 민족 구성원끼리는 바이족어로만 대화한다. 바이족어는 크게 남부, 중부, 북부 3개의 방언으로 나뉘지만 기본적인 의사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하얀 기석을 본주로 모시는 한 사당. 본주는 자연 사물에서 민족 영웅까지 다양하다.
 하얀 기석을 본주로 모시는 한 사당. 본주는 자연 사물에서 민족 영웅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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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고성 내에 있는 한 성당. 바이족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포용해 발전시킨다.
 다리고성 내에 있는 한 성당. 바이족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포용해 발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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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족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金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설 <사조영웅전>의 남제 단황야가 대표적이다. 단황야는 동사 황약사, 서독 구양봉, 북개 홍칠공, 중신통 왕중양 등 중원 5대 고수 중 한 명이다.

본래 대리국 황제였던 단황야는 불가에 귀의한 승려다. 대리의 절대 신공인 '일양지'를 구사하고 선이 굵은 성격이다. 다리에는 유독 단씨가 많은데, 적지 않은 이들이 대리 황실의 후손일 것이다. 대리국은 사라졌지만 그 유산은 다리 곳곳에 남아있다. 다리에는 대리 황제와 대장군을 모시는 본주 사당이 많다. 본주는 바이족의 전통 신앙으로, 한 마을이나 지역의 수호신이다.

본주로 모셔지는 신은 다양하다. 하얀 돌, 황소와 같은 자연 사물에서 민족을 구한 영웅까지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대상은 다르지만 모두 평등한 신격을 가진 점이 특이하다. 모든 본주는 각 마을 어귀에 세워진 사당에 모셔져 있다. 다른 신들과 달리 본주는 자신을 받드는 바이족의 곁에서 마을에 함께 산다.

바이족도 좋은 일이 일어나고 나쁜 일이 생겨도 본주를 찾아간다. 본주는 마을 주민들의 대소사에 귀를 기울인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바이족의 일상은 본주와 연결되어 있다. 바이족은 본주를 절대절능의 신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감정을 가진 존재라고 믿는다. 본주끼리 사랑에 빠지고 기분이 상하면 토라지거나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이러한 본주에 대한 믿음은 바이족의 심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바이족은 성격이 너그럽고 온화하다. 다른 민족과 이문화에 대한 포용성도 크다. 다리에는 본주를 믿는 노년층과 라마불교를 신봉하는 중년층, 기독교를 받아들인 청년층이 혼재되어 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품에 담아 독특한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바로 바이족이다.

면포에 있는 이물질을 빼기 위해서는 이틀동안 물에 담아 놓아야 한다.
 면포에 있는 이물질을 빼기 위해서는 이틀동안 물에 담아 놓아야 한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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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물질이 빠진 면포는 탈수기로 물기를 뺀다.
 이물질이 빠진 면포는 탈수기로 물기를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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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족은 손재주가 뛰어나 다양한 상품을 생산한다. 당나라 때부터 채굴되어 지금도 생산하는 대리석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다리라는 이름도 대리석이 많이 난다고 해서 한족이 붙였다. 다리에서는 30여개의 광구에서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대리석을 생산하고 있다.

다리에서 손꼽히는 또 다른 특산물은 '자란'(扎染)이다. 자란은 바이족의 대표적인 수공예품으로, 천연 염료로 색깔을 넣어 만든 면포다. 자란의 역사는 대략 명나라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부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된 염색 기술은 바이족의 손기술과 창의력이 더해지면서 독특한 민속공예품을 낳았다.

다리에서 자란이 발달한 이유는 염색 원료인 식물 반란건(板藍根)이 창산(蒼山)에 많이 자생하는데다, 제작과정에 필요한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면포에 쓰일 재료도 구하기 쉬워 자란 생산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다리 내에서 자란을 생산하는 주산지는 시저우(喜洲)진 저우청(周城)촌이다. 저우청촌은 다리 최대의 바이족 집거지로, 전체 인구는 8300여명에 달한다. 저우청에 들어서면 마을 중앙에 거대한 두 그루의 반얀나무가 여행객을 맞는다. 이미 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나무는 저우청과 인고의 세월을 함께 해온 마을의 수호신이다.

