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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구원이란 게 없으니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사기예요."

 

연극 <루시드 드림>에 나오는 대사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 다시 읽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이 다시 읽기는 우리 시대에 어울려 보인다. 구원을 믿을 수 없게 내팽개쳐진 우리들에게 말이다.

 

작품은 연쇄 살인 용의자(이동원-최현석)와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최현석-이동원)의 이야기가 핵심을 이룬다. 살인 용의자는 "난 내 운명에 살인이 허락되는지 알고 싶었다"는 충격적인 말을 한다.

 

그의 행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모방한 것이다. 연극 속의 주인공은 러시아산 손도끼를 구입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며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를 따라한다.

 

<죄와 벌> 모방 범죄, 살인자는 누구?

 

사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한다. 나를 끔찍하게 괴롭힌 사람, 나에게 큰 고통을 준 사람, 나를 배신한 사람 등. 실제로 그들이 나를 배신했고 커다란 고통을 주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속에 얼마나 큰 상처가 남아 있는지가 문제다. '심리적 사실'이 크게 느껴지면 복수를 꿈꾸게도 된다. 때론 상상 속에서 이들을 죽이는 연습도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이 범죄자, 살인자와 구분된다고 믿고 싶어한다.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믿음을 확인하고 안도한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우리는 정말 다른 걸까?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 속에서 그리는 인물에게, 또는 도스토예프스키가 파헤친 인간의 내면 심리에서 그 경계는 모호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섬뜩할 정도로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루시드 드림> 또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마적 캐릭터와 선과 악의 경계의 모호함을 보여준다.

 

 

"난 당신의 거울이죠"

 

선악의 경계만이 아니다. 이 작품은 환상과 현실의 구분마저 어렵게 만든다. 살인 용의자는 "난 변호사님의 거울이죠"라고 말한다. 변호사는 용의자를 변호하며 자신의 억압된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극이 진행될수록 누가 변호사이고, 누가 살인 용의자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극이 진행되면서 변호사라는 역할의 상징성과 범죄자의 상징성이 두드러진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과 그것을 변호하는 마음인 것이다.

 

<죄와 벌>의 살인자 '라스꼴리니코프'의 역할을 이 연극에서는 용의자와 변호사가 다 맡는 셈이다. 이것은 '라스꼴리니코프'에 대한 한 이해이자, <죄와 벌>의 문제의식을 더욱 직시하도록 만드는 설정이다. 또는 보기에 따라서는, <죄와 벌>의 문제의식을 더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죄와 벌>에서 구원의 역할을 맡는 '쏘냐'도 있을까? 물론 비슷한 역할이 있다. 바로 변호사의 아내다. 변호사의 아내는 술집 여자다. 이런 설정은 <죄와 벌>의 쏘냐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루시드 드림>은 변호사의 아내에게 쏘냐와 같은 구원자의 역할을 맡기지 않는다. 변호사의 아내는 용의자와 변호사에게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오히려 구원이란 없다고 말한다.

 

<루시드 드림>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보다 우리를 더 황량한 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곤 실존의 문제와 직면하게 만든다. "텅 빈 도로 위"로 우리를 끌고 간다. "신호등도, 차선도,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도로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죄와 벌>의 문제의식을 직시하게 만들어

 

<루시드 드림>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아간다. 그렇게 <루시드 드림>만의 '재미'를 만든다. <죄와 벌>을 읽어 본 사람에게는 작품의 의미를 다시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이에게는 한 번쯤 <죄와 벌>을 읽어 보고 싶게 만드는 힘을 가진 연극이다.

 

내용적인 면 외에도 이 작품은 '효율적인 무대 구성'과 '빠른 장면 전환',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등이 인상적이다.

 

무대는 감옥의 접견실, 변호사의 사무실, 변호사의 침실로 이루어진다. 접견실에서는 용의자와 변호사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사무실에서는 변호사의 자각몽이 드러나며, 내밀한 공간인 침실에서는 변호사의 자각몽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구분되는 장소지만, 이들은 모두 한 무대에 함께 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이들은 모두 자각몽이 실현되는 장소가 된다. 그리고 무대에는 '생각의 캐비넷'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잊힌 비밀, 또는 억압된 진실이 나오기도 한다.

 

<루시드 드림>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에서 보여 준 '구원의 가능성'에 무척 회의적이다. 구원을 믿을 수 있냐고 묻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구원을 믿고 싶어한다. 그것이 <루시드 드림>의 내용을 마음속에서 계속 다시 생각하는 이유가 아닐까. '루시드 드림'은 우리 마음속에서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1월 31일까지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문의 : 02-889-3561


태그:#루시드 드림, #김광보, #차근호, #극단 청우, #산울림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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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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