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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작가 최인석의 청소년 소설 <약탈이 시작됐다>는 '도발'적이다. 어째서 그런가. 소설 속의 종각역 부근에서는 매일 밤 약탈이 벌어진다.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굳이 추정해보면 24시간 장사하는 햄버거 가게에서 손님들끼리 시비가 붙은 것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사소한 시비는 격한 폭력으로 이어졌고 그 폭력은 햄버거 가게에 있던 다른 손님들까지 끌어들인다.

 

햄버거 가게는 난장판이 되고 성난 사람들은 가게 밖으로 나와 싸우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옆에 있던 가게들의 창문이 깨지기 시작하고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은 누군가에 의해 도난당한다. 한두 곳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약탈 행위와 폭력 행위는 종로 일대로 퍼져나갔다. 다행히 경찰이 출동해 그것을 간신히 막는다. 하지만 약탈 행위는 매일 같이 벌어졌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종각역 부근에서 사소한 시비가 붙고 그것을 기점으로 폭동 같은 약탈행위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 뒤숭숭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을 때, 성준은 담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장기 결석 중인 용태를 집을 찾는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던지라 성준은 선생님이 원망스럽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걷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용태의 집이 허름한 술집인 것이다. 성준은 조심스럽게 술집의 문을 연다. 아직 장사를 시작하지 않은 터였다. 성준은 주위를 살핀다. 그러다가, 보고 만다. 거울에 비쳐진 젊은 여성의 맨살이었다.

 

사춘기 소년 성준은 당황한다. 그 사이 성준을 눈치 챈 젊은 여성은 성준에게 먹을 것을 대접한다. 스스로를 용태 엄마라고 말하는 그녀는, 성준을 따뜻하게 대해준다. 성준은 그 따뜻함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준은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매일 밤, 꿈속에서 그녀를 안는다. 친구의 엄마를 욕망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사랑'이라는 단어까지 떠올리고 만다.

 

성준이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무엇인가? 사연을 듣는 사람들은 다들 철없다고 할 것이다. 또한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성준도 그것을 안다. 그래서 고민한다. 하지만 성준의 고민은 진지하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그것은 단순한 욕망으로 그치지 않는다. 진심 어린 애정이 된다. 누가 그것을 이해해줄 수 있을까? 없다. 성준은 그것을 알고 있다. 학교 선생들이 약탈지역을 두고 말하듯 그것은 접근해서도 안 되고 호기심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성준의 담임 선생님인 봉석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는 자신이 맡은 반의 윤지를 좋아한다. 윤지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들었던가. 드라마에서는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핑크빛 로맨스를 들려주지만 소설 속에서는 달랐다. 봉석은 원조교제로 오해받아 학교에서 쫓겨난다. 윤지는 집에서 감금당해 강제로 전학을 간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학교의 징계위원회는 봉석의 죄를 끝까지 추궁한다. 봉석은 당당해지고자 그 앞에 선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더럽고, 비루하며, 지리멸렬한 '헛소리'들 뿐이었다. 선생과 제자와의 사랑이라는 건 그렇게도 잘못된 일이었을까? 사람들은 무조건 색안경을 쓴 채 욕하고 비난한다. 그 앞에서 봉석이 할 수 있는 건 쓴웃음을 짓는 것뿐이다.

 

어째서일까. <약탈이 시작됐다>는 봉석의 그것처럼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성준과 봉석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실상은 어둠을 틈타 약탈지역에 가서 소리 지르며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걸 알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들의 내면에도 그처럼 '기성 질서'와 다른 것이 있음에도 끝까지 점잖은 체 하려고 하는 모습 때문에 쓰디쓴 웃음을 짓게 되는 것이리라.

 

혼란의 밤을 그렸기 때문일까? <약탈이 시작됐다>는 어느 청소년 소설과 다르게 자극적인 대목들이 많다. 또한 은밀한 것들도 많다. 그렇다하여 이 소설을 누구누구는 봐서 안 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점잖음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이런 혼란을 직접 부딪쳐보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도발적인 청소년 소설 <약탈이 시작됐다>, '금기'에 대한 도전이 심상치 않은 파문을 던진다.


약탈이 시작됐다

최인석 지음, 창비(2010)


태그:#최인석, #청소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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