나무 뒤 마을 광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한편에는 100여년이나 된 작은 무대가 있고 중앙에서는 날마다 장이 열린다. 바이족의 중요한 민족 행사가 있는 날이면 광장은 장터에서 주민들의 회합 장소이자 공연장으로 바뀐다.

저우청 부근에는 아름다운 샘 후뎨취안(蝴蝶泉)이 있다. 후뎨취안은 나비의 천국이다. 수백 종의 나비가 후뎨취안을 중심으로 날아다닌다. 후뎨취안의 나비는 저우청 주민들이 자란을 디자인하는 데에 있어 빠지지 않는 상상력의 원천이다.

면포를 염색할 염료를 휘젖는 바이족 중년남성. 염료는 10일 이상 숙성시켜야 고운 빛깔을 낼 수 있다.
 면포를 염색할 염료를 휘젖는 바이족 중년남성. 염료는 10일 이상 숙성시켜야 고운 빛깔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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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포에 꽃 문양을 넣는 바이족 여인들. 자란에 들어가는 문양은 다리과 바이족을 상징하는 자연, 동식물 등이다.
 면포에 꽃 문양을 넣는 바이족 여인들. 자란에 들어가는 문양은 다리과 바이족을 상징하는 자연, 동식물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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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을 만드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간다. 먼저 염색하는 원료인 반란건을 창산에 올라가 따온다. 반란건의 잎을 빠서 즙을 내 염료를 만든다. 염료는 바로 쓰지 못하고 10일 이상 숙성시킨다. 일정한 기간 이상 숙성해야 고운 빛깔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란의 기본 재료가 되는 면포(綿布)는 목화로부터 얻어진 면으로 짠 직물이다. 얼마 전까지 저우청에서는 윈난성 각지에서 들어온 면을 전통기기를 통해 직접 짜서 면포를 만들었다. 면포는 땀과 수분을 잘 흡수하며 촉감도 좋다.

면포를 만든 뒤에는 이틀 동안 물에 담가 이물질과 독성을 제거한다. 정화된 면포는 탈수기를 통해 물을 뺀 뒤 그늘 아래 펴서 말려고 문양을 넣는다. 자란에 들어가는 문양은 용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주로 다리와 바이족을 상징하는 자연, 동식물, 종교적 기호 등을 넣는다.

문양이 그려지면 부녀자들이 일일이 실로 문양 선을 꿰맨다. 단순 작업이지만 손이 많이 가서 한 장에 보통 이틀의 시간이 소요된다. 문양을 모두 꿰맨 면포는 본격적으로 염색 과정에 들어간다. 보통 한 통의 염료에 여러 장의 면포를 한꺼번에 넣는데, 반나절 정도 담가 넣어 물들인다.

면포 곳곳이 잘 물들어지면 염료통에서 꺼내 물로 세척한다. 이를 다시 탈수기에 넣어 돌린다. 물이 빠진 자란은 우선 집 처마 밑에 놓아 말리고 다시 문양을 꿰맨 실을 하나하나씩 풀어낸다. 이런 복잡한 과정이 끝나서야 한 장의 자란이 완성된다. 완성된 자란도 마지막으로 물로 면포를 풀어준 뒤 그늘에 말려서야 최종 상품이 되어 시장에 선보일 수 있다.

많은 사람의 노력과 정성에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 한 장의 자란이 탄생하지만, 그 노동의 대가를 그지 않다. 시장에서 팔리는 자란 한 장 가격은 가로×세로 2m가 15~20위안(한화 약 2550~3400원)에 불과하다.

