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에 따라 이 책의 제목인 <오래된 연장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사람의 마음을 연장통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 드릴이나 망치, 니퍼와 같은 도구에 비유되는 것은 어쩌면 비인간적이라고 느껴진다. 사람의 마음이 심오하고, 신묘한 점이 많다고 생각할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의도는 사람의 마음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삶과 생명과 함께한 소중한 진화적 산물이라는 점이다. 즉 사람의 마음은 오랜 시간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이용되었던 도구의 집합물이다. 애써 사람의 마음을 연장통에 비유하면서 살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삶에도 여전히 매우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회문화 현상을 진화심리학 혹은 진화 생물학의 관점에서 정리해놓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자 매력 포인트이다. 이러한 점들을 소소하게 아는 것이 실제로 살아가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히 지적 유희로만 간주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지적에는 한 기업이나 가정을 뒤흔들어놓을 점도 충분히 잠재되어 있다. 때문에 진화 심리학에 대해서 남녀 카운슬링 분야나 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많은 관심을 갖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사소한 현상도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하고 있다. 웃음은 진화의 역사에서 오래 살아서 많은 자손을 남기는데 효과적인 도구였기 때문에 웃음이야말로 자연선택으로 잘 다듬어진 생물학적 적응이라고 보았다. 예컨대, 제프리 밀러는 웃음은 성적 선택에 따라 진화되었다고 말한다. 창의적이고 머리 회전이 뛰어나야 유머가 가능하므로 유머의 구사는 남성이 가진 능력의 우월성을 의미했다.

인간이 털이 없는 유일한 유인원이라는 사실에 대한 해석은 흥미롭다. 이를 설명하는 것이 체외 기생충 가설(ectoparasite hypothesis)이다. 이 가설은 진화 속에서 인간은 이성에게 털 없이 벌거벗은 몸이 섹시하게 인식되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주장한다. 벨트(Belt)에 따르면 털 없는 유인원은 진드기 같은 기생충이 없기 때문에 청결한 건강한 배우자로 인식되었고, 결국 적자 생존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주장과 달리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남성과 여성은 매우 다른 존재들이다. 각기 처한 환경에서 다른 적응기제들을 발달시켰기 때문이다. 사냥의 습성에 익숙한 남성은 직선적이고 과격하다. 뿐만 아니라 목표 지향적이고 결과에 집착한다. 지위와 돈 등을 폭력을 통해서라도 얻으려 하기 때문인지 액션과 무술 영화를 좋아한다. 남성들은 더욱 위험 선호적이다. 여성은 힘이 없어도 자손 생산과 육아로 생존을 모색할 수 있지만, 남성은 가용자원이 없으면 버려지기 때문에 모험과 한탕의 심리가 강하다.

사냥 떠난 남성들과는 달리 부락에 남아있던 여성은 끈끈한 인간적인 관계를 더욱 민감하게 생각한다. 자신과 아이가 생존할 수 있도록 현명하게 처신하고 갈등을 대화로 풀어내야 한다. 또한 남성 배우자에게 경제적, 사회적 존립을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표정과 말을 분석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구비해야 했다.

남성들이 하룻밤 섹스를 더 추구하는 것도 진화심리학은 명쾌하게 말한다. 남성은 많은 자손을 여러 여성에게서 얻으려 섹스를 좋아 하지만, 여성은 자신의 자식을 길러내야 하므로 섹스 대신 경제적 능력 있고, 자신의 가족만을 위할 줄 아는 남성을 골라내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전체적으로 여성은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선호한다.

진화심리학은 경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다. 예컨대, 진화 심리학의 주장에 따르면 공포 심리는 집단적 생존을 불러오는 진화적 정서이기 때문인지 영화 뒤에 희소성을 내세우는 상품 광고는 효과가 없고, 로맨스 영화 뒤에서야 그 효과가 있다.

공포 영화 뒤에는 사회적 가치와 유대가 담긴 광고가 더 선호된다. 진화론적 관점은 소비와 쇼핑 현상을 설명해낼 수 있다. 과시적 소비는 공작새가 뽐내는 깃털과 같다. 특히 남성들은 이성 앞에서 과시적으로 소비하는데, 그들이 구입하는 품목은 사치스러운 물품일 뿐만 아니라 겉으로 쉽게 드러난다.

저자의 주장대로 남성들이 주방용품을 사주지 않는 맥락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물품을 많이 사주어보았자 자신의 경제력이나 위세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주방용품에는 명품이 거의 없다는 지적은 재밌는 분석이다. 남녀성의 차이는 쇼핑에서도 여전히 드러난다. 진화 심리학은 수렵과 채집의 특성에 따라 여성은 사물의 배치와 그것의 판별에 익숙하지만, 남성들은 직선적인 위치 파악과 단기간의 성취에 더 뛰어나다. 따라서 여성은 오랜 쇼핑에 익숙하고 남성들은 상품 성취가 적은 '아이 쇼핑'에 쉽게 지루해한다.

