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명박 대통령이 고려대 선배인데, 지금처럼 고려대에 다니는 게 부끄러운 적이 없다. 그리고 한승수 총리가 한 달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고 이 토론회장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아직도 국민들이 뭘 모르기 때문에 시위하는 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실망이다."

 

이렇게 한승수 총리를 앞에 두고 이야기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쉽게 물러나 적당하게 타협할 사람이 아니란 걸 말이다. 고려대 학생 김지윤씨가 위의 말로 한 전 총리를 당혹스럽게 한 게 벌써 1년 6개월 전 일이다. 김씨가 일명 '고대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2008년 6월이다.

 

수많은 스타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대한민국에서 김지윤씨는 분명 '과거의 여인'이다. 그런 김씨가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과의 소송에서 일부 승리했기 때문이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단독 이동욱 판사는 김씨가 주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주 의원은 김씨에게 7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판사는 "주 의원이 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고대녀'라고 불리는 김씨에 대해 '학교에서 제적당한 민주노동당 정치인'이라는 허위사실을 말해 김씨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를 저하시킨 만큼 김씨가 입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주 의원은 지난해 촛불정국 당시 MBC <100분 토론>에 나와 김씨에 대해 "고려대 학생이 아니고 학교에서 제적을 당한 민주노동당 당원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이 아닌 촛불 든 모든 시민의 승리"

 

김지윤씨는 2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판결은 나 개인이 아닌 명예를 훼손당한 모든 촛불의 승리라고 생각한다"며 "지난해 촛불을 들었던 모든 시민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시기에 아주 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작년 촛불 정국 이후 1년 6개월 동안 소송을 진행하며 힘들고 괴롭기도 했지만, 촛불 전체의 명예가 달린 일이라고 생각해 포기하지 않았다"며 "다른 누구보다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의 도움이 컸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씨는 "이번 재판으로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난 만큼 주 의원은 항소하는 대신에 촛불들에게 사과를 하는 게 순서"라며 "만약 주 의원이 항소를 한다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법정대결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씨는 "지난해 여름 소송을 제기하기 직전에 주 의원에게 연락이 와 한 번 통화 한 적은 있다"며 "그게 주 의원과의 마지막 나눈 이야기였고,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만약 주 의원이 사과를 해온다면 적절하게 합의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 개인이 아닌 촛불의 문제인 만큼 변호사와 주변 사람들과 논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김씨는 "주 의원이 사과를 할 것이란 기대는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김씨는 아직 고려대에 적을 두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후배다. 1년 동안 휴학을 했고 정치조직 '다함께'에서 발행하는 <레프트21>에서 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일명 '교수 감금 사태'로 고려대에서 출교조치를 당하기도 했던 김씨는 법원의 도움으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늘 법의 판단을 받고 또 승리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울 것"

 

김씨는 지난 5월 용산 철거민참사 관련 불법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이 문제 역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결국 김씨는 여전히 이 사회와 불화하며 싸우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앞으로도 부당한 일에는 맞서 싸울 생각이고, 그렇게 해야만 이 사회가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은 지난해 촛불정국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급격히 퇴조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촛불정국에서 누구보다 앞장서 "정권 퇴진 운동까지 벌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김씨는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용산참사 등 일련의 사건들 보면 분명 사회는 많이 퇴조했다. 하지만 전국공무원노조가 출범을 시도하고, 광장조례개정 운동이 벌어지는 등 찾아보면 좋은 일도 많이 있다. 작년 촛불 같은 뜨거운 분위기는 없지만, 민주주의는 결국 발전한다고 본다. 모두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나아갔으면 한다."

 

김씨는 내년 1학기에 고려대에 복학을 한다. 다시 진정한 '고대녀'의 자리로 돌아가는 셈이다. 주 의원과의 재판 결과가 알려진 뒤 <100분 토론>과 한승수 전 총리와의 토론 등이 담긴 김씨의 동영상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결국 주 의원이 다시 '고대녀'의 기를 팍팍 살려준 셈이다. 김씨는 "학교로 돌아가면 변함없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할 예정이다"며 "우선은 내 인생 최고의 크리스마스 된 이상 오늘(24일)과 내일은 신나게 놀고 다시 힘차게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고대녀의 새로운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태그:#고대녀, #주성영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