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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들의 기도에 쓰이는 묵주. 불교에서 사용하는 염주와 비슷하다.
 무슬림들의 기도에 쓰이는 묵주. 불교에서 사용하는 염주와 비슷하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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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에 체라그 인근 시장에 있는 차도르 가게.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차도르 가게보다는 머플러가게가 많았는데 이곳 쉬라즈와 샤에 체라그는 굉장히 종교적인 분위기라서 그런지 차도르 가게가 있었다. 이 차도르는 평소에 쓰고 다니는 게 아니라 모스크에서 기도할 때만 쓰는 차도르다.
 샤에 체라그 인근 시장에 있는 차도르 가게.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차도르 가게보다는 머플러가게가 많았는데 이곳 쉬라즈와 샤에 체라그는 굉장히 종교적인 분위기라서 그런지 차도르 가게가 있었다. 이 차도르는 평소에 쓰고 다니는 게 아니라 모스크에서 기도할 때만 쓰는 차도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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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칸 성을 나와 '샤에 체라그'라는 모스크를 향해 걷고 있는 거리엔 온통 젊은 남자들뿐이었습니다. 여자라고는 정말 작은 애와 나, 둘 뿐이었습니다. 거기다 거리엔 어느덧 어스름이 내리고 가로등엔 불빛이 하나씩 들어왔습니다.

테헤란에서도 밤늦은 시간에는 여자들은 잘 안 돌아다니는데 이곳 쉬라즈는 더 심했습니다. 우리가 걷는 시간이 초저녁인데도 거리엔 여자라고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남자들이 몰려와서 놀리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바삐 걷고 있을 때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까만 차도르를 걸치고 등이 살짝 굽은 할머니는 바싹 마른 몸매였는데, <백설공주>에서 왕비가 사과 파는 할머니로 분장했을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빨이 빠져서 오목한 입과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광대뼈, 검은 차도르가 그런 이미지를 주었습니다.

할머니에게 손가락으로 우리가 갈 방향을 가리키며 "샤에 체라그"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 외모만큼이나 특이한 스타일이었습니다. 우리를 외국인이 아니고 이란인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아주 빠른 이란어로 강한 악센트를 섞어서 열심히 샤에 체라그 가는 길을 설명했습니다.

이란어가 대체로 충청도 사투리처럼 느긋한 편인데 이 할머니가 구사하는 이란어는 경상도 사투리처럼 강한 악센트였습니다. 상대가 알아듣건 말던 자신의 강한 악센트로 정말 열심히 길을 가르쳐주었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어서 그냥 멍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할머니에게서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또 무작정 걸었습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꽤 난감해하면서 한참 걷고 있을 때 쉬라즈의 번화가가 나오고 시장이 나왔습니다. 시장으로 들어오니까 여자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샤에 체라그를 물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샤에 체라그는 우리가 현재 있는 곳에서 아주 가까이 있었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막연하게 걸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찾아온 것입니다.

샤에 체라그 가까이 오니까 기도에 쓰이는 묵주를 파는 가게들이 많았습니다. 나무로 된 묵주도 있고, 빨간 구슬로 장식한 묵주도 있었습니다. 길을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묵주를 돌리면서 걷고 있는 걸 봤는데 이렇게 묵주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는 이곳 샤에 체라그에서 처음 봤습니다. 그만큼 샤에 체라그가 종교적인 곳이고, 지금까지 본 이란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이란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본 이란은 종교적인 모습의 이란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일상적인 모습의 이란이었습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압바스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에서 봤던 순수하고 소박하고 친절한 모습의 이란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이 이란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분명 이란에는 CNN에서 보여줬던 무슬림의 광신적인 모습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샤에 체라그로 다가갈수록  광신적인 이란을 볼지도 모른다는 그런 설렘이 느껴졌습니다.

묵주 가게도 묵주 가게지만 샤에 체라그 가까이 오자 엄청나게 불어난 인파와 이상한 열기가 그런 기분을 북돋았습니다.

마침내 샤에 체라그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도착하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의 분위기가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지붕이고, 돔이고 벽면이고 온통 유리로 장식한 샤에 체라그는 화려한 조명을 내뿜고 있는데 그 입구가 엄청난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 열기가 이방인인 나를 좀 질리게 했습니다.