진화는 문화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생존을 위한 효과적인 방식들은 하나의 보편적인 문화로 굳어지거나 '유발된 문화(evoked culture)'를 만들어냈다. 유발된 문화는 보편적인 심리 기제가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사회문화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가리킨다. 남성의 상속문화가 대표적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른바 부성 불확실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재산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고, 누이에게 물려주었다. 당연히 보편적이고 유발된 문화는 전파된다.

이민족이나 인종을 기피하는 것도 결국 진화적 산물이라는 점은 병원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이는 문화적 양태를 낳았다. 즉 진화적 관점에서 전염성 병원체를 옮길지도 모르는 개체나 사물을 탐지해서 그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하고 배척하는 것이 이민족과 인종에 대한 기피와 차별심리를 낳았다. 여기에서 집단주의 문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고 병원균을 퇴치하는 집단적 해결방안을 더 고려하다보니 집단의 권위와 전통에 대한 순응이 우선된다. 따라서 병원균이 많았던 지역에는 권위주의적인 집단주의 문화가 발달했다. 농촌경제와 노동의 관점에서 집단주의 문화를 분석하는 관점과 매우 다른 점이다.

또한 이는 집단주의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가 병원균에 대응하는 진화적 선택에 따른 것임을 말해준다. 이 또한 각 사회마다 환경에 대응하여 만들어낸 유발된 문화의 사례다. 진화인류학자 다니엘 페슬러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 78개 문화권에서 금지되는 음식 가운데 85% 이상이 고기였는데, 싱싱한 채소나 과일을 금지하는 사회는 거의 없었다.

이 또한 진화적 선택에 따른 것이다. 왜냐하면 고기는 맛있고 열량이 높지만, 쉽게 상하고 병원균이나 기생충 등이 많기 때문에 생존에 위협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종교의 시각과는 달리 진화론의 관점에서 고기에 대한 금기 문화는 생존 문제에서 비롯했다.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음식 문화도 결국 향신료를 통해 음식물의 부패를 막아 적자 생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책은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이름으로 우선 인간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고, 본문에서 본격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덕성에도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진화론은 도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에 유용한 경험적 지식이 본능 영역에서 축적된 된 것이라고 본다. 즉 생존을 위한 본능적 연장들의 합이 도덕인 셈이다. 도덕성은 추상적이고 합리적은 그 무엇이 아니라 환경에서 인간의 조상들이 해결하려 했던 보편적인 심리기제의 산물이다.

예컨대, 이타성이 많을수록 생존의 확률이 높고, 은혜를 갚는 것은 협동적 상호성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단에 충성하는 것은 병원균에 대한 심리적 방어이며, 음탕과 난교의 금지도 결국 병에 대한 사회 문화적 방어기제이다. 장유유서의 원칙은 지략과 정보를 통한 생존 방식이 유리하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심지어 진화 심리학은 종교도 '우리'와 '너희'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동맹심리가 종교를 부수적으로 낳았다고 본다.

진화론적 기제는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진화적 기제는 바뀐 상황에서 오히려 '장애'가 되기도 한다. 단 것 때문에 다이어트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진화의 궤적이 조종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우리가 비합리적으로 단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고열량의 음식을 필요로 했던 진화 초창기 환경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종(種)은 단 것을 먹으면서 열량을 채웠다.

그러나 달디 단 음식이 넘쳐나고, 쉽게 섭취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만 체중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단것에 쉽게 끌린다. 남성들이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포르노물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진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진화시기에 포르노는 없었지만, 시각적 이미지에 쉽게 반응하는 진화적 결과 때문에 남성들은 시간과 경제적 비용에 관계없이 허구적인 이미지에 성적으로 흥분한다. 

진화 심리학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생각할 필요는 있다. 모든 현상을 진화론으로 환원시킨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또한 변화의 추구보다는 현상 추수주의를 부추길 우려도 있다. 예컨대 문학 작품에 나타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진화 심리학자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약육강식의 시장논리도 합리화 한다. 또한 이러한 연구결과는 대체적으로 평균적인 경향성에 따라서 결론을 도출하고 일반화 시킨다. 결국 사후에 대체적인 흐름을 분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론에서 대세보다는 돌연변이가 생존했다. 즉 평균이나 다수가 아니라 소수가 결정적인 변환기에 생존했다.

덧붙이는 글 | 교보문고 '굿모닝 CEO'에 실린 글입니다.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증보판

전중환 지음, 사이언스북스(2010)


태그:#진화 심리학, #연애, #쇼핑, #남녀탐구생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