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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의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오는 11월 28일 전주에 온다! 창극의 본향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 이 '젊은 창극'이 겁 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판소리의 본고장에서 제대로 그 작품성을 평가받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이미 여러 곳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은 자신감으로 나 보란 듯 시위하려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이 지역에서도 창극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이를 통해 한국음악 전체의 위상도 강화시켰고 작품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이끌어 냈다.

 

하지만 아직도 그 가능성 부분에서는 큰 대중적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서양고전음악에 주눅 들고 대중음악에 기가 질려 주의 깊게 들어보지도 않고 재미가 없다, 지루하다,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등 한국음악에 대한 부정적 기운이 아직도 팽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공연에 큰 기대를 거는 것도 이를 통해 이 변할 줄 모르는 편향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반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등장은 분명 작지만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우리 시대의 창극' [청]이나 [적벽]이 이룩한 것에 못지않은 성취다. 우선 그 '단출함' 혹은 '기동성'을 높이 사고 싶다. '우리시대의 창극' 작품들은 국가 브랜드에 걸맞은 작품성과 볼거리를 분명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공연이 쉽지 않다. 어지간한 무대에는 올릴 수도 없고 예산 자체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것에 비해 이 '젊은 창극'은 적은 예산으로도 무대 규모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올릴 수 있다.

 

창극 [청]이나 [적벽]이 기왕의 판소리에 크게 기대고 있는 반면 이번 작품이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 태어났다는 점도 눈 여결 볼 대목이다. 기왕의 판소리 다섯 바탕에 의존할 경우 그 다양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세계 모든 고전의 창극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창극 [햄릿], 창극 [안티고네], 창극 [군도](群盜) 등 수많은 '젊은 창극'의 길을 활짝 열어준 것이다.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는 매우 단출하다.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되지만 소품들의 들락거림을 빼면 거의 변화가 없다. 이 밋밋함은 의도적인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한국화(化)를 시도하면서 무대를 그냥 들여올 수는 없는 일. 우리 전통 대동놀이마당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살렸다. 무대의 화려함에 기대기보다 창극 본래의 묘미로 승부하겠다는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볼거리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정작 음악이나 배우들의 연기는 묻혀버리고 마는, 요즘 유행하는 대형 뮤지컬과 다른 길을 선택한 오기만 해도 높이 살만한 것이다.

 

우리 소리의 보배 안숙선의 작창은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젊은 작곡자 이용탁의 음악도 무대의 단조로움으로 인한 따분함을 멀리 날려버렸다. 때로는 묵직한 아쟁으로, 때로는 처연한 해금으로, 그러다가 대금, 소금, 피리, 가야금, 거문고의 도움을 받아 원본에 꽤 충실한 대사와 창을 멋스럽게 받들어주고 있다.

 

우리의 전통음악을 통한 한국화를 시도하면서도 이 작품은 원전에 매우 충실하다. 그것을 시위라도 하는 냥 원전 자막을 우리말 자막과 병행하여 배치하고 있다. 원래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만 차용하고 나머지는 전체 흐름에 맡게 얼버무릴 수도 있을 텐데 그 쉽고 편한 길을 택하지 않는다.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번 공연은 분명 우리 지역에 큰 화두로 작용할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이 공연이 끝나면 한국음악 본고장으로서 이에 대한 화답을 해야 한다. 그것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많이들 찾아가 꼼꼼히 지켜봤으면 싶다. 그것 자체가 전통문화도시 주민으로서의 예의이기도 한 것이니. 우리 음악에 관심 있는 이들의 많은 성원과 관람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북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창극, #로미오와 줄리엣,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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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주를 가장 한국적인 도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마이유스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살기좋은 전주의 모습을 홍보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제가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보내주는 음악편지도 연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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