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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나 온천의 평범한 추억

백로장 호텔 로비의 심포지엄 소개 플래카드
 백로장 호텔 로비의 심포지엄 소개 플래카드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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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6시부터 대욕장의 문을 연다고 하니 오늘은 온천욕을 즐겨야겠다. 유카타로 갈아입고 욕장에 들어가니 우리 회원들이 보인다. 오늘 깨끗하게 목욕재계하고 여행을 즐길 생각들인 것 같다. 벌써 오늘이 일본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그런데 욕장에 들어가 보니 욕탕의 구조가 우리와 상당히 비슷하다. 마츠야마의 도고온천이나 후쿠시마의 이나와시로 온천에서 본 욕장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물의 온도나 성분도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일본에는 좋은 온천들이 많아 다마나 온천 정도는 축에도 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욕장을 나와 짐을 정리하고 아침식사를 하러 간다. 일본 측 회원들이 나와 벌써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같은 자리에 앉는다. 잠시 후 종업원들이 음식을 가져다준다. 언제나 보아도 깔끔한 음식이다. 음식이 좀 단 것을 제외하면 일본 음식은 항상 괜찮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과일과 샐러드를 조금 더 먹는다. 아침 8시에 호텔 로비에서 야스시로 시로 출발할 예정이니 시간이 많지 않다.

로비에 가니 일본 측 회원들이 벌써 차를 대기해 놓고 있다. 언제나처럼 오쿠라 회장, 다카기 선생이 나와 있고, 오늘 처음으로 혼묘지(本妙寺) 부주지인 이케가미(池上) 스님이 나와 있다. 이케가미 스님은 바쁜 일이 있어서인지 어제 저녁 2차 때부터 합류를 했다.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한 차에 우리 회원 두 명, 일본 회원 두 명이 타는 것으로 정해졌다. 나는 다카기 선생이 모는 차에 몸을 실었다.

구마모토의 남쪽 야스시로로 가는 길

큐슈 고속도로
 큐슈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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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에서 남쪽 야스시로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해안을 따라 우키(宇城)시를 거쳐 야스시로로 가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내륙으로 기쿠수이(菊水)까지 간 다음 큐슈 고속도로를 타고 야스시로로 가는 방법이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타기로 한다.

차는 기쿠치가와를 따라 상류로 올라간 다음 기쿠수이에서 고속도로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먼저 구마모토 방향으로 달린다. 다카기 선생이 운전을 아주 차분하게 한다. 중간 중간 중요한 문화유산이 있으면 우리에게 설명을 해준다. 그런데 일본어 외에는 하지를 못해 의사소통이 쉽지는 않다.

야스시로 박물관
 야스시로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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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쯤 지나자 야스시로 나들목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차는 서쪽에 있는 야스시로 박물관으로 향한다. 야스시로 시는 구마가와(球磨川)의 하류에 있는 해안도시이다. 이곳 야스시로 박물관에는 이번 심포지엄의 일본 측 회원인 이시하라 상과 도리츠 상이 학예연구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회원들을 이곳으로 초대한 것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멋진 건물이 우리를 반긴다. 한 눈에 봐도 새로운 개념의 건물이다. 건물뿐 아니라 앞의 잔디 조경도 일품이다. 이 박물관 역시 구마모토 아트폴리스(KAP)의 일환으로 1991년 만들어졌다고 한다. 설계는 이토 도오우(伊東豊雄: 1941-)가 했다.  

야스시로 박물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특별전시실의 불상 전시
 특별전시실의 불상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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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쿠라 회장이 우리를 박물관 안으로 안내한다. 마침 월요일이라 박물관은 휴관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시하라 상이 나와 우리를 안내한다. 먼저 2층 특별전시실로 간다. 야스시로 박물관은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에는 두 개의 상설전시실과 두 개의 수장고가 있다. 2층에는 특별전시실과 사무실 그리고 강의실이 있다.

오늘은 휴관일이기 때문에 우리만이 전시물을 볼 수 있다. 정말 우리 회원들만을 위한 특별전시 같았다. 2층 특별전시실에서는 '구마모토현 남부의 불상'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모두 53구의 부처님이 전시되어 있다. 헤이안 시대부터 가마쿠라 시대를 거쳐 무로마치 시대까지 다양한 모습의 목조불이 중심이다. 금동불은 한반도에서 전래된 것으로 단 두 점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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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의 금동탄생불
 고려초의 금동탄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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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 전시회를 보면서 야스시로 박물관은 하드웨어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인구 13만의 작은 도시에 이만한 박물관이 있는 것도 대단한데, 이 정도의 전시회를 열 수 있다니 일본의 높은 문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 불상들의 조각기법이나 채색기법이 남달라서 우리는 그 어떤 박물관에서 보다 많은 만족감을 느꼈다.

