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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이 산 저 산 꽃불이 옮겨 붙는

봄이 오면, 

우리 분이 언니

죽은 무덤가에

울멍 울멍

진달래꽃 참

서럽게도 곱게 피지.

 

꽃분홍빛 치마적삼 

한 벌 얻어 입고 

시집가던 그 보릿고개에도

진달래꽃 울멍울멍 

참 서럽게도 곱게 피었더랬지.

 

큰 딸은 살림밑천이라고

곱게 곱게 키워서

원통하게 홀아비 영감에게 

시집 보낸다고 울멍울멍

우리 엄니 속울음처럼

참 서럽게도 곱게 

앞산 뒷산 피었더랬지.

 

개미보다 허리가 가는

우리 엄니는 봄이면

육성회비 교과서비 달라고

손바닥 내미는 열두남매에게 

행주치마끈을 더 세차게

졸라매며,야무지게도 악담을 퍼부었지…

 

(이X들아...너그 형 분이는

학교 문 앞에도 내가 안 보냈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것냐 ?

이 X들아...너그도 커서 부모 되어 봐라...)

 

앉으나 서나 산너머 물건너

시집 간 언챙이 우리 언니

분이 걱정뿐이었지.

 

(내가 그 불쌍한거 시집보낼 때 요강 단지에

백설기 한 되 쪄서 넣어 준 것 밖에 없는디...)

 

옥녀봉 봉수대에서 부터 

울긋 불긋 진달래 꽃불이 

피냇골까지 옮겨 붙던  

그 노란 현기증처럼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샅길로 

 

시집간 지 꼭 삼년만에 소박 맞아 

덜커덩거리는 우마차에 실려

돌아와서 사흘 낮 밤을

꼬박 앓아 누운 분이 언니… 

 

2.

마른 버짐이 하얀 소금꽃처럼 

얼굴에 가득한 엄니는

이러다 약 한재 먹여 보지도 못하고

기여이 생떼 같은 목숨 하나

죽여서 내 보내겠다고

새 같이 앙상한 가슴팍만

피나게 뜯으며 통곡했지.

 

뻐꾹 뻐꾹 앞산 뒷산

뻐꾸기 슬피 울던

그 눈부신 봄날 골방문 앞 

노란 새끼줄 떼어 내고 

분이 언니를 가마니에

둘둘 말아 등지게 지고

나가는 동네 늙은 머슴 아비는,

 

(..쯧쯧 ...사람이 우찌... 지푸라기보다 가벼울꼬...)

 

중얼 중얼 비 맞은 중처럼 중얼대며  

옥녀봉으로 올라가던

그 봄에도 

진달래꽃은

참 서럽게도

곱게 피었더랬지

 

조상대대로 내려온 *환곡의

새끼에 새끼 치는 이잣돈 갚지 못해

늙은 홀아비에게 

팔려 가면서도

난생 처음 얻어 입은

연분홍빛 적삼치마가 

참으로 곱다고

훨훨 나비처럼 춤을 추며,

 

늙은 아비따라

산너머 물건너

시집 가던 날도

그렇게 

게…

 

온 동네 방네에

피빛 보다

붉은 진달래꽃은

참 서럽게도

곱게 피었더랬지…

덧붙이는 글 | 환곡: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 정부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백성들에게 빌려주고 약간의 이자를 받는 일종의 복지 정책이었다.


태그:#누이, #진달래, #시집살이, #보릿고개, #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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