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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생선회는 궁합이 맞을까? 무형문화재인 송명섭 장인이 빚은 막걸리는 쌀과 누룩 외 일체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았다. 생선회를 안주로 하였다
 막걸리와 생선회는 궁합이 맞을까? 무형문화재인 송명섭 장인이 빚은 막걸리는 쌀과 누룩 외 일체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았다. 생선회를 안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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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맛을 보는데 있어 현대인보다는 옛사람들 미각이 한 수 위다. 왜 그런가 하면 옛날에는 참치뱃살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통살(아까미)만 먹고 지방이 많은 뱃살(오도로)은 모두 버렸다. 이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 끄덕 한다면 이 글은 여기서 맺어야 한다. 글이 계속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왜 뱃살보다 몸통 살을 즐긴 게 우월한 미각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나도 이 글을 쓰는 보람이 들지 않겠는가.

맛을 논하기에 앞서 인간 심리부터 열공해보자. 고백하건데 나에게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돈이 없어 지하철 무임승차를 하였던 경험이다. 그땐 정말 걸리면 어떡하나 가슴 떨리던 순간이었다. 헌데 이상한 건 말이지. 개찰구를 무사히 빠져 나오자 죄책감보다는 어떤 희열 같은 게 생겼다.(절대 따라하지는 말 것) 비록 나쁜 일이었지만 성공했다는 성취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 성취감은 금지된 것, 쉬운 일이 아니었을 때 더욱 크게 느껴진다. 반대로 얘기하면 쉬운 것에는 재미가 없다. 여자... 아니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자 다시 참치 얘기로 돌아가 보자. 미각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땐 참치 뱃살에 열광한다. 비싸고 맛있기 때문이다. 아마 회를 좋아한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참치 뱃살을 최고로 칠 것이다. 헌데 미각의 달인은 뱃살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입에 넣자마자 느껴지는 맛이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어 금세 지루해지고 만다. 쉽지 않은 맛, 남들이 느끼지 못한 소재에서 찾아 낸 맛의 묘미라. 그것은 참치뱃살의 어린애 같은 맛과 비교를 거부한다. 그래, 담백한 맛이 최고의 맛이라는 대미필담이 회자되는 것 아니겠는가.

참치뱃살을 먹지 않았기에 옛 사람들 미각이 더 고수라는 얘기는 실제 그렇다는 게 아니다. 하나의 상징성으로 예를 든 것 뿐이다. 그 만큼 흰살 생선에서 식감 외 감칠맛을 깨달았을 때, 회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갓 잡은 활어회를 논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마시라. 여기서 거론하는 횟감은 숙성을 거친 선어(사시미)를 말한다.

동부이촌동의 사시미 명소 모리스시

동부이촌동에서 수준을 보여주는 사시미집으로 '기꾸'와 '모리스시'를 꼽는다.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기꾸가 더 알려졌다. 모리스시보다 나아서 그런 건 아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블로그마케팅에서 한 발 앞서나간 게 주효한 것 같다. 나는 기꾸에서 스시는 입에 댔지만 사시미를 맛본 경험은 없다. 그러니 비교평가는 불가할 터. 허나 다른 블로거들 방문기를 통해서 짐작은 해볼 수 있다. 이 물에서 좀 놀다 보니 사진만 봐도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단계는 되었으니까. 기꾸가 더 다양하게(사시미감만 놓고 보자면) 나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 점을 먹더라도 제대로 된 것을 먹어야 맛이지 양이 많다고 만족하는 건 초보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모리스시에서 숙성의 정점을 경험한 후라 감히 이런 말도 한다. 기꾸가 비교적 젊은 취향이라면 모리스시는 좀 더 연륜이 있는 분들이 단골이라고. 또 이곳을 소개한 지인의 설명에 따르면 저명인사나 재력가들도 상당수 이용한다는 귀뜸이다. 그 말에 살짝 업소 수준이 미심쩍해진 것도 사실이다. 괜히 실속도 없으면서 가격만 센 것 아닌가 싶어서다. 하지만 그런 노파심은 기우에 불과했다. 1인 9만원(부과세 포함)에 정말 실속 있는 성찬을 즐겼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시미 1인분에 8~10만원대 가격이라면 최소한 자연산을 쓰는 게 도리다. 참돔만 해도 원가로 자연산은 1kg에 4만원 이상이지만 양식은 1만5000원대에 불과하다. 허나 양식을 가져다놓고 10만원대 가격을 받는 건 폭리나 다름없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양으로 들이대는 곳도 있다. 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소비자는 좋다고 하니 누구를 탓하랴.

