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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7명(송용운·정상용·윤여강·김윤주·박수영·설은주·최혜원)의 선생님이 서울행정법원 법정에 섰습니다. 꼭 1년 전 이날 이 선생님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해임통보서를 받았습니다. '일제고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린 게 징계 사유였습니다. 7명의 선생님은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고, 17일 결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2명의 선생님은 구두로, 5명의 선생님은 최후진술문을 낭독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2009년 마지막 날인 31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사전에 양해를 얻은 4명의 선생님의 최후진술문 전문을 싣습니다. 아이들 품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선생님들의 염원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편집자말]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왼쪽)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왼쪽)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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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새롭게 교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임된 학교는 살고 있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학교입니다. 매일 아침이 되면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을 듣게 되지요.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가끔은 그 소란스러움이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란스러움 마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며 저에게 교직이 어떤 의미였었나를 생각하게 해 준 것입니다.

교육을 논할 때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아이들입니다.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 해보다 안 되면 그만이지, 또는 분명히 그 폐해가 명백한 것임에도 소수의 이익을 위해 강행하는 것이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그중 일제고사는 과거 우리 교육을 황폐화 시키고 아이들의 창의성과 개성을 무시한 채 시험에만 매몰되어 성적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교육에 대한 반성으로 폐지 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도 그 일제고사에 허덕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적 비관으로 초등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그 나이를 불문하고 자신의 꿈을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 수많은 아이들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등장했던 그 시절을 말입니다.

검증 안 된 정책 차단은 교사의 임무

저는 교사가 된 이후 진정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10년의 교직생활을 통해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아이들과의 만남 하나 하나는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그리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뭔가 특별한 존재로서 자리 지워지지 않습니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를 떠나 아이들 하나 하나의 인격을 어루만지고 그 삶을 이해하며 함께 삶을 나누는 존재일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행위 하나가 그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혹시 그 아이를 아프게 하지나 않을 것인지, 그 아이의 앞으로의 삶에 어떤 긍정성 또는 부정성을 가지게 될 것인지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교사입니다.

하물며 검증되지 않는 정책 사안이 우리 아이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학교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한해를 마무리 하고 있어야 할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로 너무 참담한 기분이 듭니다.

제가 해임된 가장 중요한 사유 중 하나가 학부모와 학생의 일제고사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인정한 것인데, 일제고사에 대한 어떤 논의도 없고 사회적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되면서 가장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학생과 학부모입니다.

물론 교과부와 교육청은 일제고사 시행이 아이들의 성취도에 대한 측정과 보정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고사가 시행된 후 학생들에게 결과가 통보된 것은 12월이고 그에 따른 교육청의 약속은 하나도 이행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언론을 통해 지역별 비교를 통해 지역별, 학교별 서열을 공개된 것이 전부지요.

사회적 불평등 해소가 국가 책무 아닌가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는 지난해 12월 24일, 학교 안이 아닌 학교 밖에서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과 방학식을 했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는 지난해 12월 24일, 학교 안이 아닌 학교 밖에서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과 방학식을 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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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선생님들이 작년 일제고사 이후 불거진 학교별 파행을 말씀 하셨기에 그 처참함을 다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물론 저는 전국단위학업성취도평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수준에서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결과를 수집하고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그러나 전수방식이라면 다른 얘기가 됩니다.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데이터 수집의 목적은 전수방식이 아닌 표집방식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트럭에 가득 실려 있는 사과의 맛을 확인하기 위해서 전체 사과의 맛이 아닌 일부 샘플링을 통해 확인하면 되듯이 표집방식으로 성취도를 측정하고 그 대안 마련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수 방식이 되면 반드시 전국적 서열이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취도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변인은 부모의 경제적․사회적 위치라는 연구 결과가 교육학에서 상식입니다. 그것은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사회적, 문화적 경험이 좌우되고 학습에 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책무는 이런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여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게 해주는 것이지 시험을 통해 끊임없이 자존감을 해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시험문제 유형에 익숙해지고 시험문제 풀이 기계가 되는 것이 학력과는 무관하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도록, 사법정의 실현되길

마지막으로 교사는 교육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교사 맘대로 교육활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는 교육법과 교육과정에 위배 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에 대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책입안자들의 자의적인 결정과 법 해석에 의해 그저 침묵하고 굴종해야 한다면 교사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라 행정공무원이 되고 말 것입니다.

변론과정에서 본인의 행위가 교육과정과 법률에 위배되지 않았음을 충분히 밝혔기에 아이들과 더불어 인격적인 만남과 삶을 나누며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도록 사법적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재판장에서 얘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몰라 말이 길어졌습니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보다 행복한 교육 환경을 마련하는데 무엇이 우선해야 하는지 그리고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소중한 삶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정책들에 대해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합의를 말하는 교사가 문제 교사인지, 그리고 그로인해 학교 밖으로 쫓겨나야 되는지에 대한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구합니다.


태그:#해직교사, #일제고사, #최후진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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