조명으로 빛나는 샤에 체라그와 엄청난 인파. 이란에서 단일 공간에 이렇게 인파가 많이 몰려있는 곳은 테헤란 바자르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또한 종교적 열정이 엄청났다.
 조명으로 빛나는 샤에 체라그와 엄청난 인파. 이란에서 단일 공간에 이렇게 인파가 많이 몰려있는 곳은 테헤란 바자르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또한 종교적 열정이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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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라즈  시내 전경. 도로에 남자들 뿐이다. 또한 가게들도 남자옷을 파는 가게들 뿐이어서 쉬라즈에 온 첫날 거리를 걸으면서 정말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쉬라즈 시내 전경. 도로에 남자들 뿐이다. 또한 가게들도 남자옷을 파는 가게들 뿐이어서 쉬라즈에 온 첫날 거리를 걸으면서 정말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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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를 더 겁먹게 한 것은 입구에서 몇 명의 남자와 여자들이 검문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샤에 체라그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무슬림만 들어갈 수 있으며 또 샤에 체라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희끄무레한 차도르를 구해서 뒤집어쓰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정문 옆 차도를 빌려주는 좁은 구멍 앞에는 여자들이 줄을 지어 있었습니다. 엄격한 절차를 걸쳐서 빌려야 하는 차도르도 문제고, 또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어가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순간 갈등했습니다. 솔직히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무슬림이 아니면서 무슬림이라고 속이고 샤에 체라그로 들어가려는 나 자신이 꼭 부잣집 보물을 훔치려고 담장 밖에 서있는 도둑처럼 여겨지면서 심장이 마구 방망이질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점심 때 숙소에서 나오기 전에 일행한테서 샤에 체라그를 다녀왔다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거기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습니다. 일행 중 한 선생님은 그때 쉽게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차도르만 빌려서 입고 들어가면 들어가는 데 문제가 없고, 혹 누가 무슬림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만 대답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난 그 선생님의 말을 상기하면서 공연히 겁먹을 필요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마침내 차도르를 빌리려고 다가갔습니다. 차도르를 빌려주는 여자는 내게 무슬림이냐고 물었습니다. 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내게 다시 무슬림이냐고 물었습니다. 난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다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여자는 어딘가로 가면서 내게 따라오라고 말했습니다.

난 쿵쿵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그 여자는 그녀보다 더 나이가 지긋하고 엄격해 보이는 여자에게로 날 데려갔습니다. 그녀는 내게 다시 무슬림이냐고 물었습니다. 난 역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갸우뚱하더니 다시 나를 정문에서 빨간 야광막대기를 휘두르며 사람들을 통제하던 남자에게로 데려갔습니다. 그녀는 그 남자에게 뭐라고 이란어로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 여자가 무슬림이라고 우기긴 하는데 좀 이상하다 뭐 그런 걸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 남자는 나에게 영어로 뭐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난 많은 사람들과 이곳의 삼엄한 분위기에 질려서 좀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내게 'no' 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솔직히 난 그의 판결에 갑자기 홀가분해졌습니다. 이곳의 분위기에 겁먹고 있었는데 그가 공식적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니까 갈등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겁먹지 않아도 되기에 오히려 홀가분해졌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리로 나와서 샤에 체라그의 화려한 첨탑과 정문의 이상한 열기를 멀찍이서 지켜보려니 그곳에서 이란의 또 다른 모습을 놓쳤다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이란하면 지독한 신앙심인데 열광적인 종교분위기를 체험하고 싶은 욕심이 똬리를 틀었습니다.

절에 가면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절하는 기계라도 되는 것처럼 절을 하고 또 어떤 이는 목이 터져라 염불을 합니다. 그 열기가 대단합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다닌 교회에서는 기도하면서 우는 아줌마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교회는 기도를 소리를 내서 하는데 그 소리가 통곡과 우는 소리로 가득 찼던 것 같습니다. 종교마다 기도의 형태가 다른데 무슬림의 열정적인 종교장면을 놓쳤다는, 진정한 이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난 멀리서 샤에 체라그를 미련을 갖고 지켜봤습니다.

지금까지 우린 관광지 위주로 다녔고, 모스크를 방문했지만 우리가 방문한 모스크는 건물 구경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무슬림의 종교적 열정과 신앙심을 느끼기엔 많이 부족했지요. 그래서 샤에 체라그는 더욱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태그:#샤에체라그, #쉬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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