평생 볼 목조불상을 한 나절에 다 본 것 같다

나라시대 흥선사 폐사지 기와
 나라시대 흥선사 폐사지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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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시실 입구에는 나라시대 절에서 수습된 세 가지 종류의 기와가 전시되어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흥선사 폐사지 기와이다. 그리고 그 안으로 전시실 전체에 목조불이 가득하다. 가장 먼저 목조 비사문천입상이 눈에 들어온다. 비사문천은 사천왕 중 북방을 지키는 다문천의 별칭이다. 비사문천은 원적(怨敵)의 항복을 받아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전시실 입구에 배치한 것 같다. 비사문천은 갑옷을 입고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비사문천 옆으로는 여러 종류의 부처님들이 서 있다. 모두들 입상이다. 이들은 목조 11면관음보살입상, 목조 성관음보살입상, 목조 천수관음보살입상이다. 조각의 정교함에서는 천수관음이 앞서고, 채색에서는 성관음이 앞선다. 높이는 천수관음이 198.9㎝로 가장 크고 11면 관음이 103.3㎝로 가장 작다.

그 옆으로는 좀 더 소박한 목불 좌상과 입상이 보인다. 석가여래좌상, 약사여래입상 등으로 그냥 지나쳐도 좋을 것 같다. 석가여래는 삼매에 든 모습이고,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고와 번뇌를 치료해주려는 자세다.

성관음보살입상
 성관음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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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관음보살입상
 11면관음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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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의 눈길을 끈 부처님은 높이가 76.5㎝ 밖에 안 되는 또 다른 목조 성관음보살입상이다. 이 부처님의 조각은 너무나 정교하다. 받침대의 조각은 말할 것도 없고 연화대의 조각도 훌륭하다. 옷주름과 손에 든 꽃, 목에 건 장식과 화관 등 모두 섬세하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표정은 아주 자애로우며 여성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발에서 머리 위까지 부처님을 감싸고 있는 광배의 불꽃무늬는 정말 역동적이고 화려하다.

초록색 연꽃
 초록색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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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비슷한 크기(80.7㎝)의 목조 11면관음보살입상이 있는데 이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 불상의 초록색 연화대와 손에 든 초록색 연꽃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어째서 꽃이 초록색일까? 학예연구사인 이시하라 상에게 물어봐도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한다. 처음부터 그런 색은 아니었고 후세에 그렇게 채색되었을 것이라고만 말해준다.

전체적으로 부처님이 인간적이다. 가슴과 배의 모습도 우리 인간을 많이 닮았다. 13세기 가마쿠라 시대 우토(宇土)시 호족의 발원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가마쿠라 시대 우토지방에는 신불교 운동이 일어나 정토종 중심의 불교가 퍼졌기 때문이다.   

우리와 상당히 다른 부처님도 보인다

목조 보살형입상
 목조 보살형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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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옆으로는 색다른 부처님도 보인다. 목조 보살형입상 2구이다. 우리나라에서 보던 부처님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크기도 70㎝ 정도로 작을 뿐만 아니라 머리 위의 장식도 특이하다. 팔이 훼손되어 어떤 부처님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석가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로 상정해볼 수 있겠다.

또 재미있는 것은 목조 사리니보살의상이다. 여기서 의상(倚像)이란 의자에 앉은 모습이란 뜻이다. 사리니보살은 상당히 생소한 용어인데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목조 사리니보살의상
 목조 사리니보살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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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고국 야스시로군 희로기미(廣公)의 처가 771년 여아를 출산했다. 아이는 추하게 생겼으나 총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아이는 불심이 깊어 불법에 귀의 비구니승이 되었고 원성(猿聖)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때 함께 하던 두 비구승이 원성을 질시하다가 벌을 받아 죽게 되었다.

그리고 대안사의 스님 계명(戒明)이 히젠국의 안거 시 강사로 나서 설법하게 되었다. 이 설법을 듣던 원성이 계명과 논쟁을 벌이게 되었고, 논리적으로 계명을 물리치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계명을 사리니보살이라 불렀고 승속 구별 없이 불법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사리니보살의상은 그렇게 추한 모습이 아니다. 조금은 어린 듯하고 조금은 순박해 보인다. 머리에는 보자기(頭巾)를 둘러 어깨까지 걸쳤다.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다소곳한 모습이다. 이 보살은 13, 14세기 가마쿠라 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본 일본의 목조불상은 상호와 법의 그리고 자태가 우리의 모습과 비슷해서인지 상당히 친근한 느낌이 든다. 

덧붙이는 글 | 구마모토현 야스시로 시에 있는 야스시로박물관 홈페이지는 http://www.city.yatsushiro.kumamoto.jp/museum/ 이다.

구마모토는 큐슈의 중부에 있는 현으로 문화유산과 온천이 많은 곳이다. 이번 학술 심포지엄은 10월31일에서 11월2일까지 다마나, 야마가, 기쿠치로 대변되는 구마모토현 북부에서 열렸다. 그리고 답사는 다마나에서 구마모토를 거쳐 야스시로까지 남북으로 이어졌다. 심포지엄의 진행과정과 문화유산 답사 내용을 7-8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태그:#야스시로 박물관, #구마모토현 남부의 불상, #목조불상, #목조 성관음보살입상, #사리니보살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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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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