문양을 만들기 위해 면포에 수놓은 실은 염색이 끝난 뒤 일일이 손으로 뽑아낸다.
 문양을 만들기 위해 면포에 수놓은 실은 염색이 끝난 뒤 일일이 손으로 뽑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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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팔려나가기 전 농가의 한 방에 쌓아놓은 자란 상품.
 시장에 팔려나가기 전 농가의 한 방에 쌓아놓은 자란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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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가격에 팔려나가는 자란이지만, 그 문화적 가치는 엄청나다. 오늘날 중국에서 천연 염료로 면포를 염색해서 옷, 침구, 장식품 등을 만드는 방식은 자란이 유일하다. 염색 원료에 반란건을 사용하는 것도 바이족만의 특수 기술이다. 바이족에게 염색 기술을 전수한 한족조차 반란건은 원료로 사용하지는 못했다. 중국정부도 이런 바이족의 자란을 높이 평가해, 2006년 중국 무형문화유산 1호로 등재됐다.

지금도 저우청에서 자란은 일상생활에 있어 기본적인 가정용품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자란을 장식용으로만 쓰고 있지만, 저우청 주민들은 여전히 자란으로 옷, 침구 등을 만들어 사용한다. 다리 최대 자란 생산지답게 저우청의 10가구 중 한 가구는 자란 공방이고, 5가구 중 한 가구에는 자란 생산과 관련된 장인이 있을 정도다. 전통 사합원 가옥 마당에 짙푸른 면포가 날리면 자란을 만드는 공방임이 틀림없다.

저우청촌에서 다리고성으로 되돌아올 즈음이면 어느덧 날은 어두워져 있다. 고성 밖 주위는 어둠이 깔렸지만, 고성 안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불빛으로 불야성이 이룬다. 특히 식당, 카페, 술집이 몰려 있는 '양런제'(洋人街)는 낮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양런제의 원래 명칭은 후궈루(護國路)다. 1910년대 위안스카이(袁世凱)가 공화제를 폐지하고 황제로 옹립하려 하자, 윈난 주민들은 이에 반대하는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후궈루는 다리에서 일어난 시위를 기념하여 길 이름을 지었다.

후궈루가 양런제라 바뀐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후궈루 일대에 서구인들이 식당이나 가게를 열어 정착했는데 미국과 유럽의 여행자들도 자연스럽게 몰려들었다.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식당, 술집, 상점 등도 하나둘씩 늘어났고 해외 유명 가이드북에 후궈루가 서양인의 거리로 소개되며 양런제로 불리게 됐다.

양런제의 노천카페에 앉자 맛있는 음식을 맛보며 여행의 피로를 푸는 것은 다리에서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다리고성의 카페거리 양런제. 서구 유명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중국인에게도 유명세를 탄 곳이다.
 다리고성의 카페거리 양런제. 서구 유명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중국인에게도 유명세를 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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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런제는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한 거리다.
 양런제는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한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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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Tip

다리고성에서 저우청에 가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고성에서 출발해 저우청까지 가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고성에서 저우청까지는 18㎞로, 약 30분이 걸린다. 버스비는 3~4위안(약 510~680원)이다.

둘째는 자전거를 렌틀해 얼하이, 후뎨취안, 저우청 등지를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다. 고성 내에는 자전거를 렌틀하는 가게가 여러 곳 있다. 하루 렌틀비는 종류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20~30위안(약 3400~5100원)이다. 렌틀시 일정액의 보증금을 내고 사용한 뒤 되돌려 받는다.

셋째는 자동차를 렌틀해 다리고성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이다. 고성 남문 앞에는 렌틀할 수 있는 차량과 기사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하루 렌틀비는 다리 일대만을 둘러보는 것을 전제로 200~250위안(약 3만4000원~4만2500원)이다.

자란을 구입할 때는 흥정을 잘 해야 한다. 저우청 도로변 상점에서는 외국인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흔하기 때문이다. 자란의 시장 가격은 비싸지 않다. 크고 문양이 화려한 제품도 100위안 이상을 넘지 않는다.

단, 가격을 너무 후려쳐 사기 보다는 자란을 만드는 공방의 참관을 전제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 좋다. 보통 공방 장인의 가족이 직접 가게를 운영하기에 말만 잘 통하면 자란 만드는 세세한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중국, #윈난, #백족, #바이족, #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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