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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운동가 출신이 그것도 현역 조합장을 꺾고 지역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당선했다. 지난 3일 치러진 창원 동읍농업협동조합 선거에서 김순재(46)씨가 당선했다.

최종 개표 결과는 현 조합장인 김정희 후보가 915표를 얻었고, 김순재 후보는 923표를 얻었다. 불과 8표 차이. 그것도 두 차례에 걸쳐 다시 검표한 끝에 나온 것이다.

 농민운동가 김순재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당선자는 5일 저녁 인터뷰 도중 걸려온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농민운동가 김순재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당선자는 5일 저녁 인터뷰 도중 걸려온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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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를 나온 김순재씨는 농민회 간부 출신이다. 창원시농민회 사무국장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그는 현재 창원 동읍 판신마을에서 논농사와 시설하우스, 축산업을 하고 있다.

농민운동만 한 게 아니다. 그는 '경남농협 농가부채심사위원회 및 농업경영체회생자금 경영평가위원회' 위원(농협 경남본부 임명)과 '경상남도 농업분야 로드맵 수립 전문위원'(경남도지사 임명)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농약공동방제 활동으로 '창원시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 있었다'고 하지만 주변에서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반응이 나온 게 사실이다. 창원 동읍은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창원갑)의 지역구이며, 한나라당 대의원이 어느 지역 못지않게 많다. 그런 곳에서 농민운동가가 그것도 민주노동당 소속인 농민이 조합장 선거에 당선한 것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농협·축협 조합장 선거가 많이 치러졌다. 지난해 말부터 치러진 선거에서 농민회 조합원 출신이 당선한 지역은 한 두 곳 있다. 그런데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반대며 한미FTA 협상 반대운동 등을 이끌었던 농민회 간부가 당선해 더 관심을 끈다.

"끝까지 밑으로 갔다"

그는 1년여 전에 출마를 결심하고 준비해 왔다고 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보다 서너 명씩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것. 그는 "끝까지 밑으로 갔다"는 표현을 했다. 5일 저녁 집에서 김순재 조합장 당선자를 만나 선거 뒷이야기를 들었다.

도대체 선거운동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더디게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21일 출마를 결정하고 대중보다는 현장에서 조합원들을 만나겠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하반기에 행사로 주민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놀러 가는데도 인사하러 가지 않았다. 대중이 모이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이야기를 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지만 입에 발린 소리를 하게 된다. 그런 자리보다는 두세 명씩, 많아야 서너 명씩 있는 데를 가서 진실성 있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더디게 보이고, 불가능한 게임으로 많이 인식되었다. 마누라한테도 깨졌다. 그러나 끝까지 밑으로 갔다."

그는 처음부터 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009년 3월 출마를 결심하고, 5월에 선거운동과 관련해 일정표를 잡았다. 그 일정표대로 움직였다. 선거 막판까지도 그랬다. 선거일 2~3일을 남겨 두고 하루는 좀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선거를 도와주던 사람들이 '왜 쉬느냐'고 하더라. 그런데 저는 그게 다 이전부터 짜놓은 계획이기에 '쉬어도 된다'고 했다."

농민회 활동이 조합장 선거운동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상에 질문했더니, 김순재 조합장 당선자는 '그렇다'고 하면서도 반대 논리를 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드러내놓고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선거 막판에 그런 말이 나왔다. 공공연하게 '빨갱이다'거나 '운동권 출신이다' '민주노동당 놈이다'는 말을 했다. 심지어 '한나라당이 민주노동당한테 질 수 있느냐'는 말도 들렸다. 그런 말에는 농협 조합장 선거이지 정당 선거가 아니라고 맞받았다. 정당과 관련한 문제가 아니고, 누가 농민을 잘 살게 할 수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편의 전략이 많이 먹혀 들어간 측면도 있었지만, 우리는 더디게 보이더라도 착실하게 대응했다."

창원 동읍 농민들은 주로 단감과 벼농사, 축산, 시설하우스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곳에서 창원시농민회에 가입한 조합원은 30여 명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는 농민회 조합원 전체가 나서지는 않았고, 대중성이 있는 간부 몇 명이 나서서 도왔다"고 말했다.

농민운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그는 "원칙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마을에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어떠한 결과를 내놓을 수 없다. 막말로 하면 평소에 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 동읍농협 김순재 조합장 당선자가 자신의 선거포스터를 보며 웃고 있다.
 창원 동읍농협 김순재 조합장 당선자가 자신의 선거포스터를 보며 웃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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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요구를 거절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무엇이 제일 어려웠느냐고 물었더니 '돈' 이야기부터 했다.

"돈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돈을 써서 이길 방법을 가지고 있다면, 돈을 쓰지 않고 이길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합원들에게 돈으로 이긴다면 기존과 달라질 게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많이 다투기도 하고, 힘들었다. 그리고 하루에 커피를 10잔 가까이 마셔야 하는 게 힘들었고, 연말연초에 모임이 많았는데 술을 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 술이 체질에 맞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 선거비용은 어느 정도 들었는지?
"조합장 선거는 일반선거와 다르게 공식적인, 법적인 선거비용이 없다. 제한금액이 없다. 그러다 보니 마구 써도 된다. 선거 준비비용까지 포함해서 5000만원  정도 쓴 것 같다. 자료 찾고, 인쇄물 만들고, 통계 분석하고, 품위유지비까지 모두 포함해서 그 정도 썼다."