사케와 홍어, 막걸리와 사시미

전북 정읍에서 생산되는 태인막걸리는 송명섭 장인의 작품이다. 아스팜탐이 들어가지 않아 감미가 거의 없는 게 특징이다. 첫맛은 다가오지 않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빠져드는 막걸리이다
 전북 정읍에서 생산되는 태인막걸리는 송명섭 장인의 작품이다. 아스팜탐이 들어가지 않아 감미가 거의 없는 게 특징이다. 첫맛은 다가오지 않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빠져드는 막걸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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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중반 정읍에서 송명섭 막걸리 명인을 만나고 곧바로 모리스시로 향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게 된 이유는 이곳 단골의 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모리스시가 더 낫다고 하는데, 인터넷에선 기꾸가 더 많이 알려져서 자기 미각이 틀린 건지 검증을 해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밥 한 번 사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간 건 아니다. 뒤이어 오너이자 부장인 백민현 세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의 마인드가 맘에 든 탓도 있다. 우럭을 횟감으로 인정치 않는다는 대목에서 나와 어떤 일치감을 느꼈다. 내 스스로도 우럭은 가장 선호하지 않는 횟감이니 말이다. 또, 흰살생선에 상당한 공력을 기울인다니 기대감이 꿈틀거릴 수밖에.

스시 카운터 예약석에 앉았다. 백민현 부장은 첫인상에서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소탈스러움이 묻어났다. 기꾸 부장이 차분하고 조용한 스타일이라면 백 부장은 살갑고 유머스럽다는 게 차이였다. 술은 정읍에서 가지고 온 송명섭 장인의 막걸리를 꺼냈다. 물론 양해를 구하고 나서다. 사시미와 막걸리, 부조화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송명섭 막걸리를 찾기 전까진 서로 궁합을 맞출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만 진작부터 사케와 홍어는 궁합을 맞춰 즐겨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다른 막걸리는 안 되지만 이 송명섭 막걸리는 회와 궁합을 맞출 수 있었을까. 첫째, 100% 쌀 막걸리이기 때문이다. 쌀 막걸리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급은 아니다. 정부미나 묵은쌀 내지는 수입쌀로 만든 쌀막걸리와 햅쌀로 빚은 쌀막걸리가 같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이 막걸리는 장인이 직접 농사지은 쌀로 빚었다. 그만큼 깨끗한 술이다.

둘째, 결정적으로 이 술에는 감미가 없다. 어느 막걸리에나 있는 아스팜탐이 들어있지 않아 쌀막걸리 특유의 감칠맛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기에 회의 맛을 해치지 않을 뿐 아니라 비린내 같은 건 싹 씻겨주는 역할을 한다. 설명이 길었다. 사시미와 잘 맞는 사케도 쌀술, 막걸리도 쌀술이다. 당연히 막걸리와 생선회가 궁합이 맞아야 정상이다. 허나 시중 막걸리들은 대부분 첨가물이 들어간 탓에 오리지널 쌀술이 아닌 이유로 궁합 맞추기가 쉽지 않다. 정읍에서 송명섭 명인에게 이 막걸리는 회와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자 단박에 "막걸리가 원래 생선회와 잘 맞습니다"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쌀 막걸리는 오리지널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송명섭 막걸리에 푹 빠져 있는 이유도 아직 순수한 맛을 잃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주창하는 자연의 맛, 믿을 수 있는 식재료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송명섭 막걸리의 자랑이다. 여기에 장인의 고집까지 들어있다. 아무튼 사케와 홍어, 막걸리와 사시미에서 여러분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이 깨진 분이 많았으리라.

실제로 궁합은 어땠을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사시미와 막걸리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서로의 영역을 해치지 않으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었었다. 지인은 이런 막걸리는 처음이라면서 예찬을 길게 이어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막걸리, #사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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