- 돈을 많이 안 쓴 것 같은데?
"많이 안 쓴 게 아니고, 엄청 쓴 것이다. 다른 후보들은 어떤 지 모르지만. 5000만 원도 많이 쓴 거라 본다."

"조합장 임기가 4년이다. 선거하는데 1년 연봉 정도는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 쓰는 것은 농민 자산을, 막말로 해서 '빼 돌린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보면 된다. 돈 때문에 힘들었다. 선거 3~4일 전 누가 찾아와서 그러더라. '3000만 원만 살포하면 이길 수 있다'고 간곡하게 부탁하더라. 그 분은 선거 브로커는 아니었다. 그 분 말이 그 정도로 살포하면 100표 정도로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 선거 상황이 불안하니까 그런 말을 했을 수 있다. 거절했다. 그 분이 나가면서 울고 가더라. 이길 수 있는 선거인데 불안하니까 그랬던 것이다. 막말로 해서 살아온 게 있는데, 원칙을 뭉갤 수 없었다."

- 일반선거도 그렇지만, 조합장 선거에는 아직도 돈 살포로 시비가 많은 것 같은데?
"저는 이번 선거에서 불법을 해서 걸린 게 없다. 깨끗하다. 아직도 우리 정서에 보면, 매표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제 가까운 사람조차도 공공연하게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조합장 선거는 정책선거가 아니고 철저하게 조직선거다. 조직을 관리한다는 게 반드시 금전이 동반되는 것 같다. 그래서 힘들었다. 초기에는 우호적인 사람들도 돈을 쓰지 않으니까 선거과정에서 30% 가량은 떨어져 나갔다. 쉽게 말해 돈을 지급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돈만 좀 썼다라면 붙어 있었을 사람들이다. 진짜 힘들었다."

김순재 조합장 당선자는 "대학 다닐 때부터 학생운동을 했다. 그동안 한번도 타협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운동권에서는 조합장이 되면 변절 가능성이 있다고, 기득권세력은 '골통이다'고 하는 말들이 들렸다"면서 "농민운동하면서 재판도 많이 받고 전과도 있지만, 제가 생각해서 옳다면 그 어떤 세력과도 타협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얻은 이익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20여 년 동안 '투쟁 각오'를 해지하지 않았다"면서 "고군분투했다. 농사지으면서 밤에는 잠도 자지 않고 일만 할 때도 있었다"고 밝혔다.

"어머니와 마누라, 아이 셋을 두고 있다. 21살, 19살 아들과 13살 딸이 있다. 아이들 10살 정도 넘어 가면서 항상 이야기 한다.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어떤 때는 아이들이 울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 없이 사는 아이들도 얼마나 많나. 아이들에게 '내일이라도 떠날 준비하고 사는 게 아비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그런 말을 한 뒤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컸으니까 마음이 덜 아프다. 농민운동을 하다보니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농민운동은 좀 더 대중성을 가졌으면"

- 요즘 '농협 개혁'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농협과 관련해서는 법 설립 목적대로 하면 된다. 그대로 하는 게 개혁이며 문제가 없다. 운영을 설립 목적대로 하지 않으니까 문제다. 제도가 아닌 운영의 문제다. 편법으로 하다보니 강력한 규제를 하려는 것이다. 농협중앙회는 '품목농협'과 '지역농협'이 있는데 그 기능에 맞게 복무하면 된다."

- 앞으로 농민운동의 방향을 제시한다면?
"조합장이 됐기에 발언하기 민감하다. 농민운동이 좀 더 대중성을 가졌으면 한다. 헌신성을 더 보여야 한다. 농민들이 생각할 때는 할 만큼 했다는 것은 우리 생각이고, 대중은 그렇지 않게 생각한다.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한테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사실 말이 쉽지 어려운 일이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과 함께 하기 힘들다."

- 이명박정부의 농업 정책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지?
"이명박정부의 농업정책은 과거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정부의 기조와 크게 변한 게 없다. 특별히 욕할 것도 없다. 정부의 농업정책 기조는 변한 게 없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도 그런 입장이라 본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 농업정책이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전 정부에서도 그랬으니까. 우리의 농업정책은 40년 정도 그래왔던 것 같다.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10년 정도 사회적으로 공론화과정을 거쳐 '농업로드맵'을 가졌으면 한다. 최소한 식량자급률은 30% 정도로 올라가야 하고, 농업 부분만큼은 남북교류를 넓혀 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조합장이 되어도 농민운동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대답인 듯했다.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농민들에게 실용적인 대안들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겠다. 그리고 조합장 직책에 연연하지 않겠다. 조합장 직책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고 명분을 무겁게 생각하겠다."

김순재 조합장 당선자는 오는 3월 16일 취임한다.


#창원 동읍농협#김순재 조합장#전농 부경연맹#